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과 글쓰기

박완서 『노란집』 -《나의 보배덩어리 시절》

by 한남






《나의 보배덩어리 시절》


할머니 곁엔 늘 반짇고리가 붙어 다녔다. 그건 아마 놀이에 가까운 할머니의 취미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출입이 잦은 할아버지 명주 두루마기를 밤새워 지어야 하는 고달픈 며느리들에 비해 한결 느긋하고 장난스럽기까지 했다.


(박완서 -『노란집』, 24~25p)








내가 남아도는 시간을 쓰기 위해, 글 나부랭이를 끄적이는 동안 어머니는 바느질을 했다.

2016년 판 한석봉과 어머니.


치료로 인해 반쯤 날아간 자식의 머리를 가려주기 위한 모자,

추위에 떠는 신생아들의 체온을 지켜줄 털모자

학교 행사 때 제출할 인형 등등


학교에서 퇴근해 집에 돌아와 한참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거리를 마무리 짓고 나면, 어머니는 여지없이 코바늘을 꺼내들었다. 내가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동생과의 마찰이 심해졌을 때, 아버지와 다투셨을 때 손놀림이 더 빨라졌던 것을 보면 그건 아마 마음수련에 가까운 어머니의 취미생활이었을 것이다.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방금 전까지 시험문제를 내다 지쳐하던 분이 맞나 싶게 들떠 있어, 그 안에 담긴 마력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끔 했다. 그저 면과 선으로 존재하던 것에 형체가 만들어지고 쓰임이 생기는 창조의 기쁨이 어머니를 홀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바느질에 열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나의 글도 누군가를 홀리고 싶다는 마음에 가끔 창작욕에 불타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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