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포그래피 야학 Apr 29. 2020

00_현대주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을 이해하는 생각의 틀

일러두기

1. 본문 안에서 타이포그래피 용어는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2. 윤문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3.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타이포그래피를 설명하려면 우선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많은 책에서 ‘디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하지만 몇몇 이론가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미학이나 디자인 분야에 한정해서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대체로 무엇을 발명하거나 개선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의 정의나 물건들이 다양한 시대에서 나타나게 되고, 인류사의 다양한 유물도 디자인의 결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속에서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는 디자인을 바로 보고 해석하는 것에 많은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필자는 디자인은 ‘현상'이나 '과정’이 아닌 ‘관점’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환경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하며, 관점에 따라서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좀 더 구체적인 현상과 과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 관점은 무엇인가? 이야기의 시기를 조금은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마도 서양의 중세 시대까지는 올라가야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인식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의 시대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건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서양에서 가장 빠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중세시대를 암흑기로 규정하는 역사학자도 있지만 예술의 황금기로 규정하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중세가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숭배하고, 이런 사고를 중심으로 공동체와 계급, 개인을 구분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직업은 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장장이의 아들은 그대로 직업을 물려받았다. 직업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이런 생각을 잘 이용했다— 그래서 중세시대의 건축, 공예, 미술 등 에서는 신을 향한 희생인 숭고함이 묻어난다. 이는 일생의 직업으로써 예술을 접했기 때문이며, 대부분이 평생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다. 그래서 중세의 직업은 자기희생적이다. 이러한 탓에 익히 잘 알려진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도 생전에 자신의 건축은 절대로 중세시대의 것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중세시대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없었다는 점에서 ‘암흑기’로 보기도 하고, 예술적 결과로써의 ‘황금기’로 보기도 한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는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 이후를 말한다. 중세시대의 권력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일부의 종교 계급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 이후 성경은 급속도로 일반에 보급되어 누구나 성경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신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신에 대한 질문과 의구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었고, 이로써 종교 권력은 빠르게 쇠락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는 신이 규정한 인간이 아닌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기 시작했고, 당시의 철학자들은 다양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질문 사이에서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철학자는 헤겔(1770-1831)이다. 헤겔은 ‘변증 관념론’으로 유명한데. 인간은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써 변증 관념론은 작동한다. 이는 신이라는 존재가 규정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인간 스스로의 고민한 결과로써의 인간다움이다.


변증 관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증법’과 ‘관념론’에 대해 알아야 한다. 변증법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은 이해하고 생각할 때 고민을 한다. 이때 고민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변증법이다. 인간은 ‘정립 > 반정립 > 합(정립)’의 과정을 순환하며 새로운 답을 얻는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우리 잘 알고 있는 ‘모순’에 대한 어원을 예를 들어 보자. 한비자 난일에 나오는 이 우화는 이렇다.


초(楚)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자랑하며 “이 방패는 굳고 단단해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또 창을 자랑하여 “이 창의 날카로움으로 어떤 방패든지 못 뚫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 
— 한비자, 난일


여기서 “이 방패는 굳고 단단해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와 “이 창의 날카로움은 어떤 방패든지 못 뚫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 정의다. 이를 ‘정립’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앞의 정의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각각 사물에 대한 정의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상식으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개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을 느낀다. 이를 ‘반정립’이라고 한다. 결국 혼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못 뚫는 것이 없는 날카로운 창’으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찔렀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정의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롭게 얻어진 정립을 ‘합’이라고 한다. 인간의 사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숙한다고 보는 것이 변증법이다. 당연해 보이지만 중세시대에는 이러한 과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반정립 자체를 ‘죄’로 보았다. 이렇게 보면 우리 시대에 당연한 것들도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에 의해서 규정되거나 얻어진 것들이다.


변증법이 생각의 과정이라면, 관념론은 과정을 만드는 원인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면 그것을 언어로 규정한다. 예를 들면 저 음식은 ‘먹음직스럽다’ 이곳의 풍경은 ‘아름답다’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형용사로 규정함으로써 이해한다. 만약 어떤 음식을 보고 먹음직스럽거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규정’이 없다면 우리는 그 음식을 이해할 수 없다. 대체로 사람들은 ‘음식’을 단지 음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번 지금 집 안이나 주변을 둘러보자. 그럼 내가 주로 사용하는 물건들은 스스로가 내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늘 내 주변에 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물건이 있다면 대체로 우린 그것에 대해 의미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관념은 이러한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의미 규정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영토에 ‘독도’라는 섬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다면 대부분 ‘그렇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독도’를 직접 보거나 가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다면 대부분은 ‘아니오’라는 답변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독도가 존재한다고 확신하는가? 이는 독도에 대한 다양한 의미의 규정을 글과 사진 그리고 증언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도에 대한 관념을 갖고 확신한다. 다시 질문을 던져 대한민국 영토에 ‘굴업도’라는 섬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쉽게 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굴업도는 대한민국 서해에 존재하는 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섬이 있다고 쉽게 답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는 굴업도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와 상관없이 우리는 사물과 상황을 규정하는 개념에 따라서 존재 유무를 판단한다.


변증 관념론은 관념을 변증법이라는 사고 과정으로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버섯이 아름답게(정립) 생겼지만 그것을 무심코 먹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반정립)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왜 아름다운 것이 사람을 죽이는가?”그리고 새로운 답(합)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생긴 버섯”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 생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관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현상(혹은 단어)과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을 부딪혀 생각한다. 이렇듯 관념적인 것이 변증법의 과정을 거치는 걸 변증 관념론이라고 한다. 헤겔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이 ‘최고 수준의 인간다움이라는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고 수준의 인간다움의 표준은 신 중심 이후의 ‘초월적 무엇’으로의 대안이었다. 헤겔의 사상은 르네상스가 완벽한 인간에 대한 탐구와 연구,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며 인간을 그 자체를 신으로 규정했던 그리스 예술이 집중했던 것과 결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은 언제 등장하는가? 이것은 헤겔을 비판하며 등장한 마르크스(1818–1883)의 변증 유물론으로부터 출발한다.


마르크스는 ‘변증 유물론’을 주장하며 헤겔의 변증 관념론을 비판한다. 변증 유물론의 ‘변증법’은 앞선 헤겔의 사상에서 이미 설명했으니 바로 유물론으로 넘어가 보자. 유물론 또한 관념론처럼 생각의 과정을 만드는 단서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물병을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물병은 스크루방식으로 뚜껑을 여는 물병이다. 두 번째 물병은 원터치 형식으로 된 뚜껑이 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물병에 들어 있는 물을 마실 때 행동이 다르다. 첫 번째 물병의 물은 손으로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열 것이고, 두 번째 물병은 손으로 지긋이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하면서 연다. 그럼 우리는 생각을 한다. 어떤 물병이 더 좋은지 머릿속에서 고민한다. 우리는 물병이라는 물질이 우리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물질이라는 존재가 상황과 사고에 영향을 주는 것을 ‘유물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물론은 인간의 정신을 물질의 산물로 본다. 이렇게 물질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정신 현상이 변증법으로 사고한다고 보는 것이 ‘변증 유물론’이다. 다양한 환경적, 물질적 경험들은 인간의 생각을 형성해 왔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10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노예제도가 어떻게 폐지되었는가를 고민해 보자. 인간으로서 노예 제도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헤겔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양한 사물과 현상의 정의가 변증법을 통해 사람들이 노예제도의 불평등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 저들은 인간인가? >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권리는 무엇인가? > 노예제도는 타당한가?”와 같은 과정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보면 다르다. 예를 들어 세탁기의 발명으로 끼친 인간 사고의 변화를 보자. “세탁기의 발명 > 여유 시간의 증가 > 왜 우리는 아무 대가 없이 이러한 노동을 해야 하는가? > 인간은 무엇인가?”로 이어질 수 있다. 물질과 환경의 존재나 발명, 변화가 인간 사고 과정의 반영으로 일어나는 것이 변증 유물론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는 ‘관점’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역사를 서술한다. 이때 저자가 변증 관념론의 역사관을 갖고 있다면 그는 위대한 인간에 집중할 것이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절대정신’에 가까운 위대한 인간들. 즉 ‘영웅’을 선별하여 역사를 서술한다. 반대로 저자가 변증 유물론의 역사관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 그는 당시의 발명품, 자연환경, 지리적 특성 등을 토대로 자료를 정리하여 역사를 서술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십자군 전쟁 혹은 임진왜란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서술할 때 저자가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에 따라서 역사를 접하는 독자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변증 유물론의 영향으로 탄생한다. 디자인된 물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 개념을 형성한 것은 변증 유물론이라는 생각의 바탕 때문이다.


디자인은 사람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물질과 환경을 설계하는 접근 방법이다. 특정 물질의 새로운 발명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용성을 개선하는 형태의 설계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자극한다. 기존의 공예가 예술가 건축가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갖게 만든 건 ‘산업혁명’이라는 인류문명의 큰 사건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생산력에 걸맞은 좋은 물건은 사람들 삶의 전반에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사람들의 생각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 생산되는 물건들은 조악하고 형편없어 당시의 공예가 예술가 건축가들은 전체의 생산과정을 계획하고 그에 걸맞은 최고 수준의 제품 원형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만든 학교가 독일의 바우하우스다.


1919년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 교육의 발생지다. 당시 건축가, 공예가, 예술가 등은 물질적 변화가 인간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인간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물질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곳이 바우하우스다. 그래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공공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변증 유물론의 관점으로 건축과 공예, 미술을 접근하면서 형성되었다. 이는 과거 선사시대에 돌도끼, 돌화살촉의 발명이 디자인되었지만 디자인 개념의 시작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당시의 원시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발명하였으나 그것이 변증 유물론의 관점으로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치열한 생존 문제의 해결로 찾아낸 결과들이다. 그래서 디자인 개념은 인류문명의 사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이다. 다만 지금은 때때로 디자인이라는 활동이 주체적 디자이너에게서 ‘소외’되어 자본주의나 전체주의라는 환경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 현대주의?

디자인 양식에서 ‘현대주의’라는 이념은 앞서 이야기한 디자인 개념이 형성된 시기와 함께 등장했다. 여기서 물을 필요가 있다. “왜 현대주의라고 말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현대’는 시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 현시점에 일어나는 사건과 환경들을 현대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현시점에서 과거로 가면 고전적인 것이 된다. 이는 사람들이 갖는 생각 속에서 특정 시기에 대한 판단이다. 예를 들면 전화만 가능하던 2G 핸드폰보다 지금의 스마트폰을 우리는 ‘더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의’는 굳게 지켜 주장하여 어떤 이론이나 학설이 된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어떠한 주장이 논리적 바탕이 될 수 있는 이론을 갖고, 특정 무리가 지속적으로 따르는 관습이 될 때 우리는 이것을 ‘— 주의’라고 부른다. 그래서 현대주의는 어떤 주장을 따르는 무리에게는 하나의 이론으로써 중요한 그 무엇이다. 현대주의자 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지극히 현대적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에 따라 자신들을 모더니스트 즉, 현대주의자라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미 흘러가 버린 이론에 ‘현대’의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보편적인 사람들이 현대주의 양식에서 벗어나게 되면,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 현대주의는 ‘기능주의’ 혹은 ‘본질주의’ 등으로 불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일본의 사사키 이타루는 자신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어떤 철학적 사상에 ‘현대주의’, ‘탈현대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창피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디자인 분야에서 ‘현대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을 들여다보자. 현대주의는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했는데,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생산력과 소품종대량생산이라는 환경이 만나 형태가 가져야 하는 어떤 지향점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디자이너의 커다란 희망까지 더해져 르네상스 이후에 진정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완전한 형태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디자이너들은 누구나 다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소유할 수 있게 된다면 차별과 계급은 붕괴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지극히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학교였고, 이것이 히틀러 집권 이후 바우하우스가 해체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바우하우스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표준을 만드는 것에 전념했다. 바우하우스에 있어서 표준형의 의미는 만들기 쉬운 공장 생산품의 의미가 아니라 문명사회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원형을 의미하며, 우수한 품질을 가지며 본질적인 것이었으며 예술을 산업제품이라는 현실과 잇고자 하는 점에서 예술과 수공업, 산업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이너들은 이상적인 용도에 알맞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제품 형태를 위한 탐구과정에서 오늘날 기능주의의 고전이라 불리는 불멸의 디자인들을 탄생시켰다.

— 이수연, 유철하 (2006). 《바우하우스의 미학적 비례 체계가 현대 디자인에 미친 영향에 관한 고찰》. 한국디지털디자인협의회. 6쪽.


현대주의 디자이너들에게 인간을 위하는 디자인은 ‘기능’적인 것이다. 기능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 중심적이다. 도구나 물질이 인간을 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기능’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물건의 ‘장식’은 현대주의 디자이너들이 볼 때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더불어 대량생산과정에서 장식은 생산의 공정을 복잡하게 하고, 도구의 본질적 측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주전자가 있다고 해보자. 주전자의 본래의 목적인 물을 따르는 것 이외의 주전자를 이루는 장식은 불필요한 것이다. 만약 주전자에 아르누보 양식의 넝쿨 장식이 있다고 해보자. 이는 기능과 상관없는 것이며, 대량 생산 하기에도 불필요한 작업들을 요구한다. 그래서 현대주의 디자이너들은 물건과 물질의 형태는 ‘기능’에서 찾을 때 ‘가장 최고 수준의 원형’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등장한 말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혹은 “형태는 기능을 따라야 한다”이다. 이러한 사상은 디자이너에게 아주 중요한 무기를 제공하게 되는데 그것은 ‘논리적 형태’라는 것이다. 과거의 장식주의는 ‘논리’적일 수 없다. 하지만 형태가 기능을 따르게 만들게 되면, 형태는 설명 가능해지고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당시에는 과학이라는 것이 철학을 제치고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중심이었기 때문에 ‘설명 가능한 형태’는 현대주의 디자이너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기능주의를 형태에만 결부시키지 않고, 교육과 실무 현장까지 확대하였다. 그래서 디자인을 이론화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디자인을 가르치는데 이러한 디자인 이론을 밑바탕으로 활용하였다. 이는 디자인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또한 실무 현장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설계하는 과정에 불필요한 과정들을 제거함으로써 ‘기능’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타이포그래피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두드러지는 것을 우리는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라고 부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