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타이퍼 May 17. 2020

아름다워 서글픈 시절

하루치 아무말 34



  최근 이슈 된 2017년 한 솔로 가수의 무대 영상에 달린 온갖 조롱과 희화의 댓글은 당사자와 털 끝만큼의 인연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오랜 팬도, 스쳐간 팬도 뭐도 아닌 내가 그를 걱정하게 될 정도로 잔인했다. 그렇다고 거기다 "다들 너무 잔인하시네"라고 댓글을 달아줄 만큼의 애정이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오히려 그 조롱과 비난, 불호를 강하게 나타낸 댓글들이 찰떡같은 비유와 언어유희로 가득 차 있어 그들의 재치에 감탄하고 또 조롱의 맥락을 나도 모르게 이해해 같이 웃는 쪽이었다.


  내가 처음 그 가수에게서 넘치는 자의식을 느꼈던 것은 한참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로 몸값이 하늘을 찌르던 때 그가 출연한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서였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죽을 만큼 노력해 그 자리에 올라 선 사람이 가지는 자부심이 TV 화면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그의 성장 배경과 노력의 과정을 듣고 있자면 저 정도 자부심은 당연하다고도 생각했었다. 당연한데 당연한 것을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당연하다 말해주기 싫어지는 그런 설명하기 애매한 불호의 감정이 생겼다. 그 후 그가 발표했던 노래들엔 하나같이 잦은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고 노래되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추임새로 채워진 것 같았다. 또 그의 자부심, 아니 자부심을 넘어 오만함으로까지 보이는 어떤 것이 강렬하게 드러나있었다. 듣기에도 보기에도 즐겁지 않았던 그의 노래는 점점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그의 무대를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조롱 댓글이 만든 역주행으로.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몇 년 전의 노래가 시대를 몹시 뒷서간 노래로 주목받고 최고의 스타 자리에 서서 과한 자신감을 뿜어내던 그 가수는 조롱받는 처지가 되어버린 꼴을 보고 있자니 생각 없이 웃다가도 서글퍼졌다. 내 젊은 시절 연예계를 씹어 먹던 대 스타가 아재라 불리며 웃음거리가 되어있었다. 음악이나 패션의 호불호는 개인 취향이므로 존중한다 쳐도, 그가 노력으로 이뤄낸 과거의 영광마저 조롱의 대상이 되어 폄하되는 것은 동시대를 청년으로 살았던 내게도 서글픈 일이었다. 요즘 사람들의 트렌드를 놓쳐버린 옛날 사람이 희화화되고  옛날 사람이 된 내 세대는 이제 너무 구닥다리라 뭘 하려 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 주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춘 그는 그 조롱과 비난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 담담해 지기까지 돌봐야 했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을 향한 비난과 조롱에 쿨 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는 내색치 않았다. 되려 본인 영상에 달린 댓글이 예능프로그램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유명한 댓글 중 하나인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리스트를 직접 읊다가 이건 하게 해달라고 포기 못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조롱받는 그 곡과 안무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며 지난 18년간 본인이 만들어온 역사를 춤으로 보여주었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사람들은 그의 쿨함에 크게 놀라고 그의 녹슬지 않은 실력에 감탄하며 태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당신을 미워해서 그런 댓글을 단 게 아니라, 가진 재능과 실력을 파묻어버리는 음악을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조롱이 조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참 순식간에 그리 되었다.


  그 방송을 본 직후 나는 또다시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2002년 그의 무대를 봤다. 무려 18년 전 그의 데뷔곡 영상이었다. 그는 반쯤은 소년 같고 반쯤은 어른 같은 얼굴로 간절함과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처연하게 머리칼을 찰랑대며  정성스레 노래하고 강렬하게 춤추고 있었다. 심지어 생 라이브였다. 조롱받던 그의 모습, 과잉된 자의식 같은 몸짓은 없었다. 그저 아름다웠다. 정말 2002년 스물한 살의 그는 아름다웠다.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젊음 그 날 것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너무 아름다워서 나쁜 남자라 외치는 그를 몇 번이나 돌려봤다. 물론 어젯밤 예능에서 노련하게 춤추던 그도 멋있었지만 스물한 살의 그에겐 비할바가 아니었다. 호우주의보 없이 성실하게 노래를 하면서 뼈가 부서져라 춤추는 그. 무엇보다 그 눈빛. 그 안에는 과잉된 자의식 대신 간절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은 대스타가 되어 정점을 찍었을 때, 그러니까 비가오고있다와 비오니즘 영상에서조차 볼 수 없는 매력이었다.


  스물한 살의 젊음은 위험할 정도로 아름답고 강렬하다. 그 시절을 지날 때는 모르고 지나 봐야 느껴지는 그 아름다움이 안타깝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그러나 누구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다 알진 못했던 그 시절이 너무 짧아 서글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찍도착해야마음편함병과 앉은자리한봉순삭스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