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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May 11. 2020

DON'T DO THAT!!!

이렇게 외치면 깜짝깜짝 놀랄 수밖에요

연희동의 C카페에 갔다. 라테 한 잔에 6800원이라는 다소 비싼 가격이 마음에 걸렸지만 탁 트인 장소가 필요해서 찾아갔다. 여러 층인 데다가 좌석이 많고, 미로처럼 여기저기에 좌석이 흩어져 있는 구조라 숨어있기에도 좋아 보여 언젠가 또 와야겠다고 봐 두었던 곳이다. 숨어있기 좋은 곳은 작업하기에도 좋다. 점원들과 눈이 마주칠 일도 없고, 당연히 눈치가 보이지도 않는다.


주문한 커피를 받은 뒤 자리를 잡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탐색하는데 어떤 의자에 '발 올리지 마세요'라는 경고문구가 흰 A4 용지에 큰 글자로 출력되어 붙어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러려니 하고 2층 구경을 해보려고 계단을 올라갔는데 '루프탑 이용은 금지'라는 경고문구가 또 붙어있었다. 이번에도 테이프로 꽁꽁 감아둔 A4용지가 눈에 띄었다. 다시 그러려니 하고 한 층을 도로 내려와서 자리를 잡았고 화장실에 갔더니 '욕조에 앉지 마세요'라는 글씨가 보였다. 3 연타로 '~하지 마시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언가 하기도 전에 억울하게 꾸중부터 들은 아이처럼 기운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흡연을 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하필이면 커다란 주택을 개조한 카페여서 뭘 하지 말라는 문구를 연달아 읽다 보니까 꼭 어린 시절 엄마가 쫓아다니면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던 시절에나 느끼던 은근한 압박이 느껴졌다. A4용지에 커다란 고딕체로 작성한 글씨가 꼭 "하지 말라고!"라는 음성으로 소리를 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을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는 그런 시기는 지났지만 계속해서 카페 내부 공간을 탐색하는 족족 구석구석에서 경고문만 튀어나오니까 반발심(?) 비슷한 감정도 올라오려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같이 혼이 나야 하는 걸까, 라는 약간의 억울함과 함께. 내가 느낀 이 카페의 가장 큰 강점이 주택을 개조했기 때문에 가능한 미로 같은 구조, 그 때문에 가능한 '자유'였는데 경고문을 보는 순간 자유의 감각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공간이나 들어서는 그 순간 손님은 주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공간의 소유자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 뒤에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머무르면서 대부분 주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다는 느낌 때문에 공간을 떠날 때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경우에는 주인의 시선 안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적절히 이용 시간을 조정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눈치 게임이 피곤해서 공식적으로 이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에 가거나, 아예 공간 소유자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아가는 사람도 많다.)


큰 공간을 관리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겠지만, 또 기본적인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무례한 손님들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흰 용지에 무신경하게 쓴 문구를 지뢰처럼 심어두는 대신 다른 방식은 없었을까. 결국 공간을 아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은 거니까 DON'T 대신 DO로 시작하는 문장이 더 많이 보였더라면. 직설적인 방식으로 경고를 해야만 했던 사장님의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덜 눈치 보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면, 방문객은 이 공간을 망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라 공간의 이점을 향유하고 즐기러 온다는 사실을 세심하게 고려한 메시지였다면. 


참 좋은 공간인데, 곳곳에 심어둔 "DON'T"로 시작하는 문장 때문에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환대받지 못한 이방인이 된 것 같아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손님들에게 말을 걸어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하지만 당연히 군말 없이 하지 말라는 짓 하나도 하지 않고, 주문한 라테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 채 깔끔하게 마신 뒤 컵을 반납하고 카페를 나왔다. 오늘 작업실 선택은 반은 흥했고, 반은 망했다. 




*사진은 Pixabay에서 다운 받은 Free-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실제 공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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