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관람객이 말하는 전시 리뷰
지난해 연말에 즐기고 왔던 [맥스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이 에피소드 2로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귀여운 그림체와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디테일, 다채로운 색채와 따뜻한 분위기까지 맥스 달튼의 일러스트는 나뿐 아니라 방문한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6개월간 무려 17만 명이 다녀갔다고.
63아트 전시장의 널찍한 규모와 작품 스타일에 맞게 꾸며진 1막~3막의 구성, 63빌딩의 아름다운 전경은 맥스 달튼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공간을 거닐며 문화적 감수성을 충족하기 좋은 전시였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에피소드 2]는 지난 전시와 비교하여 얼마나 달라졌고 풍요로워졌을까? 다른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를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이번 에피소드 2에서는 SF 장르와 호러장르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 미술계 거장들에게서 영감받은 ‘작가의 방’ 시리즈를 추가로 감상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2막 웨스 앤더슨 컬렉션’ 섹션에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전시장으로 그대로 옮겨온 듯한 포토존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체적인 작품의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막은 맥스 달튼이 사랑한 영화로 꾸며진 ‘영화의 순간들’, 2막은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다룬 ‘웨스 앤더슨 컬렉션‘으로, 3막은 맥스 달튼이 꾸준히 영감받고 사랑했던 음악, 미술 분야의 아티스트를 모티브로 제작한 ’맥스의 순간들‘ 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었다.
지난번 리뷰 <작품과의 거리 10cm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에서는 전체적인 맥스 달튼 전시의 감상 키워드를 꺼내고, 영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위주로 감상을 덧붙여 보았다. 이번에는 에피 1과 에피 2가 얼마나 다르고 같은지, 작품 외적인 전시장의 요소 등 리뉴얼된 부분을 위주로 리뷰를 해본다.
그럼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을 통해 맥스 달튼의 찐팬이 된 N차 관람 관객의 본격 후기를 시작한다.
보통 전시를 감상할 때 혼자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전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하고 조용히 전시장을 거닐며 작품을 곱씹어 볼 수 있을 때 내 감정에 충실한 감상이 나올 뿐 아니라, 스스로와 대화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스 달튼展은 혼자 감상하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보았을 때 훨씬 더 재밌다고 장담할 수 있다. 더욱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배는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른 지인과 함께 다녀왔다. 역시 타인과 감상을 나누니 새로운 시선을 느끼며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저번에는 몰랐지만, 이번에는 아는 영화<아멜리에>를 주제로 한 ‘아멜리 풀랭의 멋진 운명’을 제대로 감상했다.
지난 전시에서 이 작품을 보고 집에 가서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아멜리에>는 내 취향을 저격한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이 간 지인에게 신나게 작품을 설명했다. 이 사람은 어떻고, 저 사람은 어떻고. 한 명씩 짚어가며 뭐 하는 사람인지를 말하고 나니 상대방이 뭔가 깨달은 듯 얘기했다.
“어? 근데 너가 말한 사람들 모두 눈을 뜨고 있어!”
뭐? 아! 지난 번전시를 감상할 때 내 궁금증 중 하나는 맥스 달튼이 사람을 묘사할 때 누구는 눈을 감긴 채로 그리고, 누구는 눈을 뜨게 그린 부분이었다. 보통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게 맥스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만을 눈동자로 다르게 표시한 것이다.
재밌는 발견이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속속들이 자세히 감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맥스 달튼展은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여럿과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상상을 덧붙이거나 감상을 공유하다 보면 전시의 재미가 배가 된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은 제목처럼 작품 대다수가 영화를 모티브로 한다. 이것은 전시로서 강점이자 단점이 된다. 모든 관객을 아우를 수는 없지만, 특정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맥스와 영화 취향이 비슷하지 않거나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재밌게 즐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전시를 그림책 감상하듯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는 영화가 나올 때는 나도 작품에 딱 붙어서 하나씩 뜯어봤지만, 모르는 작품은 대강 훑어보고 지나치게 됐다. 앞선 ‘1막 영화의 순간들’이 하나의 작품에 하나의 영화를 담은 것과 달리 2막으로 가면 맥스가 사랑하는 감독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등 영화의 장면들을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심하게 그려냈다.
그만큼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알지 못하면 몇 가지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지점이다. 각각의 사연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는 작품처럼 짤막한 시놉시스, 생각하게 만드는 몇 가지 대사, 작품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간결한 텍스트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에피 1에서도 너무나 재밌게 보았던 ‘3막 맥스의 순간들’에서 시대를 풍미한 화가들의 작업실을 그려낸 ‘작가의 방’ 시리즈가 이번 에피 2에서 대폭 늘어났다. 나는 3막으로 발걸음을 돌리자마자 기쁜 비명을 (속으로) 질렀다.
노란 땡땡이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방,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 그래피티 예술가 ‘키스 해링’, 원색적인 선과 면으로 추상화를 그린 ‘몬드리안’ 등 한 번쯤 작품을 본 적 있는 유명 화가들이 그의 뮤즈로 등장한다.
현존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개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기에 맥스는 그들의 작품과 사진 자료를 기반으로 작업실을 상상하고 재현했을 것이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작가의 작업실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순간을 몰래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잭슨 폴록은 그의 화풍만큼이나 작업실 또한 자유분방하다. 작업하는 모습도 거친 야생의 느낌이 든다.
반면 몬드리안의 작업실은 모던 그 자체다. 흰색의 벽과 정돈된 가구들, 작품만큼이나 균형 있는 가구배치가 돋보인다.
가장 반전이었던 방은 키스 해링의 작업실. 그의 작품은 경쾌하고 자유롭고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데 정작 키스 해링은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를 좋아했나 보다. 체크무늬 타일의 작업실에 작업 도구와 캔버스를 종이 위에 얹었다. 선반에 놓인 물건도 일렬로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실제 성격은 조용하고 예민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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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2에서 달라진 부분 중 하나는 포토존이었다. 널찍한 전시 공간을 활용하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한 컨시어지룸을 전시장 한 편에 구성하고, 통창이 있는 전시장에는 <반지의 제왕>을 모티브로 한 대형 보드게임 작품을 바닥에 깔아 두었다. 그가 그린 캐릭터는 등신대로 세워져 있다.
개인적으로 포토존은 공간과 작품의 특징에 비해 전시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요소로 느끼지 못했다. 단순히 작품을 바깥으로 꺼내었기 때문이고, 포토존의 디테일은 맥스의 작품 같은 디테일이 살아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창이 있는 보드게임 포토존은 어린 아이들이 사진 찍거나 즐기기 좋아 보였다. 그러나 작품에 영어가 쓰여 있다는 점과 실제 게임처럼 즐기는 곳이 아니라는 점, 소재가 된 영화와 보드게임이라는 소재는 아이들보다는 어른이 공감하기 좋은 것이었기 때문에 덕후, 키덜트 심리를 자극하는 쪽으로 포토존을 구상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에피소드 2]는 더욱 다채로워진 작품 수와 전시 작품을 효과적으로 녹여낸 트럼프 카드, 레트로 게임기, 그림책 등이 추가된 굿즈 샵으로 영화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리뉴얼과 동시에 전시 기간도 11월 26일까지 연장되었다고 하니 이번 해가 가기 전에 즐겨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