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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pr 23. 2024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러운 대화

전시 리뷰|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展


인상주의 화풍은 미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예술 사조다. 모네, 르누아르, 마네 등 프랑스 인상주의로 불리는 대표작들은 누구나 알아볼 정도로 대중적이고, 아름다워 호불호도 크게 갈리지 않는다.


나의 첫 미술 산책도 인상주의 작품에서 시작됐다. 현재는 시간이 꽤 지나 취향이 변했지만, 여전히 인상주의 미술을 생각하면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는 기분이 든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퍼져간 인상주의 화풍은 북유럽에도 닿았다.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의 스웨덴 작가들은 기존의 보수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파리에서 외광회화, 자연주의, 인상주의 화풍 등을 가져온다. 고국으로 돌아온 작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문화를 모티프로 작업하였다. 그래서 북유럽풍 인상주의 작품에는 지역의 정경과 분위기, 민족의 감수성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From Dawn To Dusk : Nationalmuseum Stockholm Collection


북유럽풍 인상주의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새벽부터 황혼까지-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展>은 기대한 대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경탄이 나오던 전시였다. 미술관에서의 산책이란 이런 경험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지.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展>에서 봄 산책을 하며 작품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전시에서 떠올렸던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본다



| 이렇게나 아름다운 순간, 북유럽의 대자연


한스 프레드릭 구데, 샌드빅의 피오르

‘와. 아름답다.’


사진도 이렇게 사실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바다에 반사된 햇빛의 입자가 세밀하고 곱게 묘사되어 있다.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이다.  



브루노 릴레 에포르스, 솜털오리들 ©Nationalmuseum Stockholm


굽이치는 바다 위에 오리들이 떠다닌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에 일렁이는 노을 빛은 오리의 털에 노란 색을 입혔다. 따뜻한 하늘과 달리 바다는 차갑다. 내 몸도 물결따라 둥둥 떠 다닌다. 어느새 오리들이 물살을 타고 가슴팍까지 와 있다.


'어디로 향하든 상관 없어. 바다가 이끄는 곳으로 가면 돼.'


이들은 나에게 눈으로 말하고 다시 유유히 떠난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란. 나는 이곳의 저녁시간에 초대받은 것처럼 한참 동안 바다를 눈에 담았다.   


에스테르 알름크비스트, 가지가 늘어진 자작나무


나무를 좋아한다. 나뭇잎이 만드는 일렁이는 초록과 햇빛 아래에 드리워진 따뜻한 그림자는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여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와 바람이 만드는 움직임, 나무의 초록과 하늘의 파랑이 만나는 풍경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파란 하늘에 걸쳐진 울창한 나무의 녹음. 그 아래로 드리워진 파마 머리 같은 그림자는 독특한 느낌을 더한다. 나무는 기울어진 대지를 따라 대각선으로 자라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신비로운 상상력을 자극했다. 작품은 일상적인 풍경을 소재로 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 일상의 로망을 그린다면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아침식사 중에 ©Nationalmuseum Stockholm


자연광이 은은하게 깔린 어느 집의 아침 식탁. 커다란 창문 밖으로는 초록색 풍경이 보이고, 실내에는 색감 있는 가구와 멋스러운 도자기가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한 여성이 편안히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홀랑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꿈꾸던 일상의 로망을 누군가 그려놓은 것 같았다. 그림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빛의 온도와 고요해 보이는 그림자, 부드럽게 빛나는 여인의 실크 원피스까지. 내가 갖고 싶은 낭만적인 아침이다.   


칼 라르손, 로코코를 위한 습작©Nationalmuseum Stockholm


‘난 잠깐 쉴게.’


햇살이 가득한 정원 뒤편, 여인이 비스듬히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살금살금 걸어 그녀의 앞에 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잠든 것 같다. 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풍경과 꽃 자수로 가득한 드레스, 백옥 같은 피부.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뜯어보다 자유롭게 흐트러져 앉은 그녀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꼈다.  



| 우리 구면인가요?  


베르타 베그만 - 정원에 있는 젊은 어머니와 아이©Nationalmuseum Stockholm


저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당황스러울 만큼 또렷이 응시하고 있으니 무시하기가 어렵다. 난 자석에 이끌리듯 다른 작품들을 재치고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  


‘와. 눈부셔라.’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아우라에 압도되었다. 한참을 멍하게 서있으니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난 그녀가 건네는 무해한 미소에 할 말을 잃고 빤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저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그녀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린다. 아닌가?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를 바라보니 울지도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아는 사람을 보는 눈이다. ‘아. 나는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가 보다.’ 그리곤 내가 깨우치자마자 그녀가 다시 부른다.


‘뭐해요. 어서 가요. 돌아가야죠’


그녀의 뒤로 펼쳐진 길 끝에는 집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누군가의 삶을 상상했다. 싱그러운 미소의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기. ‘이것 참 부러운 삶인걸.’ 나는 밖으로 빠져나온 후에도 그녀가 있는 곳을 자꾸 흘금거리게 되었다.  



그렇게 전시장을 돌면서 오랫동안 작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작품은 그 장소로 나를 초대하고, 어떤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또 어떤 작품은 멀찍이서 바라보게 되었다. 북유럽의 인상주의 작품은 확실히 특유의 개성이 있는 듯하다. 각기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정서나 분위기, 풍경 등이 묘하게 닮아있다. 한결같이 차분하고 평화로웠던 봄 날의 산책. 좋은 작품들을 잔뜩 만날 수 있는 전시였다.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展 : 새벽부터 황혼까지>은 스웨덴국립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이 협업한 전시로 2024년 3월 21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린다. 전시 작품은 스웨덴국립미술관의 소장품 79점으로, 칼 라르손부터 한나 파울리, 앤더스 소른, 칼 빌헬름손, 휴고 삼손, 외젠 얀손, 요한프레드릭 크루텐, 브루노 릴리에포르스, 라우리츠 안데르센링, 한스 프레드릭 구데 등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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