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지식」「공간」의 여백이 있는 콘텐츠
「시간」,「지식」,「공간」의 여백이 있는 콘텐츠
1990~2000년대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검색엔진(search engine)이라 불리는, 포털 사이트의 전쟁이 치열했다. 구글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전 닷컴 버블 시대까지는 야후,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MSN이 수 억 개의 달하는 홈페이지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등이 문자, 사진 기반의 소셜미디어 시대가 되었고, 유튜브는 동영상 중심의 소셜미디어 시대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유튜브는 주요 포털사이트, 페이스북 보다 사용빈도와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태어나 자라면서 스마트폰이 생활의 중심이었다. 스마트폰 속의 유튜브는 소통의 도구, 콘텐츠 제작소이며 이것을 서로 공유하는 생활 플랫폼이었다.
오늘날 유튜브가 압도적인 영향력과 지위를 가지게 되었을까? 앨빈 토플러는 그의 유작이 된 ‘부의 미래’에서 미래의 혁명적인 부는 ‘지식’, ‘시간’, ‘공간’을 선점하는 사람(회사, 국가)이 창출하게 될 것이며 보이지 않는 깊은 심층기반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바 있다. 유튜브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시간의 중심, 지식의 중심, 공간의 중심이 되었고 나아가 연결의 중심이 되었다. 유튜브는 넷플릭스의 스트림형 비디오 서비스처럼 영상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서비스 하지 않는다. 사용자에게 지식을 재구성 하고 편집해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편의만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전 세계 영상 콘텐츠의 수와 규모는 유튜브를 능가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의 콘텐츠는 생산 주체인 회사들이 독자 또는 소비자에게 누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가가 중요했기에 속도, 시간이 중요했다. 이 과정에 불필요한 정보 역시 재생산, 재활용되기도 해 정보의 질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또한 독자나 소비자는 잘 모른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계몽, 설득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콘텐츠에 의도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강박처럼 작용했고, 현재의 중장년층은 대개 콘텐츠의 가치를 그렇게 이해한다. ‘자신의 기획 의도가 반드시 담겨야 한다거나’,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어떤 한방이 있거나 없거나’ 말이다.
인터넷이 시작되어 뉴 미디어의 시대가 된 현 시대에, 화두는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의 식별이다.
가짜 콘텐츠가 너무나 정교해져 있어서 진짜 콘텐츠의 판별이 불가능에 가깝거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왜 그런것일까? 가짜 콘텐츠 일수록 정교하고 세밀하게 기획된 메시지가 의도적으로 심겨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찾기 하는 콘텐츠를 음식, 여행, 옷, 뷰티, 첨단IT기기, 예술, 스포츠, 개그, 감동을 주는 콘텐츠가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고 사랑 받는다. 이러한 콘텐츠의 특징은 플레스(FLEX)로 이며, 특별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사용자가 알아서 취사, 선택할 뿐이다. 굳이 의도라면 그렇게 되기를 바래서 만든 콘텐츠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런 콘텐츠 사례로서 대표적이며 독보적인 것이 펭수이다. 사람이 아니며, 외형 역시 성인도 아이도 아닌 어디 중간쯤인데 의식의 흐름은 아이와 성인을 오간다. 그러네 사람들이 펭수의 말과 제스쳐에 열광한다. 펭수에는 특별한 기획의도가 담겨있지 않다. EBS 김명중 사장이 펭수TV가 1만 명 구독자가 되었을 때, “지금부터 이슬예나 PD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은 펭수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구조화된 메시지에 익숙한 늙다리 청년, 중장년층들의 아이디어가 오히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방해나 장애요소가 될 것이라 보았을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다양한 모습의 기획자들을 만나보면 대개 I message (자신 중심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 메시지란 자신의 감정, 기준, 지식, 경험 그리고 축적된 레퍼런스들이다. 내가 I message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나를 빼놓고 보면 된다. 내가 중심인가 아닌가 이다. ‘내가 못 다한 말이 항상 많다거나’, ‘상대를 지적하고 고쳐줘야 할 부분이 잘 보인다거나’, ‘상대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많다거나’, ‘팀원이나 동료에게 맡긴다는 것이 왠지 불편하고 찜찜하다거나’ 말이다. 다시 말해 ‘나의 말에 반응하는 상대의 말과 행동만을 유심히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면 틀림없이 I message의 사람이다.
I message의 사람들은 타인들을 섬기고 세우는 방식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오를 무대가 한정되어 있기에 잠재력 있는 그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길을 열어주거나, 때로는 자기 대신 무대에 세우고 응원하고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I message의 사람은 세상을, 비즈니스를 경쟁으로 이해한다. 취득할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하거나 공간을 내어주거나, 시간을 할애 하거나 여백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선택 받고 사랑 받는 콘텐츠는 지식, 시간, 공간의 세 축의 여백에서 나온다. 그 누군가에게 지식, 시간, 공간을 그 어느 한 요소라도 빠짐없이 내어줄수 있다면, 진정 사랑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이다. 그 어느 한 요소라도 결핍이 있다면 생명력 있는 콘텐츠, 사용자(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세 요소 중 하나 이상 결핍된 상태에서, 무리해서 어떻게야 잠시 주목받는 콘텐츠를 만들기는 하겠지만 유통기간, 유효기간이 매우 짧을 것이다.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글, 영감을 주는 그림, 마음의 쉼과 힘을 주는 음악, 생을 변화시키는 스피치, 사람에게 메임 없는 자유를 주는 원칙, 제도는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사랑받는다. 강력한 콘텐츠를 만드는 주재료는 지식, 시간, 공간이다. 이것을 연결시켜 에너지로 자원화하기 위해 정교한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것을 큐레이션이라 한다. 좋은 콘텐츠는 큐레이션 과정에서 나온다. 큐레이터는 이 점에서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의 기획자이여 연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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