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매니저 하고 싶어 하는 신입 개발자
얼마 전 디트로이트 사무실에 출장을 갔다가 입사한 지 1년 조금 넘은 젊은 엔지니어와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하는 일에 열정이 있고 태도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도 일머리가 있어서, 신입 사원인데도 같이 하게 된 프로젝트에서 믿고 일을 맡기는 친구였다. 프로그래밍이야 원래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해도, 전혀 새로운 업무를 맡겨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기술을 파악하고 주어진 일을 해 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원래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다가 재미가 없어서 전기 전자 공학으로 바꾸고, 결국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재미있어서, 우리 회사에도 하드웨어 쪽 일을 시키려고 뽑았는데 곧 내가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로 들어와서 그 이후 거의 1년째 같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부모님이 네팔 출신으로, 이민 1.5세인 친구인데, 아버님이 사업을 꽤 크게 해서 나름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기술 분야를 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 있다. 항상 새로 나오는 기술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중에 내가 하는 일이랑 관련이 있어 보이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서 업무에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가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는 능력은, 이 분야에 잘 적응하고 성공하기에 아주 좋은 자질이다.
C랑 C++는 원래 잘하고 있었는데, 지난 CES에서 급하게 파이썬으로 데모 코드를 만들어야 할 일이 있었다.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어서 별생각 없이 이 친구에게 맡겼는데, 며칠 만에 파이썬 언어를 익히고, 그럴듯한 데모 코드를 만들어냈다. 물론 선임 개발자가 코드의 내용을 보고 이런저런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긴 했지만, 어차피 한번 쓰고 버릴 코드였고, 시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는데, 파이썬 언어로 제대로 된 개발 경험이 없음에도 며칠 만에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만이 아니었다. 다른 프로젝트에서 DevOps 환경을 운용하고 개선하는 일을 담당하던 친구가 퇴사를 하게 되었다. 미국 회사는 일반적으로 “2 weeks notice”라고 해서, 직원들이 보통 2주 전에 퇴사를 통보하게 된다. 떠나는 개발자야 좋은 회사에 가게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고객 프로젝트에 급하게 DevOps 엔지니어가 필요하게 된 상황이었고, 회사에는 퇴사를 통보한 친구 말고 DevOps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이 신입사원을 그 퇴사하는 친구에게 붙여서 DevOps 업무를 이관받게 했고, 몇 주 만에 업무를 잘 파악하고, 고객에게도 인정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6개월째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이번주에 실리콘 밸리의 고객사에 출장을 가서 미팅을 했는데, 이 신입사원 칭찬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그 고객이 이 친구를 칭찬하는 것은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내 입장에서 좋은 일이긴 한데, 반면에 그렇게 반갑지만도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사실은, 미팅을 하면서 슬쩍 이 친구를 프로젝트에서 빼면 어떨까 하고 고객의 의중을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뭔가 좀 더 새로운 일을 맡겨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일 잘하고 고객도 좋아하는 직원을 프로젝트에서 빼려고 하는 이유는, 이 친구에게 맡길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디트로이트 출장에서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나온 이야기가, 이 친구를 프로젝트 매니저로 우리 팀에 데려오는 이야기였다. 본인도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비즈니스에 좀 더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고 싶어 했고, 마침 우리 팀에 영국에 있던 친구가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고 퇴사를 하면서 결원이 생기기도 해서, 나도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다.
원래 개발 부서에 속해있던 친구라서 그쪽 매니저에게 상황 설명을 했고, 동의도 받아냈다. 인사부에서도 내부 업무 전환이니 별 문제없다는 답을 받았고, 따라서 다음 주 정도부터는 이 친구를 개발 부서 소속이 아니고 내가 있는 프로젝트 관리 및 영업 지원 부서로 옮기게 되는 상황이었다. 새로 배울 업무도 많고, 출장도 많이 다니게 될 것 같아서, 프로젝트에서 빼 주려고 했는데, 그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게 생겼다.
공대를 졸업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좋아하면서 새로운 기술도 빨리 습득하고, 어떤 일을 시켜도 빠릿빠릿하게 잘 해내는 엔지니어를, 개발 업무가 아니고 프로젝트 관리나 기술 제안서, 혹은 영업 지원을 하는 업무로 전환시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녁을 같이 하면서 그 친구가 하고 싶어 하는 일, 그리고 내가 그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우리 쪽으로 옮겨도 좋겠다고 합의를 한 것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전기 전자 공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모든 사람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다. 물론 우리 사무실에는,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귀가 좀 어둡고 80년대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한 70 정도는 되어 보이는 독일 출신 할아버지 엔지니어도 있고, 그 할아버지보다 더 선임이지만 역시 개발일을 할 때는 나이고 직책이고 따지지 않고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40대 엔지니어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개발이 천직이고, 본인이 좋아서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신입 사원이던, 경력 20년 차 엔지니어이던, 평생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야 하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학교 입학할 때 그 전공 분야가 정확이 무엇을 하는지를 완전히 다 알고 입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선택할 때도,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입사해서 정확하게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직장에서 몇 년을 일하면서도 다른 부서에서 하는 업무가 어떤 성격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 네팔 출신 엔지니어의 경우에는 비즈니스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다. 네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거의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중소기업 규모의 비즈니스를 일궈낸 아버지의 영향이 꽤 컸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분야를 진득하게 파는 것보다는 항상 새로운 것,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 팀에 들어와서 일을 해 보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랑 다르고, 의외로 프로젝트 관리나 고객사와의 밀당, 제안서의 기술적인 그리고 금액적인 부분을 여러 이해당사자와 조율하는 일, 그리고 잦은 출장 등의 업무가 본인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아직 젊고 똑똑하니, 다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