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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연 May 03. 2019

여성 없는 주방

가사일은 여성의 몫, 하지만 레스토랑 주방은 여성을 환영하지 않는 이유.

주방 내 성차별은 거의 모든 국적의 레스토랑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강도는 레스토랑이 전통성과 격식을 중시하는 업스케일, 파인 다이닝일수록 더 심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정에서 부엌 일은 여성의 몫으로 여기면서 레스토랑 주방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실태가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이 부엌과 철저히 구분되기를 바라며, 실제로도 ‘부엌’으로 불리는 일을 극도로 경계한다. 


“여자는 손이 더워 스시를 만들 수 없다.” 2003년 개봉한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가 미도(강혜정)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다. 미도는 극 중에서 한국 최연소 여자 일식 요리사였다. 이 영화가 300만 명이 넘는 관객 몰이를 하고, 이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등 큰 이목을 끈 까닭일까. 여자가 생리학적 이유로 스시를 쥘 수 없다는 관념은 공공연한 사실처럼 퍼졌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스시 카운터에 여자가 선 모습이 보기 드물이었기에 아마도 이 생각이 더 공고해졌을 터. 남정아 씨는 지난 10년간 이러한 편견과 싸우며 스시를 쥔 여성 일식 요리사 중 한명이다. “영화가 개봉한 후 요리를 시작했으니…. 영화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스시 카운터에 있는 모습을 보고 열에 아홉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어요. 대놓고 얕잡아 보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손님들도 많았죠. ‘스시 카운터에 왜 여자가 있어’ ‘이 식당에 여자가 있는 건 처음 본다’ ‘여자가 해봤자지’ 등 차별이 섞인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일본 유학을 앞둔 남 씨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부산에서 8년 가량 경력을 쌓은 후 결혼하며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에 있는 식당에 취직하려고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었는데, 식당에서 제시하는 대우가 상상 밖이었어요. 이력서에 경력을 빼놓지 않고 빼곡히 기재했고, 면접하면서도 8년차라고 말했는데도 신입 월급을 제시했죠. 당황하여 자리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그 식당에서 다시 전화를 해 ‘홀에서 일하면 십 만원 올려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는 남 씨가 여태껏 쌓은 경력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태도였다.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그 부당함이 터무니 없게 느껴져 동석한 남 씨의 남편이자 동료인 김태한 씨에게 물었다. 지방 출신이어서 경력을 인정 받지 못한 건지, 아니면 여성이어서 차별 받은 것인지를. 김 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곳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거의 모든 식당에서 정아의 이력을 존중하지 않는 눈치였죠. 그들이 제시한 연봉이 이를 증명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씨는 끝내 서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 스시 전문점 ‘스시초희’에 입사했다. “제가 스시초희에서 일할 때 잠시 카운터에 공석이 생겼어요. 실장님께 조심스럽게 정아를 소개해 임시로 일했는데, 그때 실장님이 정아 실력을 보고 스카우트했죠.” 김 씨의 설명에 남 씨는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진심 어린 태도로 첨언했다. 그런데 청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답답했다. 운 좋게 실력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남 씨는 지금처럼 경력을 이어 나갈 수 있었을까. 


“정아 말고도 여성 요리사와 함께 일한 경험이 몇 차례 있어요. 그들 대부분이 경력 2~3년차였는데, 모두 같은 경력의 남자 요리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실력이 뛰어났어요. 여자들이 살아남기 힘든 업계 분위기에서 버티며 경력을 쌓았다는 건 그분들이 그만큼 정신력이나 실력 모두 뛰어나다는 사실을 검증하는 거예요.” 김 씨의 말에 안도하며 ‘그래도 업계에서 경력직 여성 요리사는 선호하겠다’고 묻자, 그는 몹시 무안해 하며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그래야 하는데, 여자는 무조건 뽑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구인 공고의 자격 조건에 아예 ‘남성’을 표기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일식 주방에서 여자를 채용하지 않으며 내세우는 이유는 첫째 체력, 둘째 체온이다. 이쯤 되니 일식 주방이 다른 분야의 주방보다 더 체력적으로 힘든지 궁금하다. “오래 서 있어야 하고, 몸체 만한 생선을 칼로 쑤셔 해체해야 하니 힘들긴 해요. 그런데 여자한테만 힘든 일이 아니에요. 남자들도 똑같이 힘들어 해요. 제 생각에 체력보다는 오히려 정신력 싸움인 것 같아요.” 여성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남 씨는 신입 시절부터 ‘여자 둘보다 남자 하나 뽑는 게 더 낫다’고 대놓고 말하는 선배들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20kg짜리 쌀 포대를 번쩍 들어 옮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체온 차이는 진짜로 존재하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묻자 부부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우선 저희 둘만 놓고 보더라도 제가 남편보다 몸이 더 차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은 스시가 단순히 차갑게 즐기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차가울수록 맛있는 게 아니라 사람 체온과 근접할 때 맛있다고 하죠. 그보다 더 높은 온도를 선호하는 식당도 많고요. 스시 집 가면 생선을 실온에 꺼내 놓은 경우를 많이 보잖아요. 너무 차가우면 오히려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온도를 올리기 위해 미리 내놓는 거예요. 또 밥의 온도가 체온보다 더 높기도 하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주방에 여자를 들이지 않기 위한 핑계 같아요.” 남 씨의 설명이다. 


그동안 권위 있는 일식 요리사들은 자신의 주방에 여성이 없는 이유로 배란이 시작되면 황체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체온이 1도 오른다는 매우 그럴싸한 이유를 들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기 바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체온이 일시적으로 1도 오른다고 하여 생선이 상하거나 초밥의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 많은 남성 요리사들이 얼음물이나 찬물에 적힌 수건을 활용하여 외부 자극이나 환경 조건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 자신의 손 온도를 시시때때로 조절한다. 편견에 가까운 이러한 생각은 영화 <올드보이> 이전에 초밥 문화가 태동한 일본에서 비롯됐다(참고로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이 정서경 작가를 각본팀에 합류시키기 이전의 작품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고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일본은 여성이 주방에 진출하는 일을 극도로 경계한다. 자국의 식문화에서 가장 높은 차원에 해당하는 초밥의 세계는 그 경계가 오죽하겠는가.




미슐랭 3성 셰프인 오노 지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이 국내에 개봉하며 우리나라에도 꽤나 널리 알려진 스시 장인이다. 미국에서 제작한 이 영화가 담은 숭고한 장인 정신은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전했는데, 당시 그의 장인 정신만큼 화제거리가 된 게 있었다. 가업을 잇는 오노 지로의 큰 아들이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 성차별적 언사였다. 영화를 본 기자가 주방에 여자가 부재한 이유를 묻자, 그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이렇게 답했다. “여성이 생리하기 때문입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변함 없는 미각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성은 생리적 주기로 인해 그 감각이 불균형을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스시 요리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답변은 주방 내 성차별을 논할 때 여전히 회자되는 망언으로 자리잡았다. 


남성 중심의 주방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성차별은 비단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계 미국인 셰프 니키 나카야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이세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유명 요리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이 조명하기도 한 그녀는 이미 실력을 인정 받은 셰프지만, 여전히 남성들의 차별적 시선과 편견과 싸운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녀와 함께 일하는 또다른 여성 셰프는 “셰프가 여자라는 이유로 레스토랑을 나간 사람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나카야마는 손님들이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식사에 온전히 집중하게끔 주방 문을 걸어 잠갔다. 여성들로 이루어진 주방을 볼 수 없도록 말이다. 남성 셰프들이 오픈 키친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과 극과 극의 선택을 한 것이다. 


나카야마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셰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계이고, 일본에 뿌리를 둔 요리를 하기 때문에 더 노골적인 시선이 따라붙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방 내 성차별은 거의 모든 국적의 레스토랑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강도는 레스토랑이 전통성과 격식을 중시하는 업스케일, 파인 다이닝일수록 더 심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정에서 부엌 일은 여성의 몫으로 여기면서 레스토랑 주방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실태가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이 부엌과 철저히 구분되기를 바라며, 실제로도 ‘부엌’으로 불리는 일을 극도로 경계한다. 


<여성 셰프 분투기>(현실문화)의 저자 데버러 A. 해리스와 패티 주프리는 셰프를 다룬 미디어 자료 2206개를 분석하고 여성 셰프 33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여성이 주방에서 성차별 받는 사회적 배경을 도출해냈다. 요리사는 인류사에서 오랜 시간 하인 계급에 속했다. 수 세기에 거쳐 특출한 인물들이 분야에서 수없이 노력한 결과 현재 요리사는 전문직을 넘어 슈퍼스타로 극적 신분 상승을 이뤘다. 그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지난했다. 사람들은 요리를 단순 노동으로 여겼으며, 보수를 받지 않고도 하는 가정 노동과 다를 게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통성과 전문성을 스스로 강조하고 증명하기 위해 가정 요리와 끝없이 구분 짓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정 요리를 담당하는 여성을 부정하고 배제했던 것이다. 


사실 요리는 전문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누가 진정한 셰프이며, 어떤 음식이 가치 있는지 여전히 모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 셰프 분투기>의 두 저자는 그렇게 때문에 요리사들이 권위 있는 요리 경연 대회나 요리 전문 학교, 그리고 음식 전문 미디어의 평가를 중시하고 이에 기대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나 기관이 주방 내 성차별을 더 부추긴다고 덧붙여 설명한다.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아 차일드가 르꼬르동블루를 졸업할 때 겪은 우여곡절이 그저 웃을 일만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요리 전문 학교 CIA는 1946년 여성이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까지 여성이 정식 등록할 수 없었다. 


영화 '줄리 & 줄리아' 중 르꼬르동블루 신

“스무 살 무렵 호텔에 실습 나가면 저 같은 남학생들에게는 힘든 일을, 여학생들에게는 쉬운 일을 주는 게 차별 대우처럼 느껴졌어요. 남학생들은 땀 범벅이 되어 일하는데 여학생들이 주방장과 평화롭게 앉아 담소 나누며 허브 손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죠. 그런데 실습 과정을 끝내고 정식 채용할 때가 되니 그 예쁨 받던 여학생들은 채용 대상에서 모두 배제됐어요. 그들은 애초에 여학생들을 뽑을 생각이 일절 없었던 거예요. 잠시 내 기분과 주방 분위기를 좋게 해주는 대상으로 여겨 곁에 둘 뿐,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거죠. 그 순간 주방 내 성 차별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어요.” ‘무오키’ 오너셰프 박무현 씨의 말이다. 


“남아공에 위치한 테스트키친에 일할 때 소셜미디어를 통해 요리를 배우거나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줬어요. 그때 여학생들의 고민 중 상당수가 성차별이나 성폭력과 관련돼 있었죠.” 박 씨는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중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를 바로잡지 못한 채 그 직장을 그만둘 뿐 아니라 요리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애석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예 교수가 수업 시간에 여학생들을 가리키며 ‘너희들은 요리 안 할 거 아냐. 어차피 못 버틸 거 배워서 시집 가든지 푸드스타일리스트에 도전하라’고 한대요. 같은 남자이자 업계 동료로서 정말 수용할 수 없는 태도였어요.” 


현재 요리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성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실제로 레스토랑에 취직하거나 경력을 쌓아 높은 위치에 오른 여성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레스토랑에서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이유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점을 든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약한 체력과 감정적 성향으로 단정 짓는다. 하지만 여성이 주방에서 버티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배제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유리 천장 때문이다. “요즘 요리를 배우는 젊은 사람들의 성향 자체가 레스토랑을 자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주방과 셰프를 경험하는 거예요. 한 주방에 오래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비단 여성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닌 거죠.” 박 씨의 말이다. 여성에게 동등한 대우 속에서 실력에 따라 승진하여 셰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을 비쳐준다면 그들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ELLE> 2018년 4월호에 기고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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