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으로 들어갔을때, 그의 얼굴은 모니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대신 블라인드에 반사된 한낮의 흰 빛이 그의 뒤통수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공손히 인사를 하며 의자 쪽으로 걸어갔고 의자에 앉으면서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고 있던 얼굴을 그녀에게로 돌렸는데, 역광에 있어 불확실하게 검었던 얼굴이 밝게 빛남과 동시에 네, 안녕하세요. 하는 인삿말이 방 안에 낮고 부드럽게 울렸다. 여자는 조용히 놀랐다. 그는 미술이었다. 아주 오래 전 고등학생이었던 여자가 그를 처음 봤을때처럼, 그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마치 그녀를 보게 되어 놀랍다는 듯이. 하지만 당연하게도 놀란 것은 여자쪽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얼굴을 붉혔다. 미술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수치는 되풀이되었고(그녀는 마치 포르노에 등장하게 된 일반인의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그녀는 그의 복사본들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는 하나의 질환이었다. 너무 오래되어버린, 벽돌처럼 우직하고 무겁게, 형용할 수 없는 칙칙한 빛깔-굳이 비유하자면 짙은 회분홍 정도-을 띄고, 몸 속 어딘가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서, 그녀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만성병과도 같이.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생각해보면 당신 때문이죠.
창틀의 석고상들은 한낮의 빛을 받아 더욱 창백하다. 그녀는 부자연스레 고개를 치켜올린 자세로 아폴로상과 눈이 마주친다. 아폴로의 텅 빈 시선은 그녀를 통과해 진료실의 문에 닿는다.
의사는 그녀가 이야기한 곳과 다른 쪽의 피부를 누르고 있고 그의 모니터엔 의료 영상이 돌아간다.
kj야, 그렇지. 예쁘다, 예쁘다.
어느새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 미술이 내 모습을, 의사의 손자국이 찍힌 붉은 목을 찍으려고 한다. 이젠 그만 찍어요. 나는 열여덟살이 아니고, 당신은 내 사진을 돌려주지 않았어요.
그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나와 의사를 응시하는데 그 표정이 슬퍼 보인다. 내 기억에 당신은 한번도 슬픈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젊은 얼굴을 하고 목덜미에서 손을 거두어간다. 이 주 뒤에 봅시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게 좀 친절하게 구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킨채,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방을 나선다. 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어떤세계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벗어놓은 스카프를 두고 왔다는 생각에 다시 진료실로 향했는데, 간호사로부터 오늘 진료하는 의사 중 그런 사람은 없을뿐더러 내과 전체에도 그 이름을 가진 의사는 없다는 말을 듣게되고, 그녀의 진료 차트에는 F/18이 표기되어 있고, 방금 그녀가 닫고 나왔던 문은 사라졌다. 그 자리엔 미술치료를 마친 어린 환자가 엎지른 붉은 물감만이 온통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