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
10년도 더 된 기억을 왜 꺼내는 걸까...
5월 4일 푸(pu)가 왔다.
3개월 된 샤페이 암컷.
아주 아주 쭈글쭈글한 녀석이다.
태어날 때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어 약간 불편해 보인다.
잘 먹고 성격도 수더분해 보인다.
마르티즈 달과 별이 곁을 주지 않아도 꿋꿋하다.
5월 5일, 하루 종일 잘 놀았다.
Es가 끌어안아주면 코를 그릉거리며 기분 좋아한다.
딸아이가 오랜만에 순한 친구가 생긴 거 같아 흡족하다.
5월 6일.
역시, 하루 종일 잘 놀았다.
저녁나절에 밥을 먹이고 소파에 누워 가슴 위에 올려주니
코를 드릉드릉 골며 잘 잔다.
여기까지였다....
자정 무렵, 작업실로 들어오며 깨웠더니
와락, 토한다.
예감이란 게 있다.
덜컥, 뭔가 가슴에서 내려앉는 느낌...
이후, 몇 시간 간격으로 토하고 잠들기를 반복한다.
장염이 의심스럽다.
5월 7일, 아침부터 구토에 설사, 고열.
아무래도 파보 장염과 켄넬코프(독감)가 한꺼번에 온 듯하다.
애견샵에서 다리에 문제가 있는 아이라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어찌어찌하다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겠지만...
절망적이지만 아이들에겐 아빠가 잘 보살펴서 회복할 수 있게 해 볼게... 하고
거짓말을 했다.
병원에 데려가면 입원을 시킬 테고 수액을 놓아주겠지만
차가운 케이지에 갇혀 토하고 싸다가 결국 죽고 말 것이다.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체온이 떨어져 옷을 입히고 담요를 덮어주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안아주면 그나마 약간 체온 유지가 된다.
품에서 힘겹게 숨을 쉰다.
저녁에 주사기로 물을 2ml쯤 먹이고 잘게 부순 육포를 몇 조각 먹였다.
밤새 조금 안정되는 것 같다.
5월 8일, 오전에 설탕물을 주사기로 먹인 다음 다시 구토가 시작됐다.
탈수 증세를 막기 위해 11시경 다시 설탕물을 3ml 급여했지만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토하고 말았다.
오후 1시, 다시 설탕물 2ml 급여, 결과는 마찬가지다.
밤 9시까지 계속되는 구토, 그리고 괄약근을 조절할 힘도 없는지 설사를 줄줄 흘린다.
달과 별, 마당의 썬, 모두 예방접종은 시킨 상태이지만 전염이 우려되어
어쩔 수 없이 케이지에 넣고 작업실에 격리시켰다.
케이지에 대한 나쁜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일까, 꺼내 달라는 몸짓을 한다.
방석과 덮을 것을 넣어주고 곁에서 계속 지켜보며 힘을 내라고 쓰다듬어 주었다.
이따금 일어나 힘겹게 눈을 들어 무기력한 주인을 올려다본다.
동물병원에서 지어온 약(나는 이런 약이 강아지보다는 주인을 위한 위약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을 물에 타서 주사기로 경구 투여했다. 구토는 진정 국면. 그럴밖에... 먹은 게 없지 않나...
길고 긴 밤...
비록 3개월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지만 푸는 강한 녀석이었다.
까무룩 정신을 잃을라치면 안간힘을 쓰며 이틀 사이에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을 떨며 버텼다.
건강해지면, 이거 이겨내면 항상 곁에 두고 있으마, 어딜 가든 데리고 다니고 즐겁게 지내줄게, 헛된 약속을 녀석에게 끊임없이 해주었다.
5월 9일, 오전 내내 침대에서 녀석을 끌어안아 주었다.
제법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호흡도 고르고, 체온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오 무렵, 다시 약을 먹이고 으깬 닭고기를 조금 먹였다.
햇빛이 드는 현관에 방석을 깔아주었더니 비틀거리며 걸어 나가 누웠다.
편안하게 잠이 드는 것처럼 보였다.
중간고사를 마친 Ej가 일찍 돌아왔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나 자신도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텃밭에 나가 잡초를 뽑고 우수로에 쌓인 나뭇잎을 긁어냈다.
정말 다 나은 것 같았다.
따스한 햇빛 아래 한숨 자고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그 쭈글쭈글한 얼굴로
깡깡 거리며 뛰어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상상을 하며 텃밭에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뛰어왔다.
"쟤... 죽은 거 같아..."
달려가 보니 막 마지막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작은 몸뚱이가 식어가고 있었다.
동공이 풀리고 있었다.
심장 마사지를 5분 정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후 3시, 끝이었다.
아내는 마당에 서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고,
Ej는 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쯤 멍하게 녀석을 내려다보다가 심호흡을 하고 일어섰다.
녀석이 입던 옷 두 벌, 닭고기 깡통, 방석, 베개... 그리고 또 뭘 챙겼던가.
뒷산에 올라 호젓한 숲 속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끼를 긁어내고 삽질을 하고 반듯하게 다듬고 그리고
녀석을 누였다.
내내 아프기만 하더니 이제는 정말 편안하게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제 아프지 않구나."
겨우 그렇게 말해주었다.
챙겨간 물건들을 함께 넣어주고 흙을 덮었다.
흙을 돋우고 이끼를 덮고 꽃나무도 한그루 심어주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산을 내려오는데
후르륵, 눈물이 흘렀다.
바보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Es가
"푸는?"
하다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제 방으로 들어가 엉엉 울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아이들을 달래 뒷산에 올랐다.
언제 챙겼는지 Es는 셀로판테이프를 꺼내 나무십자가를 만들어
개의 무덤에 꽂아주었다.
Ej는 힘겹게 들고 온 표석을 놓아주었다.
"언젠가 헤어지는 거다. 그리고 푸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이제 아프지 않으니까 그렇게 잘 된 거라고 생각하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는 대개의 경우 주인에게 상실감을 주고 먼저 떠나기 마련이다.
개와 더불어 산다는 건 남겨지는 슬픔을 예비하는 것이다.
밤이 깊도록 마당에 모닥불을 지피고 앉아 소주를 홀짝거렸다.
썬이 이따금 컹컹 짖었다.
잠시 머물렀지만 너무 힘들었던 샤페이 푸(Pu)를 기억한다.
편안하게 자던 단 한 컷의 사진이 남았다.
지독하게 못생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