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노란집』-《치매와 왕따》
기억력이 좋다는 말도, 건망증이 심하다는 말도 다 맞는 말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다 까먹고 시시껄렁한 것들만 잘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일찍부터 소설 쓰는 데 중요한 것만 골라서 기억하고 그 밖의 것은 까먹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불필요한 걸 잘 잊어버렸기 때문에 필요한 걸 잘 기억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건망증이라는 말보다는, 우리 엄마가 붙여진 무심하다는 말이 더 좋다. 중요하다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무심함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유념이나 지속적인 관심이 가능했지 않나 싶다. (『노란집』 03, 154~156p)
나의 글을 접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묻고는 한다.
이걸 다 기억한 거야?
나는 대답한다.
다는 기억 안 나요. 내가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데. 그리고 나중에 채운 것도 있고, 픽션인 부분도 있고 그래요.
실제로 그랬다.
병원에서의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있는데 그 후 퇴원 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시간상으로 보았을 때는 반대여야 하는데도 그렇다. 병원에서도 그렇다. 교수님과 전공의, PA 간호사는 복장부터 얼굴까지 모두 기억나지만 가장 곁에서 많은 시간을 담당한 간호사들의 얼굴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그냥 예뻤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기억날 뿐이다.
여튼 나의 기억력은 요상했다.
방금 놔둔 샤프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지만, 그 샤프로 무엇을 쓰려했는지 잊는 일은 없다. 욕실에 샴푸, 폼 클렌징, 면도 크림이 다 떨어져 다음에 올 때 바꿔야지 생각해두고는 깜빡해서 빈 통을 억지로 털어 쓰더라도 BGM으로 깔아둘 음악을 틀기 위해 휴대폰을 챙기는 일은 잊는 법이 없다. 어제 쓴 이어폰은 못 찾아도, 한참 전에 꽂아두고 읽지 않은 책은 안 보고도 어느 책장 몇 층 어디 부근에 있는지 기억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다를 바 없는 일상 속에서 요일 분간 못하기 일쑤지만 언제고 읽었던 시(詩)나 소설, 에세이 속 한 구절들이 종종 떠올라 길가다가도 미소 짓곤 한다.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님이 방사선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기억력이 나빠질 수 있다고 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의학에서는 인지 과정을 심(心) 의(意) 지(志) 사(思) 려(慮) 지(智) 6단계로 설명한다.
이 중 2단계에 해당하는 의(意)는 단기기억을 의미하는데,
심유소억 위지의(心有所憶 謂之意)라 설명한다.
마음에 두었던 것을 비로소 기억하는 것을 의(意)라고 한다는 뜻.
생각해본다.
나의 들쭉날쭉한 기억력은 마음의 유무가 아니었을까 하고.
샤프로 쓰려고 했던 나의 생각, 음치탈출을 위한 노력이 담긴 음악 선곡, 열심히 정리해둔 책, 언젠가 읽었던 글귀에는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기억한 것이 아닐까?
마음[心]이 빠져버린 ‘의(意)’에는 그저 소리[音]에 불과할 뿐이니까.
P.S.
동의보감의 내경편에는 성음(聲音)관련 질환과 언어(言語)관련 질환 파트가 따로 구분되어 있다.
이때 성음(聲音)과 언어(言語)를 구분 짓는 포인트는 의미전달의 유무이다.
심(心)과 신(神), 즉 정신적 작용 및 논리성이 개입되면 언어(言語)에 해당되며
이 것이 없이 그저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이상하면 성음(聲音)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