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에 관한 고찰

합목적성, 밀도, 심미성

by 김준영

디자인 완성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합목적성, 밀도, 심미성이다. 이 기준들은 단계적으로 쌓이는 조건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성격의 기준에 가깝다.


합목적성은 디자인이 왜 그런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목적과 맥락에 비해 과하거나 어색한 선택은 없는지, 기능과 메시지가 서로 충돌하지는 않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합목적성이 확보된 디자인은 불필요한 설명 없이도 구조적으로 납득된다. 이유 없이 꾸며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디자인의 가장 기초적인 설득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논리적 설득력이라 한다.


예를 들면, 신청서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다음 행동’이 막히지 않는 것이다. 제출 버튼이 찾기 어렵거나, 필수 입력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으면 형태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목적과 충돌한다. 전시 포스터도 마찬가지다. 이미지가 포스터의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전혀 다른 오해를 만든다. 예를 들면 잔잔한 분위기의 파티를 홍보하는 포스터에서 지나치게 어두운 색감을 쓰면 그 파티가 가진 성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또한 제목이 먼저 보이는 건 괜찮지만, 장소와 기간이 읽히지 않으면 정보 디자인으로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밀도는 디테일과 기본기가 얼마나 충실히 축적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례와 간격, 리듬, 타이포그래피의 정확성, 마감의 일관성 같은 요소들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지만 작업 전체의 무게를 만든다. 밀도가 낮은 디자인은 가볍게 소비되지만, 밀도가 높은 디자인은 설명하지 않아도 신뢰를 준다. 이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의 이해도, 반복과 시간, 숙련의 결과에 가깝다. 보통 밀도를 말하면 얼마나 가득 차 있는가를 말하지만 디자인에서 밀도는 눈을 얼마나 화면에 머무르게 하는가를 말한다.


예를 들면, 같은 문장이라도 줄간이 들쭉날쭉하면 페이지가 불안해진다. 같은 요소라도 좌우 여백의 기준이 흔들리면 작업이 얇아 보인다. 빈 곳과 면으로 쓰이는 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면 미완성으로 읽힌다. 문단의 배치나 굵기 등의 차이로 시각의 흐름을 잡지 못하면 전체적으로 산만해지고 눈과 머리는 피로를 느끼며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심미성은 앞의 두 기준과는 성격이 다르다. 심미성은 논리보다는 감각에 직접 작동하는 힘이다. 때로는 구조가 거칠거나 디테일이 부족해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업이 있는데, 그 설득력은 심미성에서 비롯된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작동하며, 일종의 사건처럼 발생한다는 점에서 심미성은 분석의 대상이기보다는 경험의 영역에 가깝다. 보통 이런 걸 임팩트 또는 비논리적 설득력이라 한다.


예를 들면, 정보는 최소한인데도 눈이 한 번에 잡히는 포스터가 있다. 뭔지 다 설명되지 않아도 ‘좋다’가 먼저 온다. 완성도가 거칠어도 특정한 색과 형태의 조합이 감각을 건드리면, 그 한 번의 인상이 작업을 성립시킨다.


합목적성과 밀도가 잘 갖춰진 디자인은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된다. 심미성이 강한 작업은 불완전하더라도 사람을 흔들 수 있다.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 디자인은 가장 넓은 설득력을 가지지만, 그중 하나만으로도 작업은 충분히 성립한다. 어쩌면 디자인의 완성도란 이 요소들이 얼마나 균형 있게, 혹은 강하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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