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타이퍼 Jul 04. 2019

너는 충분히 대단하다.


  "누나, 내가 말하면 듣기 싫어진대. 지루하대. 나 어떻게 해?"


  취준생인 동생이 보내온 갑작스러운 카톡이었다. 그의 짧은 메시지에서 낙담과 절박이 느껴졌다. 취업 준비를 하며 각종 스터디에 나가고 필기시험을 거쳐 면접도 몇 번 치렀다고 들었는데, 졸업이 올해 초의 일이었으니 반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본인에겐 그 시간이 반만년 같은 무게였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의 낙담은 취업 준비를 같이 하던 친구들이 너무 솔직한 피드백을 내어 놓으며 시작되었다. 그들은 동생에게 '너는 절대 면접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다'라며 [목소리의 톤이 답답하고 우울하며 지루해서 듣기가 싫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서로 생일 축하나 명절 인사 정도만 건네던 나이 터울이 큰 누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그것은 동생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듣고 (카톡이니까 보고-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이 왜 그런 피드백을 내어 놓았는지 안 보고도 알 것 같았다. 낮고 어두운 목소리를 가진 남동생은 말주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이 없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같은 집에 있어도 목소리 한번 들을 일이 없는 날이 많았을 만큼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입을 열지 않았다. 동생의 성대는 남들보다 훨씬 새것일 게 분명하다. 남들 쓰는 것에 반도 안 쓰고 살았으니. 그런 사람이 완전한 타인도 그렇다고 가까운 지인도 아닌 스터디 그룹 사람들과 모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유창했을 리도  당당했을 리도 자연스러웠을 리도 없다.


  사실 엄마의 전남편을 (-아 정말 아버지라고 칭하기도 싫다) 제외한 우리 가족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늘이 있다. 무어라 딱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음울의 정서가 깔려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감추어도 묘하게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을 성장 배경에서 얻었을 거라 짐작한다. 나도 내 동생도 그랬다. 자라오면서 겪은 조용한 정서적 가정폭력이 우리를 그늘지게 했다. 항상 불안했고 내내 두려웠던 유년기의 기억은 안 그래도 타고나길 내성적이고 덕분에 섬세하고 예민했던 우리를 '눈치 빠르게 상황 파악 후 얌전히 행동하는 착한' 아이들로 만들었고 그 과정 중에 동생은 말수를 더 줄여갔다. 말보다는 눈으로 보고 행동으로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눈치 보는 기술은 어렸던 우리가 불안한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필요한 주요 기술이었다.


  아무리 목소리 톤과 텐션을 끌어올려보아도 저는 안되더라고, 본인이 본인을 찍은 영상을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목소리가 확실히 답답하고 듣기 싫더라며 망연자실하는 동생에게 무어라 말을 해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 본인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어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된다며 안 그래도 희미했던 자신감을 아예 잃어가고 있다는 동생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위로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자기 고백이 최고였던 걸 기억해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요즘 영어로 말하는데 눈치 보느라 아는 만큼 말을 못 해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엉터리 영어라고 저 사람이 나를 바보로 보는 게 아닐까, 아니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게 간호사라고 비웃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느라 평소보다 더 말을 못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속상했다고 고백했다. 긴 고민 끝에 더 이상 고민하길 그만둔 것은 내가 갑자기 네이티브처럼 영어가 편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날 보며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든 말든 나는 합당한 절차를 통해 필요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후 면허를 가진 간호산데 어쩔거나고. 영어는 좀 어눌해도 일에 관련해서라면 뭐든 척척 알아서 잘 해내면 되지 않겠냐고. 자기 고백을 하다 보니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저절로 이어졌다.


  그러니 너도 다른 사람이 [목소리 톤이 답답하고 우울하며 지루해서 듣기가 싫다]고 생각하던 말던 너는 니 생각을 전달하라고. 너는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평가받는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니라고.


  타고나길 저음에 키워지길 우울하게 그렇게 이십 수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는데 이제와 억지로 톤을 올리고 텐션을 높인다고 갑자기 밝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가 나오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가짜 목소리를 내느라 긴장만 더 되고 어색하기만 할 뿐. 면접관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요건이 있는 사람을 찾으려 들지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아닌지 가려낼 생각은 아닐 거라고 말해 주었다. 목소리가 우울하고 텐션이 낮더라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에는 귀 기울이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 그 말의 내용에 더 집중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동생과의 카톡을 마무리 지었다.


  가지지 못한 '밝은 톤의 활기찬' 목소리를 연습하다 좌절한 동생의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


 세상에는 밝은 목소리로 활기차게 말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말하기보다는 듣고, 들어서 떠들어 옮기기보다는 안으로 품어 고민하는, 그래서 말없이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며 타인을 해치지 않는 동생 같은 사람도 필요한 거라 믿는다. 말이 능숙해서 청산유수인 데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 중에 믿을 놈이 얼마 없다는 것, 나도 아는 이 경험적 지식을 면접관들도 다 알고 있겠지?


  그리고 덧붙여 말해주고 싶다.


  동생아, 너는 우리의 암울했던 성장 배경에서도 삐뚜름히 살지 않고 바르고 착실하게 자라 대학교를 졸업했고 취업 필기시험에도 붙지 않았느냐. 너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대단하다.





(img ref: Pixabay로부터 입수된 mohamed Hassan님의 이미지 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