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제주 2
한 시간을 달려왔다. 오랜만의 드라이브에 한껏 개운한 느낌이다. 제주 시내에서 동쪽으로 50km 떨어진 이곳에서 프라이빗한 티 클래스가 예정되어 있다.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김에 잠시 공간을 둘러본다. 도처에서 느껴지는 담담한 손길이 마음에 든다. 차실에 먼저 들어와 선생님을 기다렸다.
차실 바깥으로 펼쳐지는 오후의 풍경은 방금 전까지 차 안을 가득 메웠던 클라라 슈만이 작곡한 피아노 삼중주의 잔향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곡의 정확한 제목은 Piano Trio in G Minor, Op. 17: III. Andante. 안단테는 악보에서 걸음걸이 정도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오늘 같은 날의 발걸음 정도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내가 고른 ‘선옥죽차’는 둥굴레 중에서도 향미와 영양소가 풍부한 용둥굴레로 만든 차다. 새순이 죽순과 닮고, 왕들이 즐겨 먹었다고 해서 옥죽(玉竹)이라 불린다. ‘구증구포’ 제다법으로 만드는 선옥죽차는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전통적인 과정을 통해 향과 효능이 좋아진다. 기존에 마셨던 둥굴레차보다 좀 더 새콤한 느낌이랄까. 정성이 가득한 건강차를 마시고 나니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선옥죽차의 첫 번째 우림 시간은 30초다. 세 번째 우림 시간은 그보다 4배인 120초를 기다려야 한다. 차를 우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다기를 예열하는 것이다. 숙우와 다관 그리고 찻잔을 순서대로 데워주어야 한다. 특히 숙우(熟盂)는 알맞은 물의 온도를 만들기 위한 사발인데 ‘숙련’과 같은 한자, 익을 숙을 쓴다. 다도는 차분한 호흡과 기다림으로 마음의 내공을 쌓는 일이었다. 일상을 익숙하게 살아내기 위해.
차실에서 나와 장소를 옮겨 걸어보기로 한다. 섭지코지의 유민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있다. 차 없이는 어디를 못 다니는 내가 미술관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일부러 놓쳐본다. 도로 어디선가 무심결에 지나친 표지판이 떠올랐다. 속도를 늦추면 제주의 풍경이 보인다던 커다란 표지판. 정말이다. 눈앞에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각자의 파랑을 뽐내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들었던 C. Schumann: Piano Trio in G Minor, Op. 17의 다음 4악장은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라는 의미다. 내일모레면 다시 조금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있을 테지만. 그 순간을 익숙하게 맞이하기 위해 나는 지금 걷고 있다. 안단테의 속도로.
https://youtu.be/6SNY2psmNi0?si=NtqnoMv9TSNAGQ_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