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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 May 28. 2023

나도 개발자나 한번 해볼까?

응원과 공감을 원했다면 미안합니다.

개발자나 한번 해볼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이라면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국비지원교육 6개월 받아서 개발자 되면 초봉 6천이라며?
나도 한번 해볼까?


 이 질문의 현실적인 답변을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정리해 봤다. 당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내 경우는 이런 질문을 꽤 많이 받는 편인데, 미래에 대한 고민에 밤잠 설치는 어리고 늙은(미안) 지인들부터 '넌 얼마 못 버는데 개발자는 연 6천 범'류의 기사를 보고 커리어 변경을 고민하는 친지, 가족에 이르기까지 나와의 관계도 다양하다.


 내 답변의 첫 줄은 아래와 같다.


코딩 인강 하나 들어보고,
못 견디게 재미있으면 다시 이야기해 보자.


 코딩 인강을 듣는 내내 정말 정말 재미있고, 끊임없는 몰입과 감탄, 깨달음의 연속,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당신은 개발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감히 짐작컨대, 당신은 빠르든 늦든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될 것이고, 그제서야 당신은 처우나 복지를 떠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적성이 맞다면 개발자는 머릿속이 꽃밭인 채 살 수 있다.


 하지만 카타르시스가 아닌 피로도나 부담감을 느꼈다면... 나는 개발자 커리어를 권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권하고 싶지 않은데, 이는 내게 코딩으로 황홀경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발을 들여놓은 개발자 커리어의 이미지가 끝없이 길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좁아지는 어두운 동굴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들어가며 좁아지는 구조로 악명 높은 미국 유타 주의 '너티 퍼티' 동굴. 인명 사고로 지금은 폐쇄됐다.


 당신이 '개발자를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소위 '개발자 광풍'을 보고 개발자를 하면 어떨지 생각해 봤다.


 넓고 깨끗한 사무실과 수평적인 동료 관계, 워라밸이 보장되는 사내 문화와 재택근무를 포함한 온갖 복지, 최소 6천만 원은 보장되는 연봉 테이블, 카페에서 맥북으로 코딩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렌다.


 지금 상상한 것들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근무 환경과 조건이고,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다. 다만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신이 기울여야 할 노력 또한 현실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표가 꿈이라면, 노력은 치러야 할 대가다.



현실 다시 보기,


 단언컨대 모든 직군에는 이상향이 존재한다.


 다만 특정 직업을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가질 수 있고, 그 직군의 이상향에 아주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직업은 내가 알기로는 개발자뿐이다.


 큰 대가 없이 워라밸이 지켜지는, 초봉 6천의 삶이 주어진다는 인식의 대중화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이는 실제로 그런 일이 지난 수년간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수년간을 '대개발 시대'라고 부르기로 하고, 어떻게 이런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를 잠깐 살펴보자.

 

 시작은 저 끔찍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과 유행이었다. 

1. 인간의 대외 활동 급격히 위축되었다.

2. 색이 사회적 동물 + 풍선 효과로 온라인 활동이  이상으로 늘었다.

3. 투자자들은 그나마 선방하는 IT산업 위주의 투자를 진행했다.

4. IT산업은 이용자가 늘어나다 보니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든 상대적으로 성공하기 쉬워졌다.

5. 개발자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평시와 비슷한 생산성이 유지된다.

6. 사업가들이 일단 개발자를 뽑아서 굴리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다. 사업가들에게 돈만 주면 돈을 뽑아낼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알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다.


 사업가들은 기본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다. 투자도 받았겠다, 개발자만 있으면 더 큰돈을 뽑아낼 수 있는데 개발자가 없으니 개발자 몸값을 올린다. 시니어 개발자가 아니라 신입 개발자 웃돈 줘가면서 썼을까? 당연히 다. 이 이유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해서, 해당 시기의 개발자 채용 시장은 실로 수요가 넘쳐나는 구직자 우위 시장이었다. 큰 회사들은 서로 개발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봉과 복지를 늘렸고, 작은 회사들은 개발자를 한 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투자금과 스톡 옵션을 바탕으로, 큰 회사보다 더 높은 연봉, 더 좋은 복지, 사이닝 보너스까지 흔들어대며 개발자를 모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의 연봉?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 이 세상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
세상은, 대개발 시대를 맞는다.


 이 시대의 채용 기조는 '일단 뽑자'였다. 기본만 할 줄 알면 일단 뽑고, 일을 하면서 가르쳐서 쓰면 된다는 인식을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개인의 성장이 회사가 담보해줘야 하는 복지의 범주로 취급되었으며, 개인이 성장 부진은 회사와 관리자의 문제라는 인식 역시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2023년,

 대개발 시대 베타 서비스가 종료됐다.

(코로나 시국 일단락)


 집에서 폰이나 PC와 물아일체를 이루며 온갖 IT 서비스에 현질을 하던 사람들이 친구를 만나고, 학교도 가고, 운동도 하고, 출근도 하며 현실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IT 기업의 수익성 지표에는 바로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용자들이 오프라인으로 대거 빠지면서 투자자들은 수익성이 좋아진 다른 분야로 자금을 돌렸고, 코로나 시국에 투자를 받 개발자를 모아 서비스를 론칭하고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IT 기업들은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고용노동법으로 고정비가 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은 생존을 명목으로 전가의 보도, '권고사직'을 휘두른다. 어떤 사람들이 '권고사직'의 대상이 될까? 경영진의 눈 밖에 난 사람이 단연 1순위가 되고(업계를 불문하고 경영진의 눈 밖에 나지 말라는 교훈은 어디나 존재한다.), 단기적인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팀과 인건비만큼의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이 공동 2순위가 되어 권고사직의 희생자가 된다.


 지금, 채용 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채용 공고만 도 호시절의 채용 기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기업은 실력이 검증된 구직자를 원한다. 그간 채용 시장에 낀 거품에 비용이 낭비되지 않도록 검증 절차가 촘촘하게 강화됐고, 한 명을 뽑더라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기업들이 학습한 것이다.



국비지원교육? 부트 캠프?


 시니어 개발자와 주니어 개발자의 차이는 의외로 '눈앞의 생산성'에 있지 않다. '눈앞의 생산성'도 시니어 개발자가 높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당장 돌아가는 서비스를 짧은 시간 안에 내놓으라고 했을 때 해당 시점까지의 결과물 퀄리티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저 '큰 차이가 없는 경우'를 만들 확률을 최대한 올리기 위한 교육 서비스가 바로 국비지원교육 과정을 포함한 소위 부트 캠프 되시겠다.


 적군이 같은 부위에 총을 맞았다면 총을 쏜 사람이 신병인지 선임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확하게 '적군이 하나 줄어든다'는,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는 거다. 이 맥락에서라면 개발자 부트 캠프의 본질은 결국 신병 훈련과 다르지 않다.


 대개발 시대에는 '나중'에 대한 고려 없이도 눈앞의 성과를 수익으로 환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물을 만들 줄만 아는 개발자 수요가 많았다. 어차피 사업가들은 빠르게 서비스를 론칭하고 수익을 낸 다음 엑시트를 (할 수 있다면)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 뒷감당은 남아있는 개발자 또는 뒤에 합류할 개발자가 할 일이니 걱정은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이자 훗날의 이야기인 것이다.


 초기 개발자가 임원으로 있는 5~7년 미만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대사가 바로 "나 때는 금방 했는데", "내가 하는 게 빠르겠다" 되시겠다.
 이 임원 분들에게는 높은 확률로 아래의 공통점이 있다.
 1. 프로젝트 극 초기에 주니어로서 개발을 진행했다.
 2. 시한에 쫓겨 야근을 불사하며 개발한 기억이 많고,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런칭했다.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별도로 다루겠다.

> 클린 코드가 왜 필요하다고요? : 이자에 허덕이는 개발 생활은 편할 수 없습니다.


 6개월 국비지원교육 부트 캠프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본 2-4개월

실무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프레임워크 수업 1-2개월

미니 프로젝트 서너 개

실무 프레임워크를 이용한 최종 프로젝트 1-2개월


 강사에 따라 차이 없진 않겠지만 나랏돈을 타먹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개 교육 내용 실속 있고 탄탄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수강생을 선정하는 기준이 허술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도' 수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절대다수의 수강생은 6개월의 교육과정이 끝나 총을 쏠 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고문관 되기 쉽다.


 ???: 아, 방아쇠 당기면 된다고 들었는데 안 나가서요. 네? 안전장치요? 그게 뭐에요?

 ???: 장전은 해야 하는 거에요? 그냥 휘두르면 왜 안 돼요? (휙휙)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양상의 대화를 대개발 시대의 현업에서 정말.. 정말 많이 들었다. 



 만약 당신이 개발자의 길을 꿈꾸고 있고,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 능력 있는 동료를 만나고 성장하고 싶은 의지가, 꿈이 분명히 있, 부트 캠프 수료할 예정이라면, 매 순간 그 꿈에는 치러야 할 노력이라는 대가가 있음을 기억하고, 수업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만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만 한다.


 구직 시장에서 당신의 경쟁자는 지금 당신과 같이 교육받고 있는 클래스 메이트들이 아니라, 유수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젊고 똑똑한 전공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상대는 총도 쏠 줄 알고, 총이 고장 나면 고칠 줄도 안다. 간혹 정글에서 온갖 나뭇가지와 덩굴을 엮어다가 당신이 들고 있는 총보다 파괴력이 세고 명중률이 높은 활을 만들어내는 괴수가 나타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당신이 원하는 '좋은' 회사 입장에서 경쟁자가 아닌 당신을 하도록 하려면 실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말 그대로 불보듯 뻔한 일 아닐까?



오오력?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해야 하나?


 개발자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커리어, 취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이지만 마음은 좀 불편해지는 격언 하나를 소개한다. (나만 불편할 수 없지)


남는 시간에 하는 건 노력이 아니다.


 남는 시간에는 누구나 노력한다. '내'가 특장점을 가져 경쟁에서 약간이라도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나머지 시간을 쥐어짜 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자, 남는 시간에 하는 노력으로 '난 노력하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개발자마다 생각 다를 것이고 분야에 따라 차이도 없지 않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이드 라인은 이거다.


왜 그렇게 되는지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라.


 뭔가 뜻대로 안 될 때 '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되게' 만든 다음 '넘어가면' 경이로운 확률 99.9%로 몇 달에서 몇 년 사이의 랜덤 시간 후 자의로 또는 타의로 후회할 상황과 만나게 된다.

 이 글이 거짓말 같으면 직접 겪어봐도 되지만 후회할 거다. 운이 좋다면 서버 오류 로그 몇 줄로 끝날 수도 있지만, 운이 없다면 금요일 늦은 밤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연휴 첫날의 결제 서비스 다운과 같은 끔찍한 재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짜증과 졸음을 이기고 지금 이게 필요해? 싶은 지식들을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맥락으로 지식들이 이어지고, 그렇게 이어진 지식이 실무에서 활용되며 경험이 된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이 당신의 말 행동, 코드의  근거가 되며, 사람들은 이를 전문성이라고 부른다.



결론,


 대개발 시대에 시쳇말로 취뽀에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벌써 이 글에서만 3번째 반복 문장인데, 사업가들은 기본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고 고정비인 인건비만 잡아먹는 실력 없는 개발자는 구조조정 대상일 뿐이다. 그렇게 쉽게 들어가서 살아남아 계속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그 사람이 투자한 노력을 헤아리자면 그를 보는 시선에 담아야 할 감정은 시기가 아닌 연민이 아닐까 싶다.


 어렵다, 힘들다 소리만 잔뜩 써놓은 것 같지만, 여느 커리어와 마찬가지로 적성이 맞다면, 커리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인정받는 것만큼 생산적이고 즐거운 일이 없다.


 꿈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 위에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를 용기가 있는 당신이라면, 아주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현실을 꿈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고, 역으로 대가를 치르기 싫은데 개발 커리어를 무작정 시작해서 소중한 시간을 날리는 대참사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혹시 그 약간의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직장 찾기는 주말 홈플러스 주차장 자리 찾기라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말을 떠올려보자. 돌다가 내 자리가 생기면 주차할 수 있는 것이고, 자리가 없으면 다시 돌면 된다. 주차할 준비만 되어있다면 자리는 언제든 날 수 있으니 항상 공부를 쌓아두자.


 부디 자신의 눈으로 꿈과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과 꿈의 거리만큼 노력의 계단을 탄탄하게 쌓아서 마침내 꿈을 거머쥐는 멋진 당신이 되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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