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콩국수
나이 드는 것은 필시 마음에도 주름지는 일일테다. 감흥 없던 것이 좋아지기도, 좋았던 것은 귀찮아지기도 하며 이런저런 굴곡을 만드니까.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중력은 마음의 깊이까지 관장하지는 못해서 우리는 어른스럽게 굴기 위해 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덕목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나는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이 많아질 때 특히나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실감한다. 세상 물정 모르던 한 여자아이가 그토록 갈망했던 어른은 사소한 자유에 비해 무수한 책임으로 점철된 존재였던 것.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싫어하는 마음은 되도록 들키면 안 된다는 점이다.(여전히 어렵다.) 나와는 무관하다 치부했던 것이 좋아지기까지는 마술 너머 마법의 영역인 것이 아닐까. 음식도 예외는 아니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식당들은 하나둘씩 계절메뉴를 선보인다. 유독 자주 보이는 음식이 바로 콩국수인데, 시원하고 녹진한 국물과 쫄깃 담백한 면발은 호불호를 떠나 누구에게나 익숙한 맛이다. 나에게는 이제까지 딱 세 번의 콩국수가 있었다. 유년 시절 예배가 끝나고 교회 식당에 앉아 먹었던, 채 썬 오이가 올려진 콩국수가 바로 나의 첫 번째 그것. 나머지 두 그릇은 모두 회사 점심 메뉴였다.
회사에서 두루두루 잘 먹는 것은 어엿한 사회인의 덕목 중 하나. 실제로도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어서 나름의 장점이라 여겨왔던 터였다. 그러나 삼세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콩국수는 여전히 어려운 음식이다. 하나같이 고소하다고 하는 콩국수가 왜 이렇게 느끼하게만 느껴지는지. 호기롭게 주문해서는 두어 젓가락 먹고 마는 것이 가상한 노력의 결과다. 그래도 당분간 콩국수의 계절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심심한 위로가 된다.
내년 여름이면 또 다수의 취향에 편승하여 콩국수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언가를 억지로 할 필요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대상이 무엇이든 등을 돌리지 않고 지척에 두며 그대로 바라보는 일 역시 필요함을 알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면 가능성과 유연함에 대하여 절대 인색하지 않을 것. 스스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