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일생

by 이은

뼈의 일생




당신은 나를 보고 있습니다

나를 보며 당신은

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들이 다 흔적이라는 것을요

나는 혜정이라는 이름의 생을 먹고

혜정은 순자라는 이름의 생을 먹고

자랐습니다

살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마음입니다


그러나 생을 증언하는 것은

오직 단단한 부분

뼈는 타협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 한 조각도 내어주지 않고

순식간에 매몰되어

긴 긴 침묵 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낼 생각입니다

그것이 뼈의 숙명이라 오래도록 믿어왔습니다


나를 보며 당신은

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무너지며 무너뜨리는 생의 틈에서

발끝에도 닿지 못한 눈물

일그러진 채 웃는 얼굴

웅크린 어깨

깨어진 조각들을

먹고 스스로 자라났습니다

무수한 기억의 파편이

뼈 마디마디에

내쉬지 못한 숨과 함께 고요히 잠들어 있습니다


어느날 뼈는 꿈을 꿉니다

부드러운 비를 맞는 돌탑이 됩니다

흘러내리는 빗물의 손을 잡듯

작은 돌 하나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길을 지나던 아이의 손에 무심코 쥐어집니다

눈을 떴을 땐

앞이 온통 푸르렀다고 합니다

영락없이 기억을 잃은

순진무구한 모래알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뼈는

망연히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내가

뼈에 대해 말할 때입니다




_____


2023년 가을에 쓴 글

쓰고 나서도 자주 떠올렸다.

어떤 문장은 계속해서 떠올려도 늘 처음인 듯 마음이 아팠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한 문단에서 다음 문단으로 건너가는 마음은 글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다음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던 외로움, 용기, 계속하는 마음, 감추고 싶은 마음,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빛도 들지 않는 글 안에서 뼈가 나를 대신해서 홀로 남겨진 채 한참을 울어주는 동안 나는 늘 그렇듯 씩씩하게 살았다.

덜 외로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아른거릴 때 가까운 사람에게만 보여주었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고 덜 떠올리게 되었고 다른 걱정거리와 기쁜 일들이 생기면서 잊었다.

이제는 여기에도 올려두게 되었으니 한 시절이 지나가긴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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