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냉정하다
돈은 감정도, 이름도 없다.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유독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얼음보다 차갑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돈이다.
그게 내가 처음 맞닥뜨린 자본주의였다.
나는 이 냉정함을 꽤 늦게 깨달았다.
월급을 받으면 소비를 해야 직성이 풀렸고
풍차 돌리기식 적금은 만기와 동시에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내 통장의 잔고는 늘 제자리였다.
대기업에 입사하여 2014년 초봉이 4,200만 원 정도였다.
절대로 부족한 액수가 아니었다.
단지, 돈을 다루는 법을 몰랐을 뿐이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인(in) 서울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나름의 좋은 학점과 스펙을 갖추게 되었고,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들었던 대기업 취업을 했으니
지나가다 비친 내 모습을 보더라도
눈보다 더 높은 곳까지 어깨가 솟아 있던 시기였다.
학창 시절 알바로 벌던 소액과는 체급이 달랐던 월급.
그 '첫 월급의 뽕'에 취해 이대로만 가면 부자가 될 줄 알았다.
이것저것 쓰고 남은 돈을 저축했을 뿐이고
부동산, 주식 같은 재테크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기에
불로소득을 바라는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라고만 여겼다.
그렇게 대기업병에 걸린 채 지내오다가
현실을 깨달은 건 결혼 준비 과정에서였다.
신혼집 마련이라는 거대한 시험대 앞에서야
비로소 '돈의 세계'를 정식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돈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외에도 알아야 하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모르면 호구취급 당하고 비싸게 계약하게 되는 세상.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호구 잡았다'라고 안도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그 무지의 대가로 나는 세상이라는 벽에 그대로 들이받게 되었다.
전세로 시작한 이후로도 수차례 이사할 때마다
보증금의 상승폭은 뼈 빠지게 벌고 모은 액수를 훌쩍 뛰어넘었고
임대인과 중개업자들은 나를 시험했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정작 내 보금자리에는 무지했던 나를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종하고 있었다.
결국 임대차 소송과 이삿날의 갑질까지 겪어가며
뼛속깊이 새겨진 자본주의의 냉혹함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절치부심 끝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고
폭락장 속에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양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떨어지는 칼날은 맨손으로 잡지 말라"라고 했지만
날카로움보다 더 아팠던 과거의 기억을 뿌리치고
나는 그 칼을 온몸으로 움켜잡았다.
무더기 미달 소식과 함께
계속 떨어지는 주변 아파트의 시세를 보며
심장이 떨리고 밤잠을 설친 날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은 내 편이었다.
그때 분양받은 아파트는 각종 부동산 규제 속에서도
우리 가족의 자산을 단단히 불려주었고,
몇 달 전 입주하여 '내 집 마련'의 달콤함을 온 가족이 함 누리고 있다.
이제 나는 내 주변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하게 내 집을 마련한 사람이 되었다.
나아가 부동산 상담을 해오는 지인과 동료들도 있을 정도다.
이 연재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한 사람이
돈과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
전세와 월세의 고단함,
임차인의 서러움,
그리고 분양을 거쳐 마침내 '내 집'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담아보려 한다.
냉정한 돈 앞에서 흔들렸던 순간들,
좌절과 고민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리고 마침내 얻은 보금자리와 감사.
이 이야기가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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