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과 인성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by 김준영

예전에 안그라픽스에 다닐 때 안상수 선생님이 회사에 오셔서 간담회 같은 걸 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문득 인격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들은 말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회사에서 직급이 높다는 건 인격이 높다는 게 아니다. 일의 책임이 더 크고, 하는 일의 수준이 더 높다는 뜻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직급이 높다고 해서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보다 내 인격이 더 높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근데 나는 그 당연한 걸 그때까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랑 권력의 힘이 너무 세다. 그러니까 가진 게 많으면 그게 인격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솔직히 그런 착각 속에서 자라는 게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 착각이 결국 가진 걸로 사람을 판단하게 만들고, 인격을 보지 않게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인격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착하게 살아라” 같은 도덕 얘기가 아니라, 돈과 권력, 위치 같은 게 사람의 격이 아니라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분명하게 배우는 교육. 그래야 나처럼 뒤늦게 깨닫고 충격받는 사람이 덜 나올 거다.


인격과 인성은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인성은 타고난 성품이나 사람의 됨됨이 같은 성향에 가깝고,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 같은 쪽에 더 가깝다.


인성은 우리가 흔히 “성격이 좋다”, “매너가 좋다”라고 말할 때 주로 이야기하는 영역이다. 관계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다. 타고나는 기질도 있고, 살아오면서 굳어진 습관도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교육이나 훈련으로 바뀌기도 하고, 꾸며지기도 한다. 또 인성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라 말투나 표정, 사회적 기술만 좋아도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인성만 보고 사람을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


반면 인격은 한 사람의 격이다. 인간으로서의 자격 같은 것. 나는 인격에는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격은 철학이나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다.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고, 그 바탕에는 그 사람이 가진 세계관이 있다. 여기서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내가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보는지, 그 기준이 얼마나 단단한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결국 한 사람의 격을 만든다.


물론 인성은 인격의 영향을 받는다. 겉으로 드러난 태도는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인성을 완전히 떼어놓고 인격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손해가 걸리거나 힘을 쥐는 순간,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인성은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어도, 인격은 그런 순간에 새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으로 나를 쌓아 올리는 일도 무시할 수는 없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다만 가진 것만으로 내 격을 올릴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격은 돈이나 자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살고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로 만들어진다. 결국 내가 확립해야 하는 건 스펙이 아니라 격이고, 내가 가져야 하는 건 포지션이 아니라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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