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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포그래피 야학 Apr 29. 2020

02_글줄사이

느낌에서 의미로

일러두기

1. 앞의 글들을 우선 읽기를 추천합니다.

2. 본문 안에서 타이포그래피 용어는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3. 윤문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 글줄사이

타이포그래피를 할 때는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자꼴을 선택하는 일을 제외한다면, 글줄사이는 대체로 글자꼴 크기와 더불어 우선 고려된다. 왜 글줄사이가 우선 고려 대상에 포함되는지, 작업에 어떤 영향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타이포그래피를 시각 기호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그래서 글줄사이에 대한 개념은 타이포그래피를 기호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글줄사이의 의미를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퍼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드물 것이다. 글줄사이는 ‘행간’이라거나 혹은 가독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등의 일반적이고 명쾌해 보이는 답이 어쩌면 더 이상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글줄사이가 갖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질문은 언제나 대상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한다. 


글줄사이는 ‘글줄’과 ‘글줄’의 ‘사이’ 공간을 이야기한다. 사이의 공간이 생기면 시각적 흐름과 방향의 힘 생긴다. 이러한 시각적 방향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임의의 추상적 (혹은 조형적) 형태에 ‘읽는’ 것으로의 의미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어떠한 것을 ‘글자’ 혹은 ‘문자’로 인지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읽는’ 행위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각적 방향이 있는가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겹쳐있거나 임의적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불규칙한 상태를 통해서 어떤 시각적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시각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대체로 시각적으로 감각되는 것으로의 ‘느낌’에 가깝다. 느낌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번에는 반대로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나란히 놓여 있다고 해보자.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어 줄이 형성되고, 그 줄이 구분되어 글줄사이가 생겨 읽는 방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것에 규칙이 있다는 것을 예상한다. 그리고 읽으려 할 것이다. 이때 글줄사이는 어떤 추상적 형태에 시각적 방향을 만들어 체계가 있는 ‘시각 기호’로 인지되게 할 수 있다. 이는 시각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의미’에 가깝다. 이러한 의미는 약속된 규칙으로서 추상적 시각 기호일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글줄사이는 추상적인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며 형태를 문자로 인식시키는 첫 번째 단계이다. 타이포그래퍼는 글줄사이를 만듦으로 해서 그 어떤 형태도 ‘문자’인 것처럼 시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시각언어의 관점에서 글줄사이는 추상적인 형태이거나 특정 조형에 문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다.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여 문자인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형태라 하더라도 글줄사이가 적절하지 않거나 없다면 그것은 시각 언어의 관점에서 문자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추상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형태라도 하더라도 적절한 글줄사이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면 읽어야 하는 문자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글자의 역사와 더불에 적절한 글줄사이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구체적인 의미를 그림의 형태로 표시한 표의문자부터 추상적인 음을 표현한 표음문자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시각적 흐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읽는 방향을 지시하는 도형을 사용하거나 선과 테두리를 넣는 등 다양한 방법이 고민되었다. 그 결과 각 문자는 읽는 방향을 갖게 되고 또한 읽는 방향을 고려해 문자의 형태가 변화된다. 이러한 시각적 흐름과 문자의 관계는 대부분의 문자 형태가 읽는 방향을 갖게끔 변화하도록 영향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현재 대부분의 문자는 글줄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일정한 공간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 활자의 물성적 이해

현재 우리는 디지털 활자(digital type)를 사용하여 디지털 화면에서 프로그램을 이용해 글자를 선택하고 짜기하는 타이포그래피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개인용 컴퓨터로 출판하는 것을 DTP(desktop publishing)이라고 부르며, 디지털 시대에는 다양한 DTP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출판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타이포그래퍼가 무거운 금속활자를 이용해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소하였다. 이는 혁신적으로 인쇄와 출판을 간소화하고 비용을 낮추었다. 하지만 때론 편리한 기술은 우리에게 중요한 능력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그것은 글자를 만져지는 물성으로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능력이다. 디지털 활자는 ‘글자꼴’을 비물성적 형태로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글자꼴을 배열하여 구성하는 일에 있어 우리의 생각을 프로그램이라는 화면 안에 가둔다. 대체로 ‘양식’은 도구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에 이러한 환경적 토대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많은 타이포그래피 양식이 금속활자 인쇄방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돌아보면, 관습적인 타이포그래피 양식의 이유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물성적 속성을 가진 금속활자 인쇄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속활자 인쇄방식은 타이포그래피 역사에 있어 압도적으로 오랜 시간 사용된 방식임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금속활자 인쇄 방식을 경험하고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타입 디자인 혹은 타이포그래피를 교육하는 해외의 전통 있는 학교들은 의도적으로 지금까지도 금속활자 인쇄를 학생들에게 경험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방식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한글 타이포그래피 교육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활자 인쇄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하고, 또한 준비하기에도 그 비용이나 환경 등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특히 글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한글의 금속활자를 모두 구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겐 은유와 비유라는 이해 방법이 있다. 그림이나 사진, 이론을 통해 금속활자를 경험하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촉각적 경험을 동원하여 근접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지루해 보이는 금속활자의 용어들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금속활자(Metal Type)에서 사진활자(Photo Type)로 그리고 디지털활자(Digiltal Type)까지 이어지는 타이포그래피 양식의 맥락을 이해하면,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개선되고 개량된 타이포그래피 양식을 고민할 수 있다. 우선 우리가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알아보자.


우선 DTP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며 왜 이런 기능이 있는지 왜 이런 식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동원리는 우리가 프로그램을 익숙하게 사용하기 어렵게 하는 이유기 되기도 한다. 하지만 DTP 프로그램도 하나의 도구로서 과거의 비슷한 역할을 하던 도구를 참고하여 개선하고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그래서 금속활자 인쇄 방식은 DTP 프로그램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맥락 안에서 프로그램을 이해한다면 작동 원리의 밑바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텍스트 박스를 만들고 레이어를 나누고 글자사이를 조절하는 단위와 글줄사이를 입력하는 부분까지 모두가 금속활자 인쇄 방식을 참고해 개선하고 개량해 만들어졌다. 어떤 기능은 장점을 그대로 개선했으며, 어떤 기능은 불필요한 과정을 축소시켰다. 그래서 글자 혹은 활자의 물성적 속성을 이해한다면 쉽게 프로그램의 설정과 기능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물성적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이해하다 보면 언제나 신기하게도 필요하겠다 하는 기능들 적절히 마련되어 있다.


두 번째는 타이포그래피 작업의 구조적 판단이다.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말로 디자인된 글자꼴을 ‘짜기’하는 과정이다. 글자꼴을 물성적인 것으로 인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짜기 하는 과정을 통해서 구조적인 판단을 더 섬세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자 정렬을 ‘왼쪽 맞춤’으로 프로그램에서 구현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도 글자를 나열한 뒤 왼쪽 맞춤을 위한 아이콘을 누르기만 할 것이다. 그렇게 쉽게 얻어진 결과로 작업자는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쉬운 결과는 작업자에게 여러 측면에서 섬세한 조건들을 잊게 만든다. 예를 들면 왼쪽 맞춤을 하기 위해서 글자가 놓이는 판면의 크기부터 여백, 그리고 단어 분리, 글자의 일정한 간격을 조절하는 배자의 문제, 흘림의 문제 등 의외로 중요한 문제를 잊게 한다. 하지만 물성적 형태로 왼쪽 정렬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직접 금속활자를 꺼내서 글줄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면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우선 인쇄할 종이의 크기를 고려해야 하고 글줄은 어디서 마무리해야 하는지 단어가 분리되어야 하는지 흘림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을 고민하여 글자를 짜기하는 과정을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하도록 한다. 언제나 섬세한 결과물은 독자에게는 완성도 높은 잘 짜인 구조로서 타이포그래피 경험하게 할 수 있다. 물성적 경험은 우리가 어떤 지식 혹은 결과에 도달하는 데 있어 상대방에게 언제나 더 나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서 언제나 초 현실적 SF 액션보다 현실적 드라마가 우리에게 더 많은 감각을 자극하며, 경험이 많은 사람이 타인의 감정을 더 잘 공감할 수 있다. 글줄사이도 단지 상상에 의지해 적절한 글줄사이를 생각하기보다 금속활자부터 어떻게 글줄사이를 만들고 그 개념이 변화해 왔는지 고민하면 좀 더 섬세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 글줄사이와 글줄보내기

글줄사이는 한자로는 ‘행간(항간)’, 영어로는 ‘레딩(leading)’이라고 한다. 이는 금속활자에서 글줄사이를 만들기 위해 납(lead)으로 된 긴 금속 막대를 끼워 넣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한 줄의 금속활자를 짜고 나면 다음 글줄을 짜기 전에 긴 금속 막대를 끼워 넣고 다음 글줄을 짜기 시작한다. 그래서 글줄사이는 납 막대가 들어가 만들어진 공간의 크기만큼을 말한다. 또한 반복되는 글줄마다 일정한 간격을 벌려 독자가 글 전체를 하나의 단락으로 인지 될 수 있게끔 했다. 상상해 보자 분명 인쇄공들은 납막대 간격을 맞추는 일에 온 신경을 기울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정한 간격은 하나의 체계를 갖게 하고, 연속된 시각적 맥락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단락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납막대의 간격을 잘 못 맞추었다면 금속 활자를 다시 해체하여 작업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다행히도 지금 디지털 활자를 사용하는 우리는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 글줄사이의 개념은 금속활자 때와는 조금 다르다.


글줄과 글줄과의 간격. 앞 글줄의 밑선에서 다음 글줄의 밑선까지의 간격을 말하며, 프로그램에서 글자의 중심부나 윗부분을 기준선으로 따로 지정할 수 있다. 

— 출처: 타이포그래피 사전, 한국타이포그래피 학회


타이포그래피 사전의 내용을 보면 ‘글줄사이’를 글자꼴의 특정한 부분의 기준을 잡고 다음 글줄의 해당 기준까지의 간격이라고 말한다. 글줄의 밑선이나 윗선을 기준을 삼는다. 이를 앞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타이포그래피 사전에서 이야기한 ‘글줄사이’와 ‘금속활자의 글줄사이’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글줄사이는 ‘레딩’에 글자꼴 크기를 더한 공간을 말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이러한 상황은 금속 활자와 디지털 활자 중간에 사용된 사진 활자(photo type) 혹은 사진 식자 방식을 돌아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식자’는 글자를 심는다는 의미인데, 사진 식자는 말 그대로 글자꼴을 필름으로 만들어서 인화지에 식자하는 방식인데 이를 ‘인자’라고 한다. 사진 식자는 활자가 필름인 덕분에 금속 활자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기계적 공간적 부피와 렌즈를 이용해서 글자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이는 혁신적인 방식이었으나 알다시피 개인용 컴퓨터와 디지털 활자가 발명되며 오래가지 못했다. 여하튼 사진 식자에서는 한 줄을 인자한 뒤 인화지를 위로 올려 보내 다음 글줄을 인자하는 방식이었는데 타자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때 인화지를 올려 보내는 간격이 기존의 레딩에서 글자꼴 크기를 더해주어야 원하는 글줄사이 공간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를 ‘글줄보내기’라고 한다. 한자로는 ‘행송(항송)’, 영어로는 line feed라고 한다. 그래서 글줄사이(레딩)과 글줄보내기는 분리되어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이 분리되어 있음에도 타이포그래피 사전이 글줄사이와 글줄보내기를 구분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DTP 프로그램이 등장하며 ‘글줄보내기’ 설정을 ‘글줄사이’로 지칭해 사용한 탓에 지금과 같은 혼선이 빚어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우리가 입력하는 인디자인의 ‘글줄사이’ 값은 실제로 ‘글줄보내기’ 값이다. 그래서 작업자가 글줄사이 흰 공간의 적절한 감각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의도한 공간적 수치를 알고 있어야 한다. DTP 환경에서 작업자가 의도한 글줄사이 값을 알기 위해서는 글줄보내기 값에서 글자꼴 크기를 제외해야 한다. 


¶ 글줄사이 짜기

적절한 글줄사이 공간은 어느 정도 일까? 우선 글줄사이는 글을 읽는 방향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로짜기(쓰기)라면 수평으로 읽어나가는 시각적 힘이 중요할 것이다. 수평으로 흐르는 시각적 힘이 만들어 지려면, 수직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각적 힘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직적 시각흐름을 만들어 방해하는 요소인 낱말사이, 문자의 수직획 수, 획 대비, 글자 폭이 좁은 컨덴스드 글자꼴 등과 같은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 중에서 수평적 시각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낱말사이다. 낱말사이는 획 대비나 컨덴스드와 다르게 보편적으로 모든 글자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낱말사이는 문장 안에서 언제나 빈번하게 등장하며, 두드러지게 수직적인 시각 흐름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글줄사이 공간은 언제나 이를 압도할 수 있도록 정하는 것이 좋다. 만약 글줄사이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낱말사이 공간끼리 연결되어 보이는 흰 강(white river)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흰 강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글줄사이 간격이 낱말사이 간격보다 두 배 정도 커야 최소한의 시각 수평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글줄사이가 낱말사이 간격보다 두 배 이상 크기만 하다면 언제나 적절할까? 만약 글줄사이 간격이 계속해서 늘어나 과도하게 넓어진다면 어떨까? 이러한 경우 수평적 시각 흐름이 잘 유지되지만 글줄사이의 흰 공간이 갖는 힘이 글자 형태의 구성적 시각 힘을 압도하게 되어 중요도가 뒤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어두운 밤 갑자기 핸드폰 화면을 켰을 때 우리는 흰 빛에 눈이 피로해진다. 글줄사이가 과도하게 넓다면 이와 비슷한 피로함을 반복해서 느끼게 하여 읽는 행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글줄사이 간격은 이러한 문제가 생기 직전까지가 넓힐 수 있고, 이는 가장 넉넉한 글줄사이 간격이 된다. 대략 글자꼴 크기를 넘지 않는 선에서 글줄사이 간격을 정하게 된다면 흰 공간의 글자꼴의 구성된 힘을 해체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이때 글자꼴 크기는 ‘시각적 크기’를 고려해야 하는데, 시각적 크기란 실제 크기가 아닌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지한 크기를 말한다. 보통 같은 물리적 크기에서 명조보다 고딕이 크게 보이는 것은 시각적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글자꼴의 시각적 크기는 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 한글과 리틴알파벳 글줄사이 짜기

앞에 이야기한 시각적 크기는 한글과 라틴알파벳의 글줄사이 짜기에 영향을 미친다. 한글과 라틴알파벳은 같은 물리적 크기에서 시각적 크기 차이가 생긴다. 대체로 한글은 네모꼴에 꽉 찬 형태로 전체적인 시각적 크기가 인지되지만, 라틴알파벳의 경우 어센더와 디센더가 없는 소문자 x, a, z 등이 글자들이 시각적 크기로 보인다. 그래서 b, g, l, p와 같이 위아래로 뻗은 어센더와 디센더의 공간은 시각적으로 빈 공간으로 인식되어 글줄사이 공간으로 편입되어 영향을 미친다. 이뿐만 아니라 한글은 고정된 폭 안에서 다양한 글자꼴이 설계된 ‘고정폭’ 글자가 대부분이지만, 라틴 알파벳은 대부분 획의 수에 따라 글자의 폭이 늘었다 줄어드는 ‘가변폭’ 형태를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일정한 질감을 갖는다. (많지는 않지만 한글에도 가변폭, 영문에도 고정폭 글자꼴이 있다) 라틴 알파벳의 일정한 질감은 글줄의 결속력을 단단하게 보이게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글줄사이 공간이 좁더라도 고정폭에 네모꼴인 한글보다 시각적 공간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라틴알파벳은 레드 없이 글줄사이를 짜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글줄과 글줄을 레드 없이 잇대어 짜다라는 의미로 ‘잇대짜기’라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한글에서 잇대짜기를 한다면 우리는 글줄사이 공간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한글과 라틴알파벳을 함께 써야 한다면 각각 문자에 적합한 글줄사이 공간을 찾아야 한다. 물리적인 수치가 아닌 시각적으로 비슷한 간격을 가지려면 라틴알파벳이 더 좁을 글줄사이 간격을 가져야 한다. 만약 어느 한쪽의 글줄사이 혹은 글줄보내기 값을 물리적으로 통일한다면 둘 중 하나는 어색한 글줄사이 공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글은 라틴알파벳과 함께 바이링구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함께 본문으로 사용할 때 글줄사이 규칙을 어떻게 통일시켜 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서로 다른 두 문자의 글줄사이를 각자의 개성으로 통일 시켜준다면 서로 구조상 어울리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한 쪽에 맞춰 글줄사이를 정한다면 어떤 것을 과도하거나 부족한 글줄사이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글자의 크기와 글줄사이를 더한 행송의 수치를 배수로 짜면서 공배수로 맞춰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한글의 글자 크기가 10pt이고, 글줄사이가 8pt일 때 행송은 10+8=18pt이다. 이때 라틴알파벳은 한글의 글줄사이 8pt보다 적은 공간을 갖는 것이 좋기 때문에 2~4pt가 적당해 보인다. 그래서 한글 행송의 배수는 18, 36, 54pt 인데 이 중에서 라틴알파벳 행송이 공배수를 이루는 수치 중 선택한 글자꼴에 맞는 적절한 행간을 정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영문의 행송이 12pt라면 한글의 행송이 2번 반복될 때, 영문은 3번 반복될 것이다. 이처럼 배수로 맞춰 줄 수 있는 (공배수) 행송 값을 찾는 다면 한글과 라틴알파벳의 글줄사이 규칙이 일정하게 형성되어 전체 타이포그래피를 설계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어떤 공간이든 상대적 관계에서 인식된다. 글줄사이 간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정도의 공간이 적절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주변에 놓인 형태와 여백뿐만 아니라 판형 크기와 전체적인 구성 등 전반적인 관계를 꼭 고려한다. 글줄사이의 수평적 시각 흐름은 주변의 요소들 글자 크기, 낱말사이, 글자사이, 글줄길이, 글자꼴 무게, 획 대비, 인접한 단락 등 다양한 것과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업과 출력 등 반복적이고 다양한 시각적 훈련은 언제나 적절한 글줄사이 간격을 찾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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