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문화가 선진국에서만 유행할 수 있는 이유
어느 날인가부터 우리나라에 빈티지 스타일이 꽤나 유행하고 있습니다. 카페를 가든 인기 있는 인테리어를 보든 빈티지 스타일이 빠지지 않는 곳이 없고, 서촌, 상수동, 연남동 등에 생겨나는 빈티지 스타일의 공간들과 응답하라 시리즈, 나가수 및 불후의 명곡 등 옛것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현상이 대중의 주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죠. 이 빈티지의 유행을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가 어지간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왔구나’ 라고 느낍니다. 빈티지의 유행과 그 사회가 선진국인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으실 수 있지만 사실 밀접한 관계가 있답니다. 선진국, 특히 경제적으로 선진화되지 않으면 빈티지가 유행하지 않거든요. 왜 그러한지 빈티지 문화가 경제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빈지티가 회자되기 시작해 근 5년 사이에 빠르게 대중의 생활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젠 빈티지가 트렌드를 너머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먼저 '빈티지(Vintage)'와 '유행'의 의미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빈티지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해보면 ‘빈티지하다’ 란 ‘옛것으로 품위를 살린 데가 있다’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빈티지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죠. 옛것을 사용할 것, 그것으로 인해 품위가 있을 것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 ‘빈티지하다’고 할 수 있겠죠. 또, '유행'의 의미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유행'이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많은 사람들이 추구한다는 것은 그것이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가진다' 는 것을 말합니다.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들은 보통 공급이 수요보다 적은 '흔치 않은 귀한 것'들이고요. 정리하면, 빈티지의 유행이란 '품위 있는 옛것이 귀하여 사람들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추구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왜 1980년대 2000년대도 아니고 지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잠시 20세기 중후반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 대 전쟁을 겪고 심한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서졌으며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겨우 6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세대가 여전히 국가의 주축 중 하나인 상황입니다. 이 당시는 ‘새 것’ 이 높은 가치를 가졌습니다. 당연하게도 새 것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인데요, 자원과 기술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 것을 많이 생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새 옷, 새 학용품, 새 가구 등은 그래서 높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라는 동요를 아시나요? 지금도 새 신을 사면 기쁘겠지만 이 동요가 만들어질 시절에는 새 신을 사면 하늘까지 올라가는 기분이지 않았을까요.
이후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고 대량 생산 제품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새 것이 범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마을 운동, 88 올림픽을 거쳐 2000년대를 맞이하며 생산 공학 및 국제화가 발전하여 질 좋고 낮은 가격의 제품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수입되기 시작합니다. 국민 소득과 비교한 일상생활 용품들의 가격은 오히려 낮아졌는데 다이소 등의 저가 생활 제품 브랜드 및 지오다노, 유니클로, 포에버21 등 중저가 패션 SPA 브랜드가 소비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고급 시장이던 화장품도 미샤, 토니모리 등 가격 대비 질이 좋은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며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가구 공룡 이케아가 진출하여 저렴하고 좋은 가구 시장에 불을 붙이며 예쁘고 내구성도 좋으면서 가격이 싼 가구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화룡점정으로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마트의 증가, 온라인 가격 비교 사이트 및 해외 직구의 발전 등으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제품을 점점 더 낮은 가격에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한 마디로 새 것이 넘치는 사회가 된 거죠.
자, 제가 글 서두에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들은 보통 ‘흔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새 것이 흔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반대로 옛것들이 흔하지 않고 ‘귀해져’ 버렸죠. 1950년 대 전쟁을 겪으며 크게 소실된데다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오래된 것은 안 좋고 새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수많은 옛것들이 버려졌습니다. 또 남아있더라도 새 것에 자리를 내주고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는 옛것들이 허다합니다.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가치가 상승한다고 말씀드렸죠? 일단 옛것은 공급면에서 이렇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 시간이 지나야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해서 바로 만들 수 없어 애초에 대량 공급이 불가능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기만 한다면 옛것의 가치는 자연스레 상승하여 사람들이 찾게 되고 이어서 유행의 단계에 접어들게 될 거라는 거죠. 즉, 그동안은 수요가 많지 않아 아무런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다가 2000년대를 지나며 그 인기가 점점 올라갔다는 것은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옛것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이길래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까요?
대량생산 시대에는 무엇이든지 빠르게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최소한의 노(동)력과 원료로 최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죠. 그래서 제품들은 빠른 생산을 위해(-시간의 부재) 형태가 같아야 했고(-유일성의 부재)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능하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야(-노력의 부재) 했습니다. 즉, 필연적으로 대량 생산 방식은 사람의 노력(Effort), 시간(Time), 유일성(Uniqueness)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지간히 생활에 필요한 가지고 싶은 것들을 다 가진 선진국 사람들은 이제 이 부족함을 찾기 시작합니다. 공과(-노력) 오랜 시간을 들여(-시간) 만들어지는 나에게 딱 맞는 독특한 것(-유일) 들을 찾게 되죠. 할머니가 나를 생각하며 직접 뜬 스웨터, 우리 집에서만 내려오는 소스 비법, 옛날 어느 장인이 만들었다는 의자 등 사람과 자연의 노력과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아우라가 담긴 것들을 찾게 됩니다. 화려한 신고전주의 무늬를 복제하여 찍어내 보기에만 멋진 장식장이 아니라 진짜 100년 전에 손으로 깎아서 만든 나무 장식장을 원하는 거죠. 나무무늬 시트지는 하루에도 수천 평방미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진짜 나무를 깎아 만든 가구는 나무의 생장과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가 아닌 것이 나무인 척하고 있는 대량 생산의 산물들에 사람들이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죠. 문득 ‘방망이 깎던 노인’ 이라는 수필이 생각나네요. (수필을 읽어보시려면 클릭)
즉, 가죽이 아니면서 가죽인 척하고 있는 합성섬유, 옛날 도안을 복사해서 만든 도자기, 빠른 생산과 유통을 위해 디자인된 생활 용품 등은 물론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대량 생산을 위한 생산 공학적 이슈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 것이 부족하여 어느 정도의 제품에도 만족을 느끼던 시대를 지나 새 것이 범람하는 현대 선진국에서는 시간과 노력과 내공이 들어간 ‘귀한 진짜’를 찾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과 자연의 노력과 시간이 만들어 낸 독창적인 옛것이 그 가치를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옛것, 즉, 빈티지를 그 제품의 사용성을 너머 ‘노력, 시간, 독창성’ 으로 해석하여 인정하는 사회는 대량 생산이 충분히 그 정점을 치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들을 이미 구비한 상태인 선진국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직 필요해도 가지기 어렵고 제품이 충분하지 않은 후진국은 이러한 시기에 접어들 수 없고, 개발도상국의 경우 제품 생산은 활발하나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이 충족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빈티지 문화가 고개는 들지만 전면에 드러나지는 못합니다. 수십 년 전 가구 보고 예쁘다고 하는 것은 아직 배부른 소리인 거죠.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전반적으로 새 것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옛 것은 후지고 낡았다는 인식이 더 강합니다. 물건의 가치를 주로 사용성 측면에서만 인정하며 노력이나 시간 따위로 해석하여 인정하기에는 1차적 욕구의 충족이 부족한 상태인 거죠. 따라서 빈티지를 ‘사람의 노력과 시간과 내공’ 으로 인식하고 대량 생산품들의 장점과 잘 조화를 이뤄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선진국이어야 하는 겁니다.
정리하면, 경제 발전과 대량 생산에 의한 새 것의 범람과 과충족, 그의 반향으로 노력과 시간, 독창성을 찾는 현대인들의 수요와 전쟁 및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옛것이 사라져버린 부족한 공급이 맞닿아 우리나라는 빠르게 빈티지가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서양에서 수입된 빈티지와 한국 자체적인 빈티지가 공존하며 만드는 현상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우리나라는 양식화된 하나의 스타일 트렌드로써 서양 유럽 빈티지 스타일이 수입되어 먼저 유행했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적인 옛것은 빈티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전히 오래된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서촌이나 상수, 연남동 등을 중심으로 한국적 빈티지의 해석과 발전에 대한 가능성과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빈티지라는 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옛것을 그냥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옛것의 현대적 가치(노력, 시간, 독창성)를 돋보이게 만들어 품위를 나타내야 하는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이러한 재해석 과정을 거친 서양의 결과물을 수입하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우리의 옛것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가치를 가지도록 해석하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고무적인 것은 국가나 조직 차원에서 이를 진행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개인들이 스스로 이를 만들어 내려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의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스타일의 수입이나 정치적 프로파간다(선전)의 수준을 너머 사람들 스스로 옛것의 재해석을 통한 품위와 가치를 만드려는 진정한 의미의 빈티지가 시작되고 있는 거죠.
저는 전쟁과 생활고를 겪은 5-60년 대 사람은 아니지만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교육받았던 80년대생으로서 이러한 현상들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껴야 잘 살죠' 라는 티코의 광고 카피가 얼마나 전국적으로 유행했었는지를 아는 세대죠. 이에 더하여,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산업화가 성숙되고 상품의 과충족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90년대와 2000년대생 세대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궁금합니다. 저처럼 이를 국가의 발전이나 경제 성장의 결과물로 감격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빈티지 스타일이 이미 익숙해져 사회 문화에 스며들어있는 서양 선진국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미래 세대가 이끌어갈 한국은 이러한 선진국들의 기본 인식을 공유하는 수준을 너머 더욱 발전할 것이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