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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an 04. 2018

똥 박물관 해우재

경기도 수원시

               

수원에 위치한 똥 박물관

'똥 박물관'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떠한 느낌을 받게 되나요? 저는 똥 박물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너무 궁금했습니다. 보통 똥이라고 하면 불결한 대상으로 여기는데 똥을 주제로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사실 살아가는 데 있어 똥은 건강을 측정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행복도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그만큼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보통은 꺼려하게 되는 똥을 주제로 한 박물관에 사람들이 과연 찾아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 의구심을 해결하고자 2월의 마지막 날 수원에 있는 해우재로 달려갔습니다.


똥 박물관은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 명칭을 빌려와 '근심을 푸는 집'이란 뜻으로 해우재라 부르고 있습니다. 똥 박물관 해우재를 세운 분은 과거 수원시장을 했던 심재덕이라는 분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집터에 해우재를 건립하고 무료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를 내린 분이기도 합니다.






변기모양의 해우재

심재덕이란 분은 1939년 생으로 외갓집 뒷간에서 태어났다고 어릴 적 이름이 개똥이였다고 합니다. 비록 화장실에서 태어났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부터 철강회사 회장과 문화원 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으로서 정치활동도 했지만, 특이한 것은 한국화장실협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화장실협회까지 만들게 됩니다.


심재덕이라는 분은 왜 화장실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짐작컨대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수원으로 유치하기 위한 과정에서 화장실에 주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깨끗하고 위생적인 화장실 만들기에 앞장섰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화장실들이 위생적이고 편리함을 갖추고 있지만, 2000년대 이전 화장실은 냄새나고 더러운 장소였습니다. 





화장실과 관련된 재미있는 조형물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저는 90년대 중반까지 실외에 마련된 화장실을 세 가구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화장실은 늘 가기 싫었던 장소였습니다.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면 쥐와 늘 마주쳐야 했습니다. 밤에는 빨간 전구로 밝혀진 화장실이 너무 무서워서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작은 것은 요강을 사용했지만, 큰 것이 급할 경우에는 형제 중 한 명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꼬셔서 같이 가야만 했습니다. 특히 겨울철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고욕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말하면 주위 사람들은 믿지 않으며 주워들은 이야기를 한다고 치부해버려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야외에 놀러 가는 경우 배가 아프면 정말 큰 곤혹이었습니다. 집 화장실은 야외에 있는 화장실에 비하면 양반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이동식 화장실들이 생겼지만,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심하고 불결했습니다. 근처에 유료로 운영되는 화장실이 있다면 돈을 내고서라도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키를 쓰고 소금을 얻어와야 했던 과거

그러나, 화장실에 대한 기억이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아련함과 재미있는 추억으로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밤에 화장실을 갈 경우 밖에 있는 형제는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용무를 보는 사람이나 기다려주는 사람이나 화장실이 주는 무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고육책이기도 했습니다. 잠시라도 노랫소리가 끊기게 되면 여지없이 화장실 안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울려 퍼져야 했습니다.


식사 시간 전에는 화장실을 가는 것이 금기시되기도 했습니다. 옷에 밴 똥냄새는 밥을 먹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화장실을 다녀온 본인은 냄새에 익숙해져 홀로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욕도 함께 먹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이 외에도 세 가구가 함께 쓰는 화장실이다 보니 동시에 사람이 몰리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동생과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 큰일을 함께 거나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해야 하는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화장실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그림움은 외할머니입니다. 어린 시절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경우 엄마에게 혼나는 말로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는 핀잔을 듣기 했지만, 실제로 가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달랐습니다. 헛간에 있던 키를 꺼내와 머리에 씌어주며 소금을 얻어오라고 대문 밖으로 저를 쫓아냈습니다.

어린 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어떤 누구도 제 눈과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을 피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모습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결국 입을 비죽 내민 얼굴로 알지도 못하는 옆집 문을 두들겼습니다. 옆집 아줌마는 소금 대신 혼만 내며 저를 쫓아버렸고, 너무 속상한 마음에 쪼그려 앉아 울면서 할머니를 많이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옛 추억으로 남아있는 어린 시절입니다. 무엇보다 어린 손주를 위해 나쁜 역할을 하셨던 외할머니가 그립기만 합니다.





차마 만질 수 없었던 조형물

여행을 하다 보면 제 설명을 아이들은 고리타분하다며 듣지 않는데 해우재에서는 똥과 관련된 추억들이 재미있는지 따라다닙니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늘 접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공통 관심사가 생겨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해우재에 있는 조형물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조형물에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흉내 내는 시간들이 행복이라는 단어로 되돌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유독 강렬한 여파를 남겼던 조형물은 똥을 싸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차마 만져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3초 이상 쳐다보기도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이 조형물을 만든 분은 아이를 키워본 분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아이가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아이를 부둥켜안고 함께 힘을 주어야 했습니다. 아이의 뒤로 똥이 나오는 지를 확인해야만 했기에 그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보기 싫으면서도 아이의 쾌변에 즐거워하는 내 모습에 부모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다니다가 문득 예전 엄마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배변훈련시켰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지금처럼 깨끗한 화장실이 아니 푸세식 화장실 시대에 어린 제 밑은 어떻게 닦아졌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님의 고생과 은공이 깃들여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대별 변기 변천사를 보여주는 조형물

해우재 한편에는 서양 변기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좌측부터 고대 로마 변기, 중세 유럽 변기, 현대 변기의 모습입니다. 과거 서구의 화장실 문화를 보면 우리보다 매우 열악하고 비위생적이었습니다. 특히 중세 시대 도시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지만 화장실이 발달하지 않아 유럽은 콜레라와 같은 각종 질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유럽은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화장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하지 않고 요강에 같이 배설했습니다. 서구인들은 요강을 비우기 위해서 먼 거리를 이동하기 싫어 창문을 통해 거리에 분뇨를 버렸습니다. 결국 유럽 도시 전역이 오물들로 가득해지자 사람들은 높은 굽을 가진 하이힐을 신고, 높은 모자나 망토로 옷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여성들이 입는 드레스도 급한 용무를 해결하기 위해 발달한 옷입니다.


결국 유럽은 분뇨로 사회적 문제가 극에 달하자 수세식 변기들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수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수세식 변기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수세식 변기가 제대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를 통해 막대한 부를 가질 수 있었던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가능해집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하수도를 만들고 나서야 깨끗한 환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조선을 방문했던 서구인들이 우리나라에 똥이 너무 많아 불결한 나라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서구인들이 하수도를 갖추고 수세식 변기를 사용한 시기가 우리와 크게 차이가 없었던 만큼 서구인들의 오만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식민지를 통한 착취로 얻어진 결과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맨 우측의 있는 변기는 샘이라는 작품을 모조한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변기의 모양이 위아래로 바뀌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샬 뒤샹이라는 사람의 작품으로 1917년 '앵데팡당전'에 출품했지만, 변기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며 거절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변기도 당당한 예술작품이 되고 있으니 많은 시대적 변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주도 화장실 통시

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주도 통시와 똥돼지입니다. 제주도에는 벼농사를 짓기 어려워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식량도 부족한 제주도에서 돼지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분을 먹이로 주는 것입니다. 또한  제주도에는 뱀이 많아 야외에서 볼일을 보는 경우 뱀에게 물릴 일이 많았습니다. 안전한 배변을 위해서 지상보다 높은 곳에 화장실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통시는 제주도에 가장 적합한 화장실이 되었습니다. 서구처럼 오물로 인한 병원균 창설로 사람의 목숨을 잃어버리던 것과는 달리 제주도 통시는 일거양득의 이익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분뇨는 돼지를 살찌우면서 더 이상 오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돼지들은 사람이 먹고 배출한 분뇨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입맛에 맞는 육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빼놓지 않고 먹는 것이 돼지고기입니다. 제주도의 통시와 똥돼지들이야 말로 선조들의 지혜로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입니다.


해우재에 있는 통시는 실제 들어가서 체험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통시에 쪼그려 앉는 체험활동을 시키셔도 좋습니다. 양변기를 주로 사용하는 오늘날 쪼그려 앉는 것이 어떠한 느낌인지를 아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것입니다. 단, 어른들은 체험하는 것을 자제시키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체험시키기 위해 제가 쪼그려 앉는 순간 여러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야 했습니다. 상당히 뻘쭘하고 낯부끄러우니 체험은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농사짓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똥지게

정화조 시설이 따로 없던 친할머니 집 화장실 옆에 똥통과 커다란 시비 더미가 있었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더럽고 냄새나는 공간에 불과했지만 농사를 던 할머니에게 있어 시비 더미는 매우 중요한 재산 중 하나였습니다.  이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제로 역사에 있어서 고려말 인분을 시비로 사용하면서 연작 상경이 가능해지기 시작합니다. 인분을 시비로 사용하기 전에는 땅을 일이 년을 묵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땅은 메말랐고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인분이 시비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레 은 오물에서 재산목록 1호로 변하며 사람들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점차 똥장군을 메고 다니며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상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똥장군에 있던 똥도 어느 집 뒷간에서 가져왔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졌습니다. 양반이나 지주의 집에서 나온 것이라면 상품이었지만 가난한 집에서 나온 것은 하품으로 값어치가 낮았습니다.


조선시대에 강남지역은 하천이 자주 범람하여 밭농사가 겨우 이루어질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짓기도 어려워 생활이 매우 곤궁하였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거름진 인분이 필요한데 이들은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서 똥을 구걸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강남에 살던 사람들은 결국 한강 이북에 살던 양반님들의 뒷간에 있던 인분을 얻어와야 했습니다. 이익을 좇는 것이 양반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던 한강 이북사람들은 후하게 인분을 퍼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당시 너무도 귀중했던 똥을 주는 것이 감사했던 강남 사람들은 한강을 넘어갈 때 맨손으로 가지 않고 땔감이라도 가져가거나 그 집 청소를 해주는 염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강남을 생각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호자를 통해 본 수준 높은 백제문화

해우재가 가진 가치 중 하나가 잊힌 백제문화의 복원입니다. 박물관 한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놓칠 수 있지만 백제 시대 변기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와 당에 의해 무력으로 망해버린 백제는 7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잃어버려야 했습니다. 신라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고 내용도 풍부했던 백제 문화가 사라진 것은 너무나도 큰 안타까움입니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잃어버린 하나가 호자입니다. 부여에서 발견된 호자는 3~4세기경 백제에서 청동이나 토기로 만들어진 변기로, 호랑이의 눈과 코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의 선진 문물로 받아들여져 백제 귀족과 승려들에게 사용되던 백제의 호자는 이후 자체 제작되어 보급되다가 통일 신라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백제 시대 여성용 변기

백제는 호자 외에도 여성을 위한 전용 변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여성 전용 변기는 앞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아 걸터앉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변기 양옆으로 손잡이가 있어 들고 이동하기 용이하게 했습니다. 변기를 들고 밭고랑에 붓기 쉽도록 끝을 뾰족하게 만다는 지혜도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선진국을 판단하는 척도 중의 하나가 화장실입니다. 화장실이 많고 청결할수록 선진국이며, 반대로 화장실이 부족하고 불결하다면 개발도상국이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문화로 백제를 보았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작은 나라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강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호자와 여성용 변기를 보면서 심재덕이란 분이 해우재를 만들면서 많은 노력과 준비를 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화장실 명칭 소개

박물관에 들어가도 볼거리와 배울 거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대한 몇 가지 명칭만 알던 저로서는 이렇게 많은 명칭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명칭에 대한 어원과 의미를 읽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화장실의 의미도 바뀌고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화장실이 삶을 높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육학을 배우던 시기 프로이트의 항문기를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네 조상님들이 배변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화장실 명칭에서 프로이트의 항문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내용이 화장실 명칭을 통해 명확해지는 신기한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배변활동에 큰 무리가 없다면 삶은 행복할 수 있지만, 변비나 대장암 등 질환이 발생하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어르신들의 말이 떠오르며 일상생활 속에서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화장실 표시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계 여러 나라의 화장실 표시였습니다. 나라마다 화장실을 알리는 그림에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반영한 모습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화장실을 알리는 그림을 보며 세계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습니다. 사회와 세계사를 가르치면서 얻은 얕은 지식을 동원하여 각국의 화장실을 표현하는 그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표현하는 그림이 만국 공통어처럼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동시에 다른 나라에 가면 남녀 화장실을 바꿔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아찔함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녀 화장실 구분과 함께 화장실의 다른 칸을 훔쳐보지 말라는 표시도 있었습니다. 한국을 관광하러 온 외국인들이 본다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만들어졌기에 더욱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해우재는 화장실의 외형적인 성장만이 아니라 의식도 성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삶의 질을 결정할 수 있는 화장실에 대한 책이나 공간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해우재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해우재 박물관은 화장실 명칭 외에도 재미있는 화장실 이야기로 가득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그린 똥

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아이들이 타일에 똥을 주제로 그려놓은 것을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벽면 한 가득 채운 그림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의 순수함과 기발한 상상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림 속 똥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나만 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진대 어떻게 아이들은 똥을 친숙하면서도 좋은 대상으로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해우재를 통해 생각이 변화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변기모양의 해우재 내부의 실제 크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듯 훑어보기만 한다면 볼거리가 적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내와 세계 각국의 화장실을 소개하고,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해우재를 방문한다면 꼼꼼히 자료를 읽어보고 아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눈여겨 봐준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우재 맞은편 작은 도서관과 체험놀이터

해우재 건너편에는 문화센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단, 모든 책은 똥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은 쉼터가 있어서 의자에 앉아 간단한 음식을 드실 수도 있습니다.  


2층에는 체험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던 똥과 관련된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여기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이곳에 방문한 아이들이 체험하며 좋아하는 모습과 부모님들의 웃는 모습에서 해우재는 분명 만족도가 높은 박물관입니다. 특히 변기 모양의 미끄럼틀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끊임없이 아이들이 줄을 섭니다. 해우재의 이런 모든 시설이 수원시에서 보조하고 있어 무료로 사용 가능하니 부모님들의 주머니도 가벼워져 더욱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린 눈으로 덮인 의왕시

해우재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의왕시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눈을 봤습니다. 2월 28일 내 주변이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봤습니다. 여기가 의왕시가 아닌 강원도로 착각할 정도로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만났습니다. 따스한 백숙을 먹으며 설경을 보고 하루를 정리하는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해우재에서 아이들은 재미있는 체험놀이를 하면서 즐거웠고, 저는 화장실과 관련된 이야기로 자녀와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시설부터 모든 활동이 무료라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과거의 추억 속에서 어린 시절의 저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어 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2월 마지막 날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서 행복만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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