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글을 쓰면서 세운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논쟁을 키울 수 있는 현안은 다루지 말자.>
가장 큰 이유는 역사는 개인이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역사적 사실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 정반대의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지금은 옳을 수도 있지만, 훗날에는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변치 않는 사실도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등 친일파를 좋게 포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완용은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후대에 이완용처럼 행동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주면, 누가 올바른 길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독립운동가들의 평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희생을 넘어 가족들의 희생을 알면서도 더 많은 동포를 위해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칭송받을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 역사에 남겨야 합니다.
혹시라도 또다시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닥치더라도 많은 후손이 자신의 노력이 값진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옳은 일을 할 테니까요.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지 못합니다.
힘들게 조금씩 올바른 역사를 쌓아 올리면, 누군가 그 오랜 노력이 헛되게 허물어버립니다.
이번 정부가 하는 여러 정책은 후대가 평가할 것입니다.
제가 평가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긍심을 무너뜨리고, 민족을 분열시키는 역사를 새겨넣는 행위만큼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독도 문제, 일본해... 참으로 입에 담기도 싫습니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과 업적을 이념 논쟁으로 평가절하하며 부정한다고요.
이게 옳은 일인가요?
일제강점기 우리의 독립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 영국 등 세계열강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도록 도와주고 승인해주었으니까요.
그때 독립운동가에게 희망으로 등장한 것이 소련이었습니다.
물론 소련이 우리를 위해서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었습니다.
소련은 우리의 독립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라고 강요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립이 되면 사회주의 국가가 되라고 강요했고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상황에서 소련이 제공하는 돈과 무기 공급은 독립운동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자가 되어 독립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사회주의가 옳지 않다고 여기는 독립운동가들도 독립을 위한 다른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1920년대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하나가 되어 신간회가 만들어졌고, 만주에서는 민족유일당 운동의 하나로 3부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1930~40년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던 조선혁명군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포용하여 한국독립군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독립군은 영국군과 함께 일제에 맞서 싸웠고, 미국의 OSS와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사회주의자라는 꼬리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우선 순위이면서 중요한 것은 독립이었습니다.
홍범도 장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포수가 되었습니다.
일제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포수들의 화약 소지에 제재를 가하자, 홍범도 장군은 살기 위해 맞섭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만이 아닌 일제의 침략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 동포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습니다.
뛰어난 전술과 용맹함으로 갑산을 장악하는 등 국내에 독립군을 파견하여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방해했습니다.
일제는 홍범도 장군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가, 유인작전에 걸려 봉오동에 큰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이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더 많은 군대를 파병했지만, 홍범도와 김좌진 등이 이끄는 독립 연합부대에 더 큰 패배를 당하게 되죠.
이것을 우리는 청산리대첩이라고 합니다.
홍범도는 이후 일본군이 간도에 사는 한국인을 학살하자, 만주의 모든 독립군 부대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서 일제에 맞서기 위해 대한독립군단의 부총재가 되어 러시아 자유시로 향합니다.
그러나 소련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독립군이 희생당하는 자유시 참변을 겪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횡포에 홍범도 장군은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계속 펼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련의 협조를 다시 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도와주는 국가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연해주에서 집단농장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시 한번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1년도에도 홍범도 장군은 참전하여 독립을 이루고자 했지만, 고령이라는 이유로 소련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던 홍범도 장군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습니다.
어쩌면 홍범도 장군은 사회주의가 제일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번번이 자신의 독립운동을 가로막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나라 잃은 서글픈 민족이 독립을 이루려면 지구상 어딘가에 발 디딜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장소 중 하나가 소련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사회주의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없앤다.
우리는 과거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원봉 선생이 있습니다.
과거 사회주의자였다고, 친일파 순사 노덕술에게 온갖 치욕을 당하고 사회주의 국가 북한으로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 동안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자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사회주의 북한에 맞서 자유와 평화를 지켰다고 호도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일들이 묻히고,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많은 것을 양보해서 이들의 노력으로 자유와 평화가 지켜졌다고 인정합시다.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 아니니까요.
전쟁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념을 내세워 독립운동가를 부정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21세기인 지금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이념을 이야기하는 나라가 없는 21세기에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분단국가이니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단이 이념 때문에 지금도 지속되고 있나요?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제 말을 부정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청년이 이념을 이야기하나요?
40대인 저의 경우에도 이념에 대해 하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념 알고 싶지도 않고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왜 이념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이념이라는 말만 나와도 지겹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이 만들어놓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만들어놓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경제성장 토대 위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통일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낫다. 사회주의는 악이다.”
이런 말이 6.25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통할 거라고 믿나요?
권력을 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념을 들고나오는 것은 어르신들의 아픔을 이용하여 정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깍아내리는 것을 올바르다고 할 수 있나요?
우리는 일본에게 제대로 사과받지도 못했는데,
우리가 고개를 먼저 숙이고,
일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 살펴 내어주고,
그들도 잘못된 일이라고 하는 일을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먼저 나서서 대변해주는
지금의 모습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국가는 어떨까요?
어느 국가가 이런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겠습니까?
짧은 영욕을 위해 지금의 젊은 세대와 후손들에게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 그들의 행태에...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의 행보가 수십 또는 수백 년 이상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