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나들이

박완서 『노란집』-《마상(馬上)에서》

by 한남




《마상(馬上)에서》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 하셨을까. 그 생각만하면 자신이 소중해진다. 그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박완서 -『노란집』,136p)








심심할 때면 차를 몰고 훌쩍 고령으로 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고서점이었지만 더 이상 책을 놔둘 공간도 없고,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빨라 감당불감당이다. 그리고 혼자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재미있으니까. 승현이 형이 있는 쌍림 보건지소, 나기 형이 있는 성산 보건지소,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운수 보건지소와 군 보건소. 갈 곳이 많다. 어디든 항상 나를 반겨준다.


승현이 형을 보러 쌍림에 간 날이었다. 주차를 하고 지소 문을 열자, 점심시간을 앞두고 졸고 계시던 조 여사님이 깜짝 놀라 달려 나와 나를 반겨주셨다.


승현 쌤, 진료실에 있어요. 몸은 괜찮아요?
그럼요. 저 완전 멀쩡해요.
그러네, 몸 보니 완전 멀쩡해보인다.
여사님이 더 힘들어보이시는데요?
아 어제 잠을 못 자가지고, 우리 쌤한테 한 번 진맥 받아야 하는데.
에이, 건강해보이시는 걸요.
그때 병문안 못 가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승현이 형과 점심 식사를 위해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멀리 성산에 있던 나기 형도 합류했다. 형에게 요즘 고

령 공보의들의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잘 지내지만 작년만 못하단다. 사라진 것에 대한 추억도 다분히 섞여있겠구나 생각하는 나에게 형은 나의 빈 자리를 언급했다. 애살 있게 치대는 캐릭터가 하나 있어주어야 하는데 없다고.

식사가 끝나고, 그동안의 고마움을 담아 계산을 대신 하려는데 승현이 형이 이미 계산 해놓았다.


너 돈 버는 거 없잖아. 내가 살게. 그냥 커피나 사.
형들이 돈 모아 준 것이랑 퇴직금도 있는데...


아쉬워하며 지갑을 가방 안에 넣는데 봉투가 발견되었다. 봉투 안에는 돈과 함께 짧은 메모가 있었다. 조 여사님이었다. 가끔 보건소에 가면 많은 직원들이 환대해주었다. 의병 제대한 이상 이제 아무 관계가 아니련만, 항상 나를 기억해주었다.


‘나 사랑받는구나.’


아픈 다음부터 계속 느끼지만, 나 참 많이 사랑받는구나 싶다. 자꾸자꾸 확인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기쁜 건, 그동안 나의 행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난 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지게 된다.


'자신에 대한 믿음'. 이건 이번 일을 겪던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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