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고
축구와 글쓰기, 뜻밖의 교집합
어느 날 갑자기 축구를 하게 된 여자가 있다. 평소 축구 팬으로서 남몰래 그라운드를 동경하던 여자는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에 입단신청을 한 뒤에도 몇 번을 망설인다. 그러나 축구의 세계에 뛰어든 후 걱정이 무색하게 축구의 재미에 푹 빠진 여자는 이제 모든 것들을 ‘전지적 축구 시점’에서 욕망하게 된다. 축구 경기를 할 때 거슬리지 않는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단발머리는 포기하고,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헬스장에서는 운동 목적을 묻자 ‘체중이 늘더라도 체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한다. 예뻐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가 오로지 ‘축구’를 욕망하며 찾아온 것이다.
어느 날 글 쓰고 책 만들겠다고 퇴사를 한 여자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장래희망 칸에는 항상 ‘작가’라고 썼지만, 회사원이 된 뒤에는 정작 한 줄도 제대로 써본 적 없던 여자는 어쩌다가 글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의 재미를 알게 된 후 모든 일상이 ‘전지적 쓰기 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사무실에서 회사 일을 하느라 쓰지 못하는 낮이 아까워 -물론 그전부터 회사 다니는 게 싫었지만- 퇴사했고, 퇴사 후에는 매일 자발적으로 카페에 출근해 단 몇 줄이라도 썼다. 몇 시간 앉아있으면 왼쪽 엉치뼈가 아파지는 고질병이 쓰는 데 방해가 되고, 타고나기를 약한 체력이 긴 호흡의 글을 끌고 가기를 버거워하는 것 같아 생애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운동도 시작했다. 운동하느니 굶어서 살을 빼던 여자의 예전 모습을 생각하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변화이다.
축구를 하게 된 여자는 에세이스트 김혼비이고, 글 쓰고 책 만들겠다고 퇴사한 여자는 (구)회사원, (현)백수이자 등단은 하지 못한 작가인 나 여름이다. -일단 책 냈으면 작가라고 소개해도 되겠죠?- 김혼비님이 혹여나 이 서평을 보게 된다면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대뜸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지 않나요?’와 같은 대사로 호감 표시를 받은 것과 같은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축구와 글쓰기라는 어찌 보면 연관성이 전혀 없는 카테고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같은 하늘 아래 ‘나와 비슷한 동지’가 한 명 정도는 있는 것 같다는 안도감과 동료애까지 느껴졌다. 동료애를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사회적 이유로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욕망을 마침내 인정하고, 욕망하던 세계에 발을 들인 뒤에는 억눌러왔던 그 간의 욕구를 한 번에 분출하기라도 하듯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탐미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생활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 않을' 오만가지 이유 VS. '하고 싶다'는 한 가지 욕망
우리는 집단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욕망하던 많은 것들이 밋밋해지거나 아예 거세되는 경험을 한다. 어떤 활동을 할 때 욕구가 충족되는지 실험을 할 기회마저 박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장 한구석에서 피구 혹은 발야구 정도만 팀 스포츠로 허용되어 축구가 재미있는지 아닌지 경험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많은 여자의 학창시절처럼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기도 전에 잃어버렸을지 가늠할 수 없다. 어렵게 스스로 깨달은 어떤 욕망이 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겠다.’는 이 간단한 문장을 입 밖에 내뱉고 실천하기까지 실로 많은 걸림돌이 있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문장을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걸림돌은 많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무슨 축구냐’며 말리기도 하고, 꼭 주변의 만류가 아니더라도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래, 이제 와서 축구는 무슨.’이라며 스스로 ‘하지 않을 오만가지 이유’를 만들어 버린다.
글쓰기가 딱 그랬다. 교내에서는 상장을 받아도 전국구로 가면 큰 성과는 없었던 애매한 재능이 있었고,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기에는 진지함과 열정이 부족했다. 게다가 글을 쓰는 건 절대 돈을 벌 수 없어서 ‘글 쓰면 밥 빌어먹는다.’는 생존이 걸린 무시무시한 부모님의 협박은 어릴 때부터 들었다. 어디에든 취직하기에 무난한 어문계열을 전공하여 나름대로는 현실세계와 내적 욕망을 적당히 타협한 지점이라고 생각한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전국의 잠재적 퇴사자들이 말하듯 ‘회사는 다 똑같고, 그냥 회사’였다. 애초에 거대 조직에서 글쓰기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재미인 ‘파고들어 사유하고, 이를 정리해내는 과정’과 비슷한 부류의 일을 유사하게 경험할 가능성은 개미 똥만큼도 없었다. 개미 똥만큼도 없는 가능성과 월급에 기대어 연명하기를 약 5년 차, 마침내 어쩌다가 취미로 시집-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얇은 넋두리 모음집-을 제작했고 다이너마이트에 붙은 불씨 마냥 첫 책이 계기가 되어 ‘쓰면서 살고 싶다.’는 오랜 욕망을 인정하게 되었다.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애매한 재능이 어느 날 갑자기 천재적으로 발현될 리는 없었다. 일개 회사의 대리 주제에 누가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할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스스로 쓴 글을 책으로 펴내는 게 딱 맞는 진로였다. 그렇게 지금 가장 욕망하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후 약 두 달, 두 권의 책을 쓰고 인쇄했다. 부랴부랴 수강한 기초 일러스트 4주 강좌로 어설프게 그린 그림과 아직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빈 구멍이 많이 보이는 것 같은 소설이 얼기설기 엮인 두 권의 책. 애매한 내 능력만큼이나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물이지만, 그래도 아무도 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책 낸 자’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것에 일단은 잘했다고 ‘셀프(Self)우쭈쭈’를 해주려 한다. 축구를 반년 좀 넘게 하면 종아리에 알이 박히고 ‘축구 경기를 하는 몸’으로 변모했다는데 글은 대체 얼마나 써야 ‘글 쓰는 머리’로 진화할 수 있을지 아직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저자가 그토록 원하던 멋진 첫 골로 에세이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골보다도 더 멋있는 순간으로 느껴진 ‘빛나는 어시스트’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마무리된다. 운동장 한쪽에서 기초를 다지며 훈련만 하다가 공식 경기에 나가고, 실력의 한계를 느끼며 좌절도 하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결정적인 어시스트라는 한 방을 보여준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기대하는 소설적인 행복한 결말에 가까워 마음 편하게 책장을 닫을 수 있다. 나 역시 쓰고 만드는 행위로 언젠가는 골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시스트 정도의 구체적인 성과는 거둔다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 참으로 행복하겠지만, 그간 많은 경쟁을 몸소 겪으며 느낀바 적어도 나는 항상 결과는 과정에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몰입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곤 했다.
증오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은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 역시 딱 좋아하는 마음이 증오로 바뀌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을 잘 살펴가며 ‘지속 가능한 쓰기’를 실천해보려 한다. 퇴직금이 다 떨어져 가고 책으로는 도무지 수입이 한 달에 단 몇만 원도 나오지 않아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을 느껴 글쓰기가 재미에서 두려움으로 변할 것 같은 순간에는 결국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건 이미 예감하고 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예정되지 않은 진로에도 덜 불안한 이유는 이제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나를 대변하는 ‘두 번째 정체성’이 생겼다는 사실 덕분이다.
‘야, 너희 내가 그냥 보통 회사원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글 쓰고 책 내는 여자다 이거야!’*
편견을 딛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뱉어내지 않고 용기 있게 삼키고, 그 달콤함을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는 모든 동지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축구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
*'야 너희 내가 그냥 보통 식당 이모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축구하는 여자다 이거야!' 변용,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민음사, 2018년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인용,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민음사,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