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정권의 복귀한 '반성'
2025년 8월 15일, 일본에서는 정부 주최의 전후 80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이 열렸다.
이 전국 전몰자 추도식은 제2차 세계대전(주로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일본인 전몰자를 추도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행사로, 1952년부터 시작되었다. 첫 추도식은 1952년 신주쿠 교엔에서 열렸으며, 이후 매년 열린 것은 아니었다. 제2회는 1959년 도쿄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 제3회는 1963년 도쿄 히비야 공회당, 제4회는 1964년 야스쿠니 신사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1965년부터는 야스쿠니 신사 근처의 일본무도관에서 정례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추도식은 어디까지나 약 310만 명의 ‘일본인’ 전몰자(군인 230만 명, 민간인 80만 명)를 대상으로 한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 조선·대만과 같은 식민지, 그리고 미국·영국 등 교전국의 군인과 민간인은 추도의 대상이 아니다.
1952년 첫 추도식의 각의 결정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평화조약의 발효에 따른 독립에 즈음하여, 국가 차원에서 전몰자를 추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식전을 실시한다.
1. 정부 주최로, 5월 2일 신주쿠 교엔에서, 양 폐하(상왕 부부)의 임석 하에, 전국 전몰자 추도식을 거행한다. 2. 본 식전의 전몰자 범위는, 지나 사변〔역주-중일전쟁〕 이후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전쟁 재해 사망자 등을 포함하며, 군인·군무원에 한정하지 않음)로 한다.
3. 본 식전은 종교적 의식을 동반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4. 본 식전 중 일정한 시각에, 전 국민이 일제히 묵념하도록 권장한다.
5 . 본 식전에는 전국에서 유족 대표를 참석시킨다.
또한, 참석에 필요한 경비에 대해 일정액의 여비를 국가에서 보조한다.
(출처 : 일본국회도서관 리서치내비 https://ndlsearch.ndl.go.jp/rnavi/db/cabinet/s27_29/bib01125)
여기서 알 수 있듯, 전몰자의 범위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의 사망자로 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1931년 만주사변이나 1932년 상하이사변 등에서 전사한 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자국민 전몰자’라는 범위조차 생각보다 좁은 셈이다. 참고로 이 310만 명 안에는 약 5만 명의 조선인·대만인 식민지 전몰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후의 추도식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의 식사(式辞) 발언이었다. 그는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을 언급하며, 처음으로 아시아 전쟁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후 1994년부터 총리 식사에는 아시아에 대한 가해 사실을 반드시 언급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3년 아베 신조 총리의 식사부터 이러한 언급은 사라졌다. 우익 정치인으로 알려진 아베는 전임 총리들이 이어오던 ‘가해 책임’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아베 신조의 '담화' 발언 비판에 대해서는 야마다 아키라山田朗 외, 『검증 아베담화 ~전후70년 무라야마 담화의 역사적 의의』, 아카시쇼텐, 2015년(일본어판)을 참조). 다만 당시에는 ‘역사에 대한 반성’과 같은 간접적인 표현이 남아 있었으나, 2020년 식사부터는 그것마저 사라졌다. 이후 2021년 스가 요시히데 총리菅義偉, 2022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역시 아베의 식사를 답습하여 아시아 가해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후 우리나라 〔역주- 일본, 이후 중략〕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힘써왔다”는 표현은 부활했다. 전몰자 추도식에서 총리의 식사가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점을 고려할 때,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에서 나타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2024년 출범한 이시바 정권이 맞이한 2025년 전후 80년 전몰자 추도식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다음은 이시바 총리의 식사 일부이다.
지난 대전쟁으로부터 8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대다수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참화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나아갈 길을 두 번 다시 잘못 들지 않겠습니다. 그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지금 다시금 깊이 가슴에 새겨야만 합니다.
동시에 이 80년간, 우리나라는 일관되게 평화 국가로서 걸어왔으며,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써 왔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비통한 전쟁의 기억과 불전에 대한 결연한 맹세를 세대를 넘어 계승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행동을 관철해 나갈 것입니다. 여전히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분단을 배척하고 관용을 북돋으며, 지금을 살아가는 세대와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겠습니다.
출처: 수상관저 홈페이지 https://www.kantei.go.jp/jp/103/statement/2025/0815shikiji.html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2013년 이후 사라졌던 ‘반성’이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다. NHK의 보도에따르면, 15일 밤 이시바 총리가 총리대신 관저에서 기자단에게 "모든 전몰자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지난 대전쟁으로부터 80년이 경과하고,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다시 한번 비통한 전쟁의 기억을 세대를 넘어 계승하고, 전쟁의 참화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써 나갈 것이라는 취지로 식사를 말했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반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반성 위에 교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일체이다. 지금까지의 정부 견해, 생각과 다를 바 없으며, 그러한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 반성과 교훈을 다시금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NHK 2025년 8월 15일 보도, https://www3.nhk.or.jp/news/html/20250815/k10014894831000.html)
이는 2012년 이후 처음 나온 ‘반성’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1993년 호소카와 총리의 식사나,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과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비롯한 일본의 침략전쟁 피해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지난 전쟁’을 계승하고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단순히 식사에서의 언급만이 아니라 역사 교육과 외교적 실천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아베·스가·기시다 정권에서는 보이지 않던 ‘반성’ 발언이 다시 나온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이지만, 앞으로는 이에 걸맞은 진정성 있는 움직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