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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외전 05 부고(訃告)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외전 05 부고(訃告)






 늘 가던 까페가 닫혀 있었다. 엔틱 풍의 갈색 문 위에는 급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메모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급작스러운 형님의 부고로
다음 주 수요일까지 쉽니다.
양해바랍니다.




아, 벌써...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잠시 멍하니 서있다 발길을 돌렸다. 그간의 일이 생각났다.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구름으로 커튼을 쳐보아도 낮의 밝음을 가릴 수 없구나.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같이 울어주는 것뿐인가.’

 인간의 노력이 햇빛을 가리고자 한 구름만큼이나 허망했음을 느끼며 동네로 돌아왔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을 피하기 위해, 깜박하고 두고 내린 우산을 챙기러 차에 올라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치료과정에서 사라졌던 머리카락이 점차 회복되자, 외출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그때부터 집에 있다가도 조금 답답하다 싶으면 동네 까페로 훌쩍 나갔다. 지속되는 불황의 여파로 길로 내몰린 듯, 조그마한 주택가임에도 집 근처에는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까페들이 7곳이나 되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상대적으로 조용하면서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워 마음에 드는 까페를 하나 골랐다. 그리고 항상 레모네이드를 시키고 창가에 자리 잡고 책을 읽었다.


 20대의 젊은 남자가 낮 시간에 동네 까페에 어슬렁거리는 광경이란 흔치 않은 일. 고시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면 모를까 한가로이 소설책이나 읽고 있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꽤 인상 깊게 남을 수밖에 없다. 가끔 마주치는 아르바이트생도 곧 나를 기억하기 시작하고 “늘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라며 물었고, 한 번씩은 영화 주인공처럼 내가 먼저 “늘 먹던 걸로.” 라 이야기하며 허세를 부려보기도 했다.


 낮에 까페에 올만한 여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동네의 많고 많은 까페 중에서도 꼭 여기에 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적다. 계속 마주치는 사람만 마주쳤고 그것도 나름 친분이라고 여겼는지 어느 날 옆 테이블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이에요?
아니에요.
그럼 취업 준비 중인가?
취준생치고는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무얼 준비하고 있나요? 공무원? 경찰?
우리 아들도 이제 대학교 졸업할 나이가 되어가지고 취직자리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그래서 남이야기 같지 않아서 그래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할까. 백수? 환자? 아니면 작가 지망생? 한의사? 잠시 고민하다 한의사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이렇게 한량처럼 놀고 있지만 곧 잘 될 거다.’ 라는 환상이라도 하나 붙잡고 있어야 남루해진 지금의 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것도 없는 현실에서 오는 위축감을 벌충하기에는 과거의 영광이나 미래의 청사진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나의 별명은 ‘김 닥터’가 되었다. 까페 사장님과 알바생부터 나들이 오는 아주머니들까지 나를 아는 체하기 시작했고 유명인사가 되는데 그리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툭하면 내 테이블 위에 손목을 드러내고 맥을 보아달라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심지어 자기 친구들을 데려오기 까지 했다. 아직 임상경험이 미천한 나에게는 꽤나 힘든 일. 사장님 입가에 미소가 늘어날수록 내 눈가에는 주름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한의사 흉내 낼 수 있음이 너무나 기뻤다. 성심을 다해 몸 상태를 체크해주고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근처 한의원이나 병원을 갈 것을 꼭 추천했다. 그리고 다음에 마주치면 다녀왔는지 확인하기까지 했다. 아마 내 덕에 매출이 상승한 동네 한의원이나 의원이 몇 있으리라.


 대부분 이처럼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러 오는 분들이었지만,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에 슬며시 찾아오시는 분도 있었다. 이럴 경우 예외 없이 자신의 일이기보다는 가까운 누군가의 일이었고, 병의 무게도 자못 무거웠다. 대부분 암이었다.



 암이 유행이라도 하는 걸까? 까페 손님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암 환자들이 늘어났다. 사실 그 이전에도 ‘아무개가 암에 걸렸다더라.’ 식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오가고 있었지만 이제야 내 의식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원래였으면 숨겼을 이야기를 내 상황을 아니까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고.


 이렇게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백이면 백은 조언을 구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경험을 토대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가끔은 주변 공보의 형들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날은 울창한 나뭇잎들이 실은 매미소리가 만든 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끄러운 날이었다. 덥기도 해서 얼른 까페로 들어와 문을 닫는 나에게 사장님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사장님은 나를 ‘김 닥’이라고 불렀다.


김 닥, 형님이 이번에 건강검진 받았는데 후두암이 발견되었어.
어떡하면 좋노.
조카가 알아서 잘 하겠지마는 그래도 걱정돼서 한 번 물어본다.
진행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으신 것 있나요? 초기라던가? 중기라던가?
초기라고 들었어.
아, 그러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수술은요?
곧 한다고 하네.
그럼 수술하기로 한 병원에서 계속 치료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더 좋은 병원 있을 수 있잖아.
주변에 아는 사람 없어?
흠... 지역이 어디인가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서울. 병원이 어디인지는 나도 정확히 몰라
제가 아는 의사 쌤들은 다 대구라서 서울은 잘 모르겠어요.
아, 그래?
네. 참 방사선 치료 한다는 이야기는 없던가요?
이야기했다고 하더라.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당황하시는 사장님께, 나도 실은 암환자임을 실토하며 치료에 대한 자세히 설명 드렸다.


방사선 치료는 레이저 같은 것을 떠올리면 좋아요. 레이저빔으로 태워버리는 거죠.
그럼 피부만 타지 않나?
방사선은 몸을 그대로 투과해요.
방사선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태워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암 세포도 타버리겠죠?
그렇겠지.
그러다보니까, 암 세포가 있는 딱 그 지점에만 효과를 줄 수 없어요.
종양 앞뒤로 방사선이 통과하는 길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상처 입게 되어요.
아까 말한 피부부터 전부.
그래서 화상이 많이 입죠.
저도 머리에 화상입어서 연고 계속 바르고 그랬어요.
그럼 많이 아픈가?
그렇게 아픈 거는 없어요.
그냥 기계 안에 10분 누워있다 나오면 끝이에요.
문제는 통증이 아니라 염증이에요.
방사선으로 생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염증반응이라는 게 생기는데 그러면 붓게 되거든요.
응응, 그래서?
그런데 후두가 부어버리면 식도를 눌러서 식사할 때 곤란할 확률이 매우 높아져요.
문제는 상처 입은 곳에 정상세포로 채워서 회복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때 잘 먹지 못하면 곤란한 경우가 생겨요.
머 어떤 거?
체력이 달리고, 회복이 더디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나 폐렴이 오기도 하고.
또 문제인 게 그렇게 되면 치료를 진행할 수가 없어요.
잠시 중단하고 몸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럼 어떡하지?
저는 침도 놓고, 한약재를 차로 만들어 먹긴 했는데...
했는데?
사실, 저는 그냥 잘 먹었어요. 딱히 식욕저하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병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해주겠죠.
아, 부모님은 야채수를 항상 추천하시던데 저는 긴가민가하네요.
 김 닥은 먹었어?
저는 머... 먹긴 먹었죠.
주욱 몸 상태 좋았다면서.
네. 그렇죠.
오케이~ 알았어.
내가 조카에게 말 해놓을 게.
그럼 가장 중요한 게 ‘잘 먹는 것’ 이거 하나지?
고마워.
오늘 껀 서비스. 레모네이드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열대야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는 ‘여름에 잤더니 겨울에 일어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작스러운 날씨 변화가 있던 날이었다. 간만에 만난 사장님이 음료를 주문하는 나에게 말했다.


요 며칠 안 왔어?
오기는 왔어요. 사장님 안 계시던데요? 저 찾으셨나 봐요?
다름 아니라 며칠 전에 우리 형님한테 가봤는데 식사도 잘 못하고, 축 가라앉아 있더라.
우짜면 좋노.
수술도 잘 끝나고 퇴원도 하셨다더니 요즘 몸이 안 좋으신가보네요.
원래 치료가 계속되면 체력이 달려서 사람이 좀 까라앉는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많이들 되어요.
이럴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한방병원이나 병원에 입원하는 게 낫지 않나 싶네요.
그래?
형님이 자꾸 병원에 가기 싫어해서.
그게 잘 드시고 삶의 질이 좋으면 모를까, 지금처럼 못 먹고 그러면 체력이나 면역력도 떨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방사선 치료도 중단되고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거든요.
그러면 김 닥, 내가 조카한테 전화 걸어서 바꿔줄 테니까 직접 말해줄 수 있나?
아무래도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쉽고 안 그러겠나.
그럼 그렇게 할 게요.


 직접 통화를 했다. 안타깝게도 아드님이 말씀하는 내용은 이미 나의 예측을 넘어선 더 악화된 상태였다. 이미 이틀 전 병원에 입원했으며 검사도 받았는데 그 결과가 참담했다. 식사를 거의 못하신 듯 탈수 판정을 받고 지금 수액을 맞고 있었으며, 폐렴까지 발생하여 방사선 및 항암 치료는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무기한으로 연기되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이상 한 다리 건너 소식 듣는 나보다 병원의 의료진이 알아서 잘할 터. 의료진을 굳게 믿으라는 말 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결국은 시간 싸움이며 보호자가 먼저 지쳐서는 안 됨을 강조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났다. 다가올 겨울에 입을 옷을 박스에서 꺼내 다리고, 세탁이 필요한 코트 몇 벌 세탁소에 맡기고 예의 까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사장님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나를 붙잡고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형님이야기였다. 폐로 전이되었고, 엉치뼈와 고관절에도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환자 본인은 매우 힘들어하고 있으며 조카는 서울 5대 병원 쪽에 가보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암에 있어서 뼈로 전이되었다는 것은, 끝이 다가왔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사장님도 이리저리 검색해본 듯, 나의 말에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였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절로 느껴졌다. 사장님의 걱정은 이미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조카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조카가 현실을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아버지를 놓아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삼촌이 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 자칫 고깝게 들리면 돈독했던 숙질(叔姪)관계도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다. 아드님에게 전화하기 전에 승현이 형에게 먼저 자문을 구했다.




동완 

형~

65세 후두암 환자.

치료 중 폐 전이, 엉치 및 고관절에도 전이

컨디션 극도로 저하.

의료진에서 치료 중단 및 전원 추천 (전원 : 다른 병원으로 옮김)

보호자 측 서울 5대 병원에 문의 상태


이 상태라면 그렇게 희망적이지 못하죠?

아, 그리고 한 달 전부터 이미 섭식 장애가 있었고

그 당시 방사선 치료도 중단된 상태였음


승현 

미안, 지금 운전 중이라서 통화로 하자.



형, 또 번거롭게 전화하네요.
그래, 겸사겸사 이야기하는 거지.
상황이 별로 안 좋죠?
내가 그쪽 방면 전문의가 아니지만 알고 있는 선에서 이야기할게.
Lung meta (Lungen metastase 폐 전이)만 해도 예후가 좋다고 할 수 없는데
Bone meta  (bone metastasis, 골 전이)까지 온 이상 어렵다고 본다.
후두암 좀 늦게 발견했나봐?
아니요.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까지 했다고 하네요.
좀 독특한 케이스네.
그쵸. 원래 나이 드신 분일수록 진행도 느린 법이잖아요.
건강할수록 진행 속도도 더 빠르고.
그래서 평소에 건장하고 그랬냐니까 그건 아니라고 하네요.
그쪽에서 혹시나 싶어서 묻던데, 진단에서의 잘못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죠?
그럴 일은 잘 없지. 그냥 특이 케이스일거라 생각한다.
하긴 저도 엄청 특이 케이스니까요.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면, 지금 환자에게 항암 치료는 ‘최선을 다했다.’ 정도의 마음 위안 밖에 안 된다고 봐.
두고두고 치료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마음에 걸려하고 후회한다면 치료를 받는 것이 맞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환자 몸만 더 아프게 할 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차라리 진통제 같은 거 처방받고 남은 시간을 원하는 장소에서 편히 지내는 게 낫지 않나 하고.
나도 그래.
더 이상의 항암 치료는 D-day만 앞당길 뿐이야.
니도 해봐서 알겠지만 그게 참 사람을 많이 상한다.
암이 무서운 게, 이상한 또라이 같은 놈이 원래 내 꺼였다는 거거든.
원래 내 꺼인걸 없애려면 결국 내 몸도 상하는 거지.
하, 참 어렵네요. 사람 목숨이라는 게.


 후두암 초기와 뇌종양. 그와 나는 평균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었다. 생존율 90%에는 끝을 맞이한 10%가, 생존율 5%에는 살아가는 5%가 있음을 절감했다.


그리고 서울 가는 거 말이야.
이건 내 의견이긴 한데 난 수술 때문에 좋은 병원 가는 것은 말리지 않아.
수술은 결국 surgeon의 개인 능력치에 따라 예후가 엄청 다르고, 그 능력은 경험에서 오는 거거든.
저는 여기에서 받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너는 내가 MRI보니까 서울로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그랬던 거니까 좀 다른 문제고,
아까 이야기 계속하면 이분은 이제 수술 못해.
수술로 제거할 수 있냐 없냐의 여부를 떠나서 애초에 마취 들어가면 다시 깨어난다는 보장 자체가 없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약인데, 우리나라에 좋은 병원에만 따로 제공되는 약은 없어.
결국 어딜 가나 쓸 수 있는 약은 똑같아.
어디를 가든 쓰는 약은 같은데 병원을 옮기는 것에 큰 의미가 있나 싶다.
그리고 지금 화학요법 한다는 그 자체가 고통이고 생명을 단축시킬 텐데 난 추천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제가 걸어갈 뻔했던 길이었다는 것이 참 무섭네요.
한 명은 후두암 초기였고 한 명은 뇌종양인데...
세상일 참 모르겠어요.
이럴 때 참 무서워요.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그 무언가가.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 머.
그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
형 운전하는데 너무 방해했네요.
제가 말 정리 잘 해서 전달할게요.
고마워요.
그래, 또 보자.


 전화를 마무리하고 까페로 다시 들어왔다. 조카에게 전화를 걸려는 사장님께 하루만 말미를 달라고 했다. 정리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내 마음을.

 얼마 전 시골의 보건진료소장으로 근무 중인 예진 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예진 : 나 이번에 동네에 진짜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가 암 치료차 자주 오셨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마지막에 뵙고 오는데 아, 진짜 나 이거 어떻게 하나 싶은 게... 친한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른 분들을 어찌 봐야하나... 돌아가시면 어쩌나...

동완 : 전 살 거예요.

예진 : 에이 당연하지, 동완 쌤은 살아요. 나는 전부 동네에 할배 할매니까. 여기에 계속 있다 보면 이런 걸 피할 수 없겠구나 싶고...

동완 : 터미널 이었나 봐요.

터미널 : terminal, 말기 암 같은 치유의 가능성이 적은 상태를 의미

예진 : 네. 사실 아저씨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한 달 전쯤 ‘이제 많이 심해져서 자주 못 올 수 있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날 무슨 말인지 알아서 일하다 말고 구석에 들어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진짜 ‘나 이거 하기 싫어요.’ 하고 싶었음.

동완 : 예감하셨네요. 그 한 달이, 그 분에게 있어서 평온한 나날들이었기를...

예진 :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마음 단단히 먹게. 나도 울면 안 되니까.’ 이러고... 마음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그날 《럭키》도 같이 보고 왔어요.

동완 : 아, 그 때 그 영화 그분들이랑 간 거예요?

예진 : 아저씨 많이 아파졌다고 한 날에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소풍 갔어요. 잘 갔다 싶어요. 그러고는 바로 급격히 나빠졌거든요. 여름에는 같이 국수도 먹으러 다니고 그랬는데.

동완 : 잘했네요. 아저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거예요.

예진 : 그날 아저씨는 못 봤어요. 그냥 아주머니보고 놀다오라고, 간병 하느라 스트레스 많을 거라고 빠져주었어요. 기침이 자꾸 나와서 자신이 없었나 봐요.

동완 : 으, 아저씨에 절로 감정 이입이 되네요.

예진 : 암튼 아저씨 너무 좋아했는데...



 남이라면 남인 동네 진료소장과 환자 사이의 유대감으로도 상실의 아픔이 있을진대, 아들에게 아버지의 상실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전해야만 하는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말 한 마디의 무게가 주는 압박감만 느낄 뿐.


 교수님 생각이 났다. 나의 조직검사 결과지를 받아들고 부모님을 호출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표정으로 이야기 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다음 날 까페를 찾았다.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손님 안 받는다고 했어.
아, 그랬군요.
자꾸 미안하게 하네. 이제 전화해볼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아저씨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나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승현이 형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드님께 설명 드렸다. 그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판정을 듣고 얼마간 배회하던 나와는 상반된 그의 모습에 나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느꼈다. 전화를 끊고 폰을 돌려드렸다. 사장님이 물었다.


이야기 잘 했어?
네, 알려드리니까 이 이야기들을 본인에게 전해야 할지 말지를 궁금해 하네요.
그래서?
알긴 아셔야 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결국 본인도 느낌이 오거든요.
그때가 되면 너무 늦지 않나 싶네요.
스스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고.
그러다가 충격 받으면 어떡해?
형님 지금 많이 불안해하시던데.
흐음, 어렵네요.
제가 그 분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더더욱...
그래서 아드님에게 『내가 비록 암에 걸렸지만』 이 책을 추천했어요.
그거 아드님이 한 번 읽고 판단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고.
이 경우는 환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저보다는 가족의 의견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해서요.
혜성이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까?
양이 많기는 많죠.
그게 암 진단 처음 받았을 때부터 시작해서, 치료 중에 나타나는 여러 심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정리한 책이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이야기 들었을 때 소개해줄 걸 그랬어요.
아냐, 형님 눈 침침하고 못 봤을 거야.


 그러다 병원에 입원해있던 시절, 보았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아 맞다. 왜 이제 생각났지.
지금 형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까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게 제일 좋겠어요.
회진 도는 전공의나 아니면 당장 바로 간호사한테 이야기하면 연결해줄 거예요.
아마 정신과 교수라면 터미널 환자에 대한 경험이 많이 있을 거고,
그런 분이 직접 환자를 보고 심리상태를 파악하면 가장 적절한 방도가 나오지 않을까 보네요.
그런 것도 있어?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 침대 할아버지가 수술 후부터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맨날 우셨는데,
어느 날부터 정신과에서 직접 병실까지 찾아와서 상담하고 가더라구요.
혜성이한테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들었는데 사장님께 말씀 안 하셨거나, 아드님이 경황이 없으셨거나 그런 게 아닐까요?
아냐, 어제 이야기 좀 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어.
왜 그랬을까. 병원에서도 경황이 없었나.
아, 이 병원 진짜 못 미덥네.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올게.


 사장님은 바로 조카에게 전화해서 정신과에 의뢰해볼 것을 추천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꼭 이야기해야 하나?
그냥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할 수는 없을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본인이 어느 정도 느낄 거예요.
흔히 죽음의 5단계, 상실의 5단계 머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있어요.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면 1단계는 ‘부정’이에요.
지금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거부하는 거죠.
검사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여기 저기 다른 병원을 찾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행동하죠.
응, 그리고?
2단계는 ‘분노’에요.
 ‘왜 하필 나야?’ 하며 화를 내죠.

그리고 3단계는 ‘타협’.
 ‘내가 착하게 살 테니까 언제까지만 기다려 달라.’ 이렇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기부를 얼마큼 할 테니까 손자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까지만 살려 달라’ 이런 식으로.
응응, 그래 그래.
4단계는 ‘우울’이에요.
이래저래 타협도 해보고 그랬는데 계속 몸이 안 좋고 하니까 실망하고 우울해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5단계는 ‘수용’.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D-day를 준비하는 단계에요.
“체념 같은 건가?
 아뇨, 그거랑은 좀 달라요.
체념보다는 좀 고차원적인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게 항상 이 순서대로 진행되지는 않아요.
단계별로 올라가다가 다시 되돌아가기도 하고, 그 단계에서 멈춰있기도 하고, 한 단계 건너뛰기도 하고, 순서가 다르게 가기도 하고.
문제는 이 5단계까지 못 가고 D-day를 맞이하는 거예요.
사장님 말씀처럼 말 안하고 숨기고 있다가 본인이 스스로 느끼는 순간이 오면, 그때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그래도 환자든 보호자든 모두가 끝이 편안한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 김 닥 말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결국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려면 준비할 시간을 줘야한다는 거겠지.
그렇죠.
그런데 나는 형님이 충격 받고 막 우울해 하거나 해서 너무 힘들어 하고 그 날이 앞당겨질까봐 걱정하는 거야.
 김 닥처럼 잘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거든.
그러네요.
그럼 환자를 직접 본 정신과 의사가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기를 바랄 수밖에...
그래도 고마워. 김 닥터 덕분에 정신과 의뢰할 수 있었다.
혜성이 모르고 있더라.
아, 그리고 아드님도 상담 받으라고 해주세요.
본인도 본인이지만 가족도 큰 상실을 경험하거든요.
이래저래 후회되는 일도 막 생각날 거고.
정말 이런 일들이 굉장한 스트레스입니다.
그래, 그렇게 말 전해놓을게. 고마워. 김 닥.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게 불과 3일 전이었다. 3달 전까지만 해도 퇴직 후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사장님과 골프 라운딩을 돌던 분은 이제 세상에 없다.


 ‘하늘의 구름이 낮의 밝음을 가릴 수 없듯이 운명의 결정 앞에 인간의 힘이란 무의미한 것일까? 아니면 뜨거운 햇빛이 주는 고통을 가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운전대를 잡고 차 시동을 켰다. 그리고 비 내리는 거리를 향해 무작정 출발했다. 답답한 마음이 잦아들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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