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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y 08. 2024

숙제: PM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의하기

2024년 5월 7일 화요일 - 85일 차

☀ 햇살이 좋다. 햇빛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이다 못해 투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친하게 지내는 개발자 친구 H가 있다. 회사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 멤버 중 하나고, 가능하면 시간도 맞춰서 퇴근한다. 통근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수다 떠는 재미가 있다.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해야 얼굴을 볼 수 있다.


 작년 말 우리 팀의 SWE(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매니저가 Visa로 이직했다. H가 그를 찾아가 인사를 했나 보다. 그러고는 나한테 와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려줬다.

 “그 사람 Visa에 PM으로 간대.”

 “엥?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는 것보다 직종을 바꾼다는 게 더 충격적인데?”

 “그치. 개발자로 면접 보는 거 힘들어서 PM 하기로 했대.”

 “…

 그럼 나는 이 자리에 쉽게 왔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런 대화를 나눈 것도 괜찮다. 하지만 PM(프로그램 매니저)인 내 앞에서 그런 말을 굳이 전하는 건 뭐람. 생각만 많아져서 시원하게 받아치지 못한 채로 대화가 마무리됐다.


 최근 보안 관련 일에 PM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했다. H한테 같이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 쪽 일이 되게 기술적인데 네가 할 게 있어?”라고 물었다.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처음에는 눈치가 없거나 단어 선택을 잘못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이러는 걸 보니 PM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PM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퇴근길에 H에게 물었다.

 “나 궁금한 거 있어. 너는 PM이 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개발자들 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미팅 잡고, 유저들 질문 대답해 주는 거? 아, 세일즈 역할도 한다. 개발자가 만든 거 파는 사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근데 H 말만 들으면 PM이 되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개발자의 비서나 조수, 또는 그 밑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여태 그런 말을 했구나 싶었다.

 “지금 보안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스무 명 넘게 있지? 근데 다들 자기 분야에서 해야 할 것만 하지,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이 없잖아. 나는 우리 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모든 걸 종합해서 우리 시스템이 안전한지 판단하고, 안전하지 않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찾고 공유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 우리 팀이 보안 일 하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별것도 아닌 걸로 원래 하던 일 방해한다고. 나는 보안이 왜 중요한지, 그게 우리 팀이랑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스토리텔링도 해야 해.”


  드디어 H 말에 반응했다. 하지만 이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H의 말을 듣고 불쾌했던 이유는 내가 정확하게 반박할 수 없어서였다. 굴욕적인 말을 들었으니 한 방 먹여줘야 하는데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숙제가 생겼다. PM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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