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지향
자랑이지만 최근 5년 간 4번의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수상이력을 지니고 있다. 매년 수만 건 이상의 광고가 온에어 되지만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받는 캠페인은 100편 남짓 될 것 같다. 소위 1%의 캠페인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국내에서만큼은. 그런 캠페인에 거의 매년 참여해서 성과를 냈다는 것은 광고인으로서 큰 자부심이었다. 매년 다른 브랜드, 다른 부문으로 수상했다. 신문광고, 옥외광고, TV광고, 공익광고.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대한민국 광고대상에 참석해 본 경험이 딱 한 번이다. 2021년에 처음 수상했는데, 그때는 코로나 탓에 시상식 자체가 없었다. 2023년에는 태교여행을 갔고, 2024년에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2025년, 드디어 첫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업계를 떠나야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시상식은 광고인들만의 쇄국적인 파티였다. 언론도, 소비자도, 심지어 주관 부서인 문체부의 관심조차 낮았다. 장관 대신 참석한 차관급 관료의 축사는 공허했고, 포상금이나 부상도 없는 무대 위에서 우리끼리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광고주들은 셔터 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회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 시간은 축제가 아닌, 단 몇 시간의 자위(自慰)처럼 비춰졌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이런 행사에 참석하니 광고인으로서의 자부심 따위는 소멸해버렸고, 이런 업계라면 발전 보다는 현재에 머무를 것이라고 판단됐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광고제라서 더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지만 복잡하다. 우선 이직처의 기준점을 나름대로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평이동이 되지 않아야 한다. 광고계를 떠나지만 광고일을 잘 써먹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최소한 매년 1회 이상의 대고객 브랜드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있어야 한다. 마케팅 조직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향후 10년 내에 쇠락하지 않을 산업군이어야 한다. 이런 나름의 기준점을 정립하다 보면 이직처에 대한 리스트업이 가능해진다.
우선 상장사 중 중견, 대기업만 리스트업을 했다. 앞서 말한 수평이직을 피하기 위해서다. 연봉, 복지, 개인역량 발전 차원에서 상향이 가능한 곳들은 최소한 중견, 대기업 외에는 없었다. 물론 스타트업 중에서도 시리즈 B 이상의 투자가 예정된 곳들도 있지만 그런 곳들은 마케팅 조직이 자리잡지 못했거나 자리 잡았더라도 사내 영향력이 낮을 거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스타트업은 창업자의 엑시트로 휘청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애초에 이직처 리스트에서 뺐다. 나의 경우 대기업 건설부문, 커머스 플랫폼, 게임, 식품 대기업으로 이직처를 리스트업 했다. 당장의 이직 의사가 컸던 상황이라서 시기적으로 오픈된 포지션 내에서 정해야 하는 제한사항도 있었다.
이직처를 선정하고 나면, 이직처에 오픈 된 포지션에 대한 디스크립션을 잘 읽어 보아야 한다. 나의 경우, 브랜딩, 브랜드 리뉴얼, 커뮤니케이션 전략, 크리에이티브 리딩, 광고제 수상 경력 등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직무, 해왔던 일과 연관성이 짙은 키워드 중심으로 이직 포지션과의 적합성을 1차로 고려했다. 그러면 최소한 서류합격까지는 수월했던 것 같다.
크게 브랜드 마케터 직무에 지원하는 입장이니 이력서와 함께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이력서는 수상성과와 캠페인 운영의 결과를 상세하게 썼다. 캠페인의 문제정의와 적확한 솔루션의 대응이 한 눈에 보이게 기재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논리적으로 써냈다. 포트폴리오는 했던 모든 것이 아닌, 성과 위주로 5개로 추렸다. 제목도 SHORTfolio라고 해서, 컴팩트하게 정리했다. 어차피 이직자의 원죄, 즉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설득하기 어려운 영역이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일하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오픈 된 포지션에 필요한지를 설득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원했던 대부분의 곳들에서 서류합격의 연락을 받았다.
이직 면접은 생각 보다 단순하게 준비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와 내가 제출한 서류에 대한 최대한의 구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이직처에 대한 이해도는 아무리 노력해도 평가자 보다 높을 수가 없다. 최소한 이해하고 있는 수준, 관심의 정도만 보여줘도 눈감고 넘어가주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내가 제출한 서류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최소한 내가 했던 것에 대해서 만큼은 어떤 것이라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그 덕에 실무면접까지는 무사히 통과했던 기억이 있다.
실무면접을 통과하면 임원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임원면접은 기업의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실무면접에 참여했던 사람이 또 들어오거나, 실무들의 의견을 보고 받은 최상위급만 참여하거나, 면접이 잡힌 지도 몰랐단 사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인상을 받거나. 그럼에도 결국 1차 면접에서 유효했다고 생각하는 답변은 최종면접에서도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필요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가’가 중요했던 것이다.
보통 공통되는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왜 이직하려고 하는지’
‘왜 우리 회사인지’
‘우리 서비스/브랜드를 써봤는지, 왜 좋은지, 왜 좋지 않은지’
‘본인의 강점, 단점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사실 ‘왜 우리 회사인지’가 답변하기 가장 어려웠고, 지금도 쉽게 답변하지 못할 질문이다. 가장 강력한 답변은 본인이 직접 찾는 것이겠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가고 싶은 회사에 시험삼아 한 번쯤 지원하길 권한다. 그래야 진짜 기회가 왔을 때 "예전의 부족함을 채워 다시 돌아왔다"는 강력한 서사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합격은 보통 열흘 이내 연락이 온다고 본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회사 내부 문제가 있거나, 합격 시킬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왜냐하면 포지션이 오픈 된 이유는 크게 2가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첫 째, 해당 포지션의 결원. 이럴 때는 업무 연속성을 위해 빠르게 대체자를 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최종합격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둘 째, 신규 포지션의 생성. 이럴 때는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한 달 이상을 지체할 이유는 없다. 얼른 합류 시켜 업무 이해도를 높여야 손발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흘이 넘어가서도 최종합격 연락이 없다면, 포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사실 최종합격 이후에도 할 일이 많다. 우선 처우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열흘이 마지노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처우협의에 필요한 서류, 가령 원천소득영수증, 3개월 간 급여명세표 등을 제출하면 이직처에서는 보통 1주일 이상 검토하고 회신을 준다. 그러면 최종합격 하고 거의 한 달이 흐른다. 급한 포지션이라면 일주일도 채 안 걸리겠지만, 보통 1개월 가까이를 처우협의 하는데 쏟는다. 그리고 회사 마다 다르지만 레퍼런스 체크가 병행 된다. 최종면접 직접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최종합격 한 다음에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처우협의는 만족스럽지 못해도 당장의 이직 의사가 강하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2차례 거절을 한 후에 서야 오퍼레터에 합의를 했다. 한 번 더 거절하면 취소하겠다는 압력이 작용했지만, 나의 입장에서 현직장 보다 연봉, 복지 등이 상향되는 마당에 최소한 백만원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면 소위 뻗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 지원부터 최종합격까지 약 1.5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2번째 이직 때는 지원부터 최종합격까지 2주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직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남 보다 이별이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날 강력한 명분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의 경우, 사무실이 이전하면서 통근시간이 약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10년차가 가까워지면서 직무전환의 필요성이 커졌다. 10년차가 넘으면 직무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많이들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가지를 명분으로 퇴사를 고했다. 이때 나 같은 경우, 이직처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럴 의무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 사수와 일부 친하게 지냈던 분들께는 따로 식사자리를 마련해서 말씀드렸다. 어떤 이유로 이직하는지, 그래서 왜 그곳으로 이직하는지에 대해 설명드렸다. 퇴사할 곳에서 혹시 모를 소문에 대비하기 위한 우군을 심어둔다는 차원에서.
퇴사를 통보할 때 퇴사일정을 잡는 것이 좀 어려운데, 이직처에는 최대한의 기간으로 협의하고 퇴사할 회사에는 최소한의 기간으로 협의하면 보다 수월한 것 같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퇴사하고 바로 다음주에 출근하긴 했지만. 최소한 이틀은 쉴 수 있었다.
나의 경우, 2025년의 반 가량을 육아휴직으로 보냈기 때문에 정상근무를 했던 해에 비해서 총급여가 적었다. 정상근무 했다면 꽤나 많은 급여와 성과급을 수령했겠지만 반토막이 나버려서 처우협의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23년, ‘24년, ‘25년까지의 원천징수영수증을 보내면서 3년 치의 평균으로 협의를 진행했고, 이직과정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육아휴직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직 과정에서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행히.
그리고 나는 연초에 이직했기 때문에 직전연도의 성과급을 수령하지 못한 채 퇴사를 했다. 사실 2주 정도만 조율했다면 성과급까지 받고 퇴사할 수 있었지만, 직전연도 근무기간이 6개월 남짓이라 성과급을 받더라고 반토막이라 다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상의 밸류가 이직을 통해 보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돈 백만원이 아쉽다면 일정조율을 해서 받을 건 다 받고 퇴사하는 것을 추천한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 이직하기 어려운 환경은 맞지만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나와 핏한 포지션을 찾는다면 이직을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자리에 계속 있으면 고이고, 썩는다. 이직을 결심할 때 주변을 둘러보면 좋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다면 그곳은 분명 좋은 직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적으로도 좋을 것이냐? 그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보면 본인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고민을 시작하게 되고,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직무를 찾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