1년여 만에 ‘관계’라는 술집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 두 가지 이유로 뜨끔했다. 하나는 ‘작가님’이라는 낯간지러운 호칭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보기 어렵다”는 말 때문이었다.
사실 그런 말을 종종 들었다. “작가님, 많이 바쁘지?”
그럴 때마다 미안했다. 바쁘지도 않은데 바쁜 척, 비싼 척을 한 것 같아서. (사실 작가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는 반백수나 마찬가지인데 ‘진짜 작가님’ 인척 한 것 같아서 너무너무 찔린다.) 연락에 인색했던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자주 연락하기, 다정하기. 매해 다짐하면서도 지키지 못한 게 십수 년 째라 반성하기에도 지칠 정도다.
다행히 약속을 잡은 친구들은 연락이 없어도 유지되는 관계다.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꼭 연말이 되면 모여서 술도 마시고 남 욕도 하고, 또 연애 얘기도 하면서 사회비판도 하고 트렌드 전망에 인생 비전까지 설계할 정도인데 평소에 연락은 없다. 나 빼고 셋이서 만든 단톡방이 있다면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내가 파악한 바로는 우리는 대체로 꾸준하게 무신경하다가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모인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연락 없이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건지 문득 신기했다. 돌이켜보면 이상하게도 내 손에 잡히는 인간관계는 오히려 조직을 떠난 이후로 더 긴밀해졌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이 문장을 읽고 “아니 설마 그 안에 내가 포함되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긴밀한 사이라고?”라며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감히 이렇게 질척대며 말하고 싶다. “네, 이 정도면 나는 우리가 굉장히 긴밀한 사이라고 생각해요.” 1년에 한 번을 보더라도 편안하면 친하다고 생각하고, 매일 보더라도 불편하면 친밀하지 못한 사이라고 생각한다. 연락하는 습관이 없는 나에게 친밀함의 척도는 만났을 때 마음이 편하냐, 단 하나이다.
연락 없이 유지되는 관계와 함께, 요즘 내 일상은 대부분 술 없이 유지되는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로 글 쓰면서 만난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가끔은 술도 한 잔 하지만, 대부분은 술이 없어도 취한 것처럼 ‘텐션’이 올라가서 함께 떠든다.)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단 모이면 생각 없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다. 논리나 이성, 진지함을 잠시 내려두고 술 없지만 취한 것처럼 시시껄렁한 얘기도 마구 던진다.
조금 더 점잖게 커피를 마시면서 소소한 근황과 작업 소식을 전하는 모임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띤다. 알코올 한 방울 없이 2차, 3차, N차 찍을 기세로 수다를 떤다. 오로지 사는 이야기, 작업 이야기만으로 시간을 채운다. 경청이 몸에 밴 친구들은 긴 글도 잘 읽어준다. 아직 덜 다듬어서 엉망인 이야기도 끝까지 읽어준다. 게다가 꼭 좋은 부분을 찾아내 준다. (당신은 천사입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가 지날수록 느낀다. 친구가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방구석에서 발가락까지 배배 꼬이는 기분을 느끼며 질색하면서도, 나의 바쁨을 걱정하는(바라는) 이들의 마음이 고맙고 또 고맙다. 내가 점점 더 바빠지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마음을 느낀다. 당장 내 일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누군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의 다정함에 늘 감동한다.
자주 나의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아직도, 종종 그렇게 선을 그어버리고 싶다. “일단은 내 문제부터 해결하고.”라는 말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많은 이야기를 무시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돌보아야 하는 이유를 굳이 대단한 '무엇'이 없어도 유지되는 이 이상하고도 오묘한 관계를 통해 찾는다. 연락이 없어도, 술이 없어도, 빈번한 만남은 없어도 감사하게도 유지되는 우리의 다정한 만남을 곱씹으며 덜 인색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정다감’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 더 표현하는 사람. 보고 싶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 신년 목표는 소박하게(?) 세팅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