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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Nov 21. 2020

민사고 가길 잘한 3가지 이유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육이 20년 간 나의 삶에 미친 영향



시작하기에 앞서..


저에게 민사고 지원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올해 민사고 전액장학생 전형 내용을 먼저 공유드립니다. 올해는 특히 전체 인원의 10% 까지 전액장학생으로 선발 가능하여 민사고 지원을 생각하시거나 주변에 민사고 지원을 꿈꾸는 모든 분들께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 민사고 장학생 전형 안내

https://kmla-scholarship-2022.web.app/



■ 민사고 입시 전형 상세 설명 (블로그)

https://blog.naver.com/shamujr/222558420491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2002년 민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지금까지 참 많이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나' 와
'민사고 나왔는데 왜 고시를 보거나, 대기업에 가거나, 전문직을 하지 않았나' 입니다.

질문을 자주 듣다 보니 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민사고 교육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생각해보니 대단히 큰 영향이 있더군요.
그래서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민족사관고 교육이 20년 간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







ㅣ 일단 저는 지금 뭘하느냐면요.


저는 지금 후추즈(whochooz)라는 모바일 서비스를 운영하는 <파라스타>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커머스 인데, 간단히 말해 내가 사서 써보고 마음에 든 상품을 바로 판매할 수 있도록 모바일 샵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입니다. 인플루언서들이 종종 하는 공동구매를 나도 할 수 있게 만들었죠. 인스타그램에서 입소문 타고 인기를 얻는 중입니다. :D


https://whochooz.com



교육 사업 <공부자존감> 도 진행하고 있는데, 사춘기 때문에 소통이 어려워진 자녀와 부모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해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아주는 인공지능 온라인 서비스입니다. 몇 년 간 준비했던 것으로 현재 오픈 이벤트로 무료 설문과 레포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vip.personalitytest.co.kr/




그전에는 기업 교육 사업 IGM Prime 을 운영했었고, 여기 브런치에서 브런치북 수상을 통해 <공부자존감> 및 <서울대 수석은 이렇게 공부합니다> 책도 발간하여 작가와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크리베이트라는 회사에서 아이디어 컨설팅 일도 했고, 예전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부동산 사업도 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서울대 수석은 이렇게 공부합니다] 의 발췌 및 추가 내용입니다.

작가의 책은 여기서 확인해보세요 (클릭 ▶)




다양하다면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 대기업이나 고시, 전문직 등 소위 안정적인 직장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어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민사고의 교육과 경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민사고 시절의 일화들과 함께 민사고의 교육이 20년 간 저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정리해봤습니다.






1 ㅣ 자주성과 실행력 교육


민사고는 시간표가 타이트합니다. 아침 운동부터 야간 자습까지 스케줄이 있고 기숙사 학교기 때문에 학원을 간다거나 어딘가에 놀러 간다거나 하는 일 없이 풀타임 스케줄이 짜여있죠. 얼핏 보기엔 자율성과 독자성 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과입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민사고 학생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바는 매우 다릅니다. 스케줄이 정확할 뿐 그 안에서의 행동과 사고의 자유도가 아주 높습니다. 한 교실의 한 자리에서 등교부터 야자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과목별로 반이 배정되어 있고 해당 반 선생님 강의실로 매시간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갑니다. 대학 수업 같죠. 그러다 보니 수업별로 친구들도 달라지고 난이도나 내용도 다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받는다' 는 수동형이 아니라 '내가 해당 수업을 찾아간다' 는 능동 개념이 생기고, '전체 반 인원 중 나' 가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변동 인원 구성' 으로 조직에 대한 개념도 능동적이 됩니다. 심지어 일부 수업은 선택이 가능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선택할지를 스스로 고민해야 했죠.



선생님 강의실을 찾아가서 수업을 합니다.



놀라운 건, 담임 선생님을 내가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답게 담임 선생님을 Advisor (고문,자문)로 부르는데, 이 단어 또한 나를 자주적으로 만듭니다.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 중 우리 반을 담임하는 '담임 선생님' 이 아니라, 수업과는 별개로 나의 학교 삶과 생각에 대한 자문과 충고를 얻기 위한 Advisor 였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나와 잘 맞는 선생님을 Advisor 로 선택하여 모셨기 때문에, 시간이 생기면 선생님 연구실로 놀러도 가고, 고민이 있으면 가장 먼저 가서 이야기도 하고, Advisor 시간에 뭔가 더 배우기도 하는 등 알게 모르게 저의 생각과 행동에 큰 자유와 활동성을 주었습니다.



어드바이저는 선생님과 느낌이 좀 다르죠



동아리 활동에 대한 존중과 자주성이 높았습니다. 학생 수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동아리가 있고, 학생 한 명이 여러 개의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동아리를 내가 선택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프라이드도 강했어요. 저는 아예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는데요, 그림 그리고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지라 그림 동아리 '경국지화' 를 만들어서 선후배를 모아 활동을 했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선배를 찾아가서 활동 요청을 하고 동기들과 후배들을 찾아서 동아리를 만들었죠. 행사 때는 그림을 그려 키홀더를 만들어 판매도 하고 미술 선생님을 모셔서 동아리 시간에 고전 영화를 보면서 분석도 하고 아주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20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 동아리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감개무량입니다.



제가 만든 동아리가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군요



보면, 시간표가 정해져 있을 뿐 그 안에서 자주성과 창의성이 대단히 많이 유도되는 환경입니다. 사실 저도 학생 때는 일과가 되게 빡빡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아주 유연했다는 것을 알았죠. 내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이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할 때 열정적인지 점점 알게 된달까요. 이러한 경험과 교육이 저의 커리어를 판단하고 결정해서 망설임 없이 진행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 ㅣ 내 생각의 형성과 책임감 교육


두 번째는 내 생각을 만드는 교육입니다. 1학년 때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영어 시간이었는데 토론 수업을 했습니다. 주제는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에 대한 입장을 각자 정하고 찬반 토론하기' 였습니다. 세상에. 1999년에 18살 아이들 예닐곱 명이 모여서 영어로 이 주제를 토론한다니. 그때 저는 한 시간 내내 아무 말도 안 하고 대체 친구들이 무슨 얘기를 하나 듣고만 있었습니다. 일단 영어 실력도 부족했거니와 저런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찬성이고 반대고 내 의견이고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몇몇 친구들은 어찌나 자기 의견을 잘 이야기하던지! 정말 놀라우면서 한 편으로 '내 생각' 이라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힘을 절실히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민사고팀이 영어토론대회에서 우승도하고 해요



저도 초중학교 때 글짓기 논술이며 독서 토론이며 학원들을 적잖게 다녔습니다. 나름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독후감, 말하기 등도 많이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 생각' '내 의견' 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지 였어요. 생각해보면 학원에서는 '내 생각'보다는 '바람직한 생각과 의견'을 어떻게 만들고 훌륭하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훈련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내 생각을 요하는 훈련도 많이 했지만 너무 어려서 잘 몰랐었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 생각' '내 관점' '내 의견' 이라는 개념을 민사고에서 크게 깨닫고 많은 공부를 한 기억이 납니다.



의외로 별 생각이 없는 사람도 많아요



토론 수업이 많았던 것은 물론, 꼭 토론이 아니어도 수업 시간에 서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학생법정을 통해 학생들의 잘잘못 판단과 변호를 학생들이 하는 제도,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수업시간 등등 '나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통해 끊임없이 답을 찾아야 하는 다양한 환경이 있었습니다.


간단하게는 식사 시간에 어떤 메뉴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지 배식에 대한 것도 모두 자율이었어요. 다만 남기면 안 됐습니다. 무서운 체육 선생님이 퇴식대에 서 계셨거든요. 내 생각과 판단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시스템이었죠.



민사고 급식은 정말 잘 나와서 자꾸 과식했었죠 :)



결과적으로 나에게 닥치는 많은 상황에 대해 '나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는 이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등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림 없이 내 생각을 믿고 판단하는 훈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분야의 일을 하는 와중에도 길을 잃지 않고 판단과 행동을 나름대로 자신 있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성공 여부를 떠나 최소한 스스로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왜 선택했는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때의 교육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3 ㅣ '열심'에 대한 높은 기준 형성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열심'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일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 대부분 말이죠.



형설지공이 민사고에서도 있었다니!



형설지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딧불과 눈에 비친 빛으로 고생 속에서도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 놀랍게도 민사고에서 항상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조는 것을 막기 위해 밤이 깊으면 기숙사 불 전체를 내렸는데, 그럼에도 불을 내릴 수 없는 화장실과 엘리베이터실 불빛 아래 몰래 숨어서 많은 친구들이 공부를 했습니다. 화장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어둑한 불빛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사감 선생님께서 잘 안 다니시는 엘리베이터실 바닥에 앉아서 공부를 하기도 했죠. 지금이야 충전식 스탠드가 너무 잘 나오지만, 당시는 스마트폰이 있었던 때도 아니고 건전지 후레쉬라고 해봐야 뻔했던 때라 저 졸업한 후엔 커다란 충전지를 가져와서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하는 등 별별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충전식 스탠드를 들고 와서 밤에 몰래 공부를 한대요



무언가를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한다는 것의 기준은 각자 다를 것 같습니다. 민사고에서 친구들끼리 시너지를 내며 그 기준이 계속 상향되었는데,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세계 최고인 김연아 선수나 양학선 선수는 제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노력을 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민사고와 과학고에서도 수학, 물리, 화학 등 세계 올림피아드에 나갈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많은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제 민사고 동기 중에 생물 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세계 6위를 하고 온 친구도 있었어요. 전 화학 올림피아드 공부를 했는데 국가대표는 못 되고 최종 선발팀까지만 갔었어요. 스포츠에 올림픽이 있다면 수학, 과학에는 올림피아드가 있습니다. 스스로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하던 아이들이 바글바글했으니 노력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다들 참 열심히 극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역대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한국 순위. 2017년 58회에서 1위를 했어요. 참 잘합니다.



저는 학부모 강의를 가면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다면 보내시라고. 학연이 어떻고 특권이 어떻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외국 나가면 서울대고 뭐고 어차피 아무도 모르고 그냥 실력으로 평가받으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좋은 학교를 가는 건 학생들과 교수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교에서는 공부를 안 하는 아이가 이상한 아이가 되고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학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도 민사고 때를 기준으로 한 번 크게 바뀌었던 것 같아요. 10대 체력 생각하고 자꾸 하다 보니 지금은 과로가 되어서 문제지만요.






ㅣ그래서 지금...


민사고 나와서 왜 고시를 보거나, 대기업에 가거나, 전문직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길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쓰다 보니 신나 버렸네요.





민족사관고 교육이 20년 간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





을 정리하면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ㅣ 자주성과 실행력 교육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열정적인가 고민하며 지내다 보니, 사람들의 장점과 특징을 발견하고 그것을 꽃피우게 도움을 줄 때 보람을 느끼고 열정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이 저의 존재 이유랄까요.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었죠.


2 ㅣ 내 생각의 형성과 자신감 교육

그러다 보니, 학생 교육 사업, 기업교육 사업, 저술과 강의 등 저의 커리어가 모두 나의 기준에 따른 일이 되었습니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파라스타 사업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들이 수동적인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인 판매자가 되게 도움을 주고, 본인의 취향에 따른 상품 선택과 판매로 돈을 버는 가치 생산까지 하며 자신을 좀 더 꽃 피우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3 ㅣ '열심'에 대한 높은 기준 형성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하며 세상에 가치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사업 운영을 하면서 교육 사업도 준비하고 미래 교육에 대한 큰 그림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민족사관고 교육이 20년 간 저의 삶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민사고에 가지 않았다면 현재의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나의 가치관대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힘들긴 해도 힘든 것과 별개로 참 망설임 없이 신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ㅣ다만 안타까운 건


2025년에 모든 특목고 및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며 민사고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릅니다. 저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사고와 특목고 출신들이 많은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미술 음악을 잘하면 예고에 가고
운동을 잘하면 체고에 가면 되는데
수학을 잘하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예고를 나온 성악가 조수미, 발레리나 강수진 씨나 유도, 양궁, 수영 등 수많은 올림픽 영웅들을 배출한 체고와 같이 수학 과학 인문 사회학의 영재를 국가대표로 성장시키던 고등학교들이 사라진다고 하니, 평준화의 논리 속에 이공계와 인문사회계의 예고와 체고가 사라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민사고는 일반고로 사실상 전환이 어려워 일반고 전환이 되면 폐교를 생각합니다.





민사고를 졸업한지 이제 20년이 되어 갑니다.

물론 백프로 만족하는 학교가 어디있겠냐마는 그래도 민사고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One more Thing!



ㅣ 민사고 전액장학생 전형


올해 민사고가 전액장학생 전형으로 전체 학생의 10%를 선발한다는 사실 아셨어요?

민사고 전액장학생 제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 장학생 전형 안내 페이지도 같이 붙입니다. 민사고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께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 민사고 장학생 전형 안내

https://kmla-scholarship-2022.web.app/



■ 민사고 입시 전형 상세 설명 (블로그)

https://blog.naver.com/shamujr/222558420491



민사고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과 반가운 얼굴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또 다른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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