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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준 Aug 14. 2023

지리산에도 "캣맘"이 있다구요?

빛바랜 잿빛 쇠사슬 

당신이 무언가 범죄를 일으켜 버려야 할 것이 생긴다면 맨 처음에 생각나는 것은 외딴 산속일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때만 해도, 지리산에 시체유기 및 살인사건 잔해가 발견되곤 했다.

이따금씩 경찰들이 영화처럼 도로를 통제하곤 했는데, 그 속에 있는 수 많은 경찰무리와 영화에서 나올법한 노란색 경찰 테이프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을 넘어 의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지금 지리산 산마루에서라도 이곳저곳 CCTV가 설치가 되있으며, 쓰레기 분리수거와 소각행위는 범법행위로 감시하곤 한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의 투기에 대해선 나름 자유로운데, 그 이유는 집집마다 찾아오는 유기견과 유기묘가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이 저 언저리 계곡에 시원함을 찾으러 온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인파를 기회삼에 자신의 책임을 버리고 간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특정 품종은 인기가 있어 수요가 높지만, 흔하고 추한 품종은 돈을 준다해도 안받아간다.


안타깝게도 값이 떨어지고 정도 떨어진 품종에게 남는 것은 외딴 곳으로 버려지는 것인가보다.

지리산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당연시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며, 버려진 동물들이 꽤 짜증나기도 한다. 남의 집에 들어오거나 개를 무서워 하는 사람집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강해서일까? 지리산에서 버려지는 동물들을 보며 나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 생겼다.


오해하진 마시라.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아닌, 동물의 "인권"을 지켜야 한답시고 사람인 것마냥 당당하게 주장하는 뻔뻔한 족속들이 지리산에서 하는 짓들을 혐오한다.


인권같은 소리는 집어 치워라. 동물이 사람이냐?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고 길렀던 입장으로서 자신이 기르는 동물에 대한 애착을 가지는 행위에 대해 나는 공감하며 이해한다. 한 생명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이 여타 다른 동물과 차별화 되는 사회적 행위와 도덕적 지능을 나타내는 멋진 증후라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동물을 반려동물이라는 명목하에 "인권"이라 부르는 것을 극도로 증오한다.


예전에 고양이를 기르기 위해 고양이 입양 사이트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속에서 고양이를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흔히 볼 수 있는 길고양이는 '코리안 숏헤어'라는 품종인데, 흔히들 코숏이라 하더라.

이런 코숏은 길거리에 차고넘쳐서 돈을 준다해도 안가져간다.

생각해보아라. 길고양이가 아무리 귀엽다 한들, 예방접종 몇십만원, 병원비 몇백만원, 밥값부터 고양이모래 월 30~50 매달 깨지는 걸 감내할 만큼 느닷없는 돈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가?


웃기게도 비싼 품종은 입장이 180도 바뀐다.

희귀 품종이거나 특히 털이 고운 고양이면, "동물을 유기하지 않도록 보호비 및 인권비를 받으실게요~!"라며 30만원부터 50만원까지 금액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취지는 동물을 또 함부로 유기하지 않도록 그 만큼의 성의를 보여라고 하는 것인데, 직접 글들을 보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자면 장사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만났던 사람은 자신이 해외로 유학을 가야해서 동물을 버려야 하는데 비싼 품종이라 그냥 버리긴 아까웠는지, 50만원의 책임비를 받을테니 주 1회 고양이 사진 10장을 찍어보내며 3달간 상태보고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잠깐 떨어진 것을 그리도 강조하면서 "우리 불쌍한 고양이"라고 칭얼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눈살이 팍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내 지리산 출신임을 밝히자 고양이에 대해 기생충부터 차에 치어죽는 고양이가 많다고 위험한 것 같다며 칭얼거리면서 "제대로 책임있게 키울 수 있겠냐"며 나에게 재차 물어봤다. 웃기지도 않은 개인 도덕수업시간인줄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인데, 짜증이 치밀었다.


지리산에서 치매노인이 차에 치어 죽어나가는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사람이, 고양이 죽는것에는 그렇게 교양있는 척이란 척을 다하니 내가 사이코패스가 된 것마냥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책임비를 낼 생각 없다며 버리고 싶으면 근처 센터에 버리라고 했고, 그 사람은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던 기억이 난다.


돈을 주고 버려도 모자랄 판에 내가 엎드려 절 하는 모습을 그리도 보고싶은건가?

꼴 같지도 않은 위선은 집어치우라.

난 그런 애 같은 칭얼거림은 지리산에 나고자라면서 배운 적이 없다.





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 대해 반려동물이라 칭하며 아끼고 정을 붙이는지 안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애착이 가는지도 안다.


하지만 반대되는 사실도 또한 안다.

우리집에 와서 서로 남은 음식물 쓰레기라도 차지하려고 서로 으르렁대며 물어뜯는 유기견과 유기묘가 10마리가 넘는다는 사실도 안다.

그리고 그걸 불쌍히 여겨 우리 부모님은 사료를 매달 몇 포대씩 사지만, 그걸로는 서로의 배를 채우기는 커녕, 영역싸움을 부추길 뿐이라는 것도 안다.


어떤 한 마리가 먹기 위해서는 한 마리는 굶주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나머지 버려지는 약한 동물에게는 정을 줘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안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


내가 귀엽다고 점순이라고 불렀던 고양이가 음식점 너머 도로가에 치어죽는걸 본 기분을 말이다.

점순이 새끼는 우리집에서 자라 어미가 되어 벌써 새끼를 낳고 그 자식을 길러 또 아이를 뱄다.

그 중 어떤 고양이는 살려고 어미젖을 피가 나도록 빨며 앞발로 어미를 누르며 젖을 짠다.

허나 어떤 고양이는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의 어미에게도 버림받고 그걸 지켜보던 나한테 온다.

그 고양이를 도와주며 젖병도 사서 먹이고 키우며 보냈는데, 유기견이 물어 죽이며 시체를 가져오는 기분을 아는가?


목에 빛바래고 녹이 슬어 갈색빛이 도는 꺼슬한 쇠사슬을 끌고다니는 강아지가 있다.

우리 큰형은 그 강아지가 쇠사슬을 끌고 다닌다며, 사일러스(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느낌이라 생각해도 좋다)라는 캐릭터 이름을 붙여줬다.

하얀색 털이 짧은 강아지인데, 왼쪽 앞다리 하나가 없다. 아마 교통사고를 당한 듯 하다.

이 강아지는 우리집 음식물 쓰레기 담당을 하고있는 강아지다.


명절때가 되면, 엄마는 동물들도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며 곱게 부친 전을 하나씩 주곤 한다.

그렇게 새해를 같이 보내는 동물들이 하나같이 잘 먹고, 귀엽고, 인간이 보기에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강아지가 점순이의 대를 잇는 고양이를 물어죽이고, 밥을 먹여줘서 고맙다며 죽인 시체를 나에게 물어다 줬다.

그 오묘하고 괴기한 기분을 당신은 느껴본 적 있는가?




동물에게 반려동물이라 이름을 붙여도 좋다.

자신이 기르는 동물에게 애착을 붙였다가 버려도 좋다.

사람보다 동물의 권리를 더 중요시하며 구호활동인 것 마냥 위선을 떨어도 좋다.

그리고 그런 동물을 버리며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려 들며 돈을 요구하는 것도 좋다.


다만 지리산에 그 책임을 버리진 마라.

여기엔 이미 버려진 의무와 책임들로 쓰레기가 가득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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