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을 뻗어 스탠드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는 부러진 이빨을 집어 들었다. 이제 최초의 혼란과 공포, 불안감은 다소 진정되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깨진 사기그릇이거나 돌조각이라는 쪽으로 우겨도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이빨이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누군가의 이빨일 수 있다. 그게 어디선가 묻었다가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 누구도 이것을 근거로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를테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느 일방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상황을 지극히 객관적으로 정리한 셈이었다. 혐의를 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드르르르…….
다시 전화가 진동했다. 열한 시 십 분이었다. 어떤 녀석이 이렇게 집요한 것일까. 일요일 밤에 내게 전화를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내내 턱을 받치고 있어서 뻣뻣하고 저린 왼팔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발신 번호 표시 서비스라도 신청할 걸 그랬다. 한 손으로 이빨을 만지작거리면서 전화의 폴더를 열었다.
“……저어…….”
일, 이 초쯤 망설이는 듯하더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제 술을 마시면서 여자를 만났던가?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일까? 그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미스터리를 풀어줄 문제의 대리운전자인가! 아, 대리운전의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말씀하세요.” 하고 나도 모르게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실례지만…….”
여자는 내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내가 맞다고 하자 이번에는 내 이름을 정확히 댔다.
“누구시죠?”
여자는 십 초쯤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 짜증스러운 나머지 전화를 끊고 싶어 졌다. 내가 아는 여자들을 모두 떠올려보았지만 이 목소리와 일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 나는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게 몹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지만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솔직히……누구신지 알 수가 없군요.”
“그러시는 게 당연할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여자가 머뭇거리며 다시 말끝을 흐렸다. 장난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고 진지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지난겨울에……이마트에서 소나타…….”
말끝을 흐리는 게 습관이라기보다는 불안감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빨을 만지작거리던 손놀림을 멈추었다. 지난겨울, 이마트에서 소나타. 지난밤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엉망으로 뒤엉킨 내 두뇌가 그 간단한 정보만으로 한 여자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난겨울, 근처에 있는 대형할인점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당했었다. 쇼핑을 마치고 나와 보니 뒷문짝부터 트렁크까지 찍혀서 긁힌 자국이 길게 나 있었고 메모가 창문에 붙어 있었다. 주차 관리원이 현장을 목격하고 방송으로 계속 나를 찾았다고 했다. 사고를 낸 여자는 급한 볼일이 있어서 주차 관리원에게 자신의 차량 번호와 연락처를 남기고 떠난 뒤였다. 창문의 메모에는 또박또박 쓴 글씨로, 대단히 죄송하며 반드시 변상하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이웃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 여자와 저녁을 먹었다. 독특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처럼 전체적으로 길고 어딘지 모르게 기울어진 느낌의 소유자였다. 말수가 적었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이따금 긴 갈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습관이 있었다.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변상 대신 그녀가 저녁을 샀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툭툭 끊어지는 대화를 한 시간쯤 했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녀가 피아노 선생이라는 사실, 그래서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고 그날 밤 꿈에 그녀의 발가벗은 뒷모습을 언뜻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잊혀졌다.
“아, 네……피아노 가르치시는……오랜만입니다……어떻게 전화를……?”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과, 방금 들었는데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여자에게 감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더듬거렸다.
“실은……낮에…….”
명치끝의 통증이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심장이 쿵쿵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떨고 있었다.
“낮에……삼거리에서 그쪽을 봤어요. 그래서…….”
말과 말 사이의 텅 빈 듯 한 호흡, 그것이 그녀의 진정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했다.
카센터에서 나온 나는 차를 돌려 뉴스에 나왔던 그 삼거리로 달려갔었다. 사고 현장은 이미 말끔히 수습되어 있었다. 노면의 하얀 스프레이 표식 말고는 그 끔찍한 사고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차들은 무심하게 그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사고 현장 반대편을 조금 지나쳐서 2차선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 안에서 현장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차에서 내릴만한 배짱은 없었다. 범죄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게 범죄자의 심리라지 않던가. 어딘가에 잠복해 있는 경찰이 현장에 나타난 범인을 덮치기 위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의 그 현장을 둘러봐도, 내가 뺑소니를 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느낌의 확인만으로도 나는 극도의 불안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도 같은 시간, 그 삼거리에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나를 그녀는 알아보았던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답했다. 그녀 자신도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전화의 잡음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저는 단지, 전화 통화 때문에 잠시 정차했었습니다만.”
혼란의 와중에 느닷없이 딱딱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이 여자 때문에 어떤 곤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리라.
“그랬군요…….”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뭘 좀 하다가 전화를 받아서 그러는데요.”
“네, 그게……실은……시간이 좀 되시면…….”
만나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시금 이빨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내일 출근하려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늘 그렇지만 월요일 오전 열 시에는 회의가 있을 예정이다. 보잘것없는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부러진 이빨이나 삼거리의 끔찍한 뺑소니 사고보다는 낫지 않은가.
“너무 늦은 시간 아닙니까?”
사무적인 투로 가장했지만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가늘게 떨렸다. 스탠드 불빛이 닿지 않는 방안 구석의 어둠 속에서 뭔가 번쩍거렸고 귀청을 때리는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머릿속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눈앞으로 시커먼 물체가 왈칵 달려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꼭 만나서 할 말이 있어서……저, 너무 무서워요, 지금.”
나는 땀이 밴 손으로 전화기를 꼭 잡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섭다는 그녀의 말이 더욱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겁에 질린 창백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휴게소 건너편, 베이스캠프 304호실이에요. 와주실 수 있나요? ”
“오래 있진 못해요.”
나는 무뚝뚝하게, 마지못해 응한다는 느낌을 주면서 대답했다. 베이스캠프라면 산장 식으로 지어진 모텔이었다. 단 한 번, 그것도 접촉 사고 때문에 저녁 식사를 했던 여자가 모텔에서 만나자고 늦은 밤 전화를 했다. 부러진 이빨, 삼거리의 뺑소니 사고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았다. 이빨에 대한 입장 정리를 그렇게 했듯이 마찬가지로 어느 쪽에도 무게를 주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