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제 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 위 무용수들이 시계가 되어 서 있다. 공연 시작 전부터 한 명, 두 명씩 나오더니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추어 모두 일렬로 섰다. 자연스럽게 꺼지는 조명과 시작하는 음악. 이들은 마이크에 대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동시에 움직임을 이어간다. 마치 몸 자체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듯 하다.
움직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몸은 용처럼 연결되어 서로의 움직임을 복사한다. 앞 사람의 움직임은 뒷사람의 몸으로 전이된다. 움직임은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그렇게 15명의 움직임은 전이되고 변화하며 시시각각으로 복사되고 전달된다. 그렇게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움직임이 소리의 신호와 함께 즉각적으로 사라진다. 긴장감 있는 음악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움직임들이 폭발하듯 무대의 양끝으로 달려 사라진다. 마치 우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리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움직임들. 어떤 부분에서는 청각적 자극과 시각적 자극이 정확하게 매치되어 징그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분해했다가 합성하는 어느 생물의 세포과정을 보는 것처럼, 빠르게 붙었다 떨어지고 변화하는 힘이 이어졌다.
공연 내내 이들은 각각의 무용수로 보이기 보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였다. 흩어질 때도 있지만, 다시 돌아와 한 몸으로 합체가 되고 연결되었다가 흘러내린다. 이들의 합이 너무나 유려해서 실시간 모션 그래픽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창립 45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의도와 걸맞게 이들이 쌓아온 역사와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폴리시 댄스 시어터는 1973년부터 활동한 무용단으로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발레극에서 컨템퍼러리 장르로 진화하면서 다양한 장르와 기술, 실험적인 표현수단을 더해왔다고.
작품 ‘45’는 폴리시 댄스 시어터의 응집력을 명확히 보여주는 무대였다. 연속적으로 진행되었던 다양한 프레이즈는 공연의 처음과 끝에 반복되면서 다시 한 번 시각적인 쾌락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공연 초반과 후반에 단체로 진행했던 군무를 제외하고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사가 있는 공연은 아니었기 때문에 초반부의 긴장감을 끌고 갈 수 있는 수단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웠지만, 메시지를 읽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무용의 조형미와 무용단의 합, 심미적인 부분을 위주로 감탄하는 감상을 했다. 풍성한 사운드와 무용수들의 움직임 자체만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었던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