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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dison Jul 15. 2021

<Лето, 레토> 그대들의 끝나지 않을 여름

이 여름도 곧 끝나겠지, 난 나무를 심었어.

오프닝일반적인 음악 영화가 그렇듯 뜨거운 공연장의 열기는 온데간데 없고흑백 필름으로 점철된 경직된 관중들의 모습만이 다소 이질적으로 등장한다. 

흔한 록 음악의 이미지인 자유로움열기무모함은 흑백과 공산주의의 이념 아래 짓눌리고 가장 뜨거울 여름레토는 관객에겐 괴리감을 안긴 채 시작한다

록이 반체제 음악으로 규제되었던1980년 대페레스트로이카 선언 이전 변화의 조짐 즉 젊음의 열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레닌그라드에서로큰롤을 추구하는 마이크와 빅토르는 음악적 교류를 나누고마이크의 아내 나타샤까지 더불어 셋은 다소 기묘한 정서적 교류를 나눈다



레토는 주인공의 서사를 쫓아가는 전형적인 네러티브 플롯을 따라가는 듯 하다가도다소 이해하기 힘든 감정선과 환상으로 보이는 뮤직비디오 장면과 기법 등 괴리감과 아이러니을 과감하게 주제로서 가져간다언뜻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한국계 러시아인인 빅토르 최를 주인공으로 한 듯한 전기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이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빅토르의 전성기를 전시하긴 커녕 빅토르의 첫 키노 데뷔를 밝히는 순간 끝나버린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제와 의미는 대체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또한 마이크가 아무 의미도 없고아무 주제도 없는 음악을 추구하는 것으로 답할 수 있지 않을까구 소련의 록 음악이 수 많은 의미를 내포해야 했고 수 많은 마스터피스들이 무언가 의미 있는 주제의식으로 점철 되어야 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날것의 레토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어떤 영화는 주제와 목적의식을 떠나 다른 것들을 남기기도 한다.

 

‘Passengers’와 ‘Psycho Killer’의 뮤직비디오스러운 장면은 본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히는 씬이다다소 부산스러운 스케치와 B급인 듯 아닌 듯 한 날것의 감성까지청춘 그 자체를 표현하는 듯한 장면의 끝자락엔 어김없이 귀여운 방해꾼이 나타난다. “이건 없었던 일임.” 이는 꿈 깨.”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감독은 어쩌자고 관객들을 이처럼 영화로부터 철저히 배제시켰을까?



물론 굳이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관객은 본 장면이 허상인 지에 대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영화는 잔인하리만큼 구태여 극중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던일임을 강조한다누구보다 간절히 원했지만 어두운 체제와 사회 분위기 속 일어날 수 없었던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과 철저히 분리되는 게 아닌빛 바랜 그 시절의 여름 간절히 갈망했던 자유로움을 재현하여 영화를 통해 함께 꿈꾸고자 시도한다

 

생기와 의욕은 넘치나 때때로 본의 아닌 헛발질을 하는 인물들을 보자면 <프란시스 하>도 떠올랐고삭막한 체제 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큰롤을 외치는 이들을 보며 <고고70>도 떠올랐다이처럼 언뜻 비슷한 청춘을 얘기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영화들을 비교하는 재미도 존재했다.

 

닿을 수 없었던 삭막한 시기 속 찬란하고 빛났던 당시 구소련 젊은이들의 여름을 노래한 레토그래서 레토는 빅토르최만을 위한 헌정 영화가 아닌 그 시절 청춘들을 위해 바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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