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해도 귀찮은 것
친구와 나는 8~9월 사이 항상 여행을 같이 가는 편이다. 연례행사가 된 지 3년이 됐다. 우리는 내일 홍콩으로 떠난다. 짐 싸기는 언제나 힘들다. 하지만 이젠 각종 출장과 여러 번의 여행으로 단련돼 능숙하긴 하다. 이번엔 짐 챙기는 데 1시간 반 정도 투자했다. 옷을 고르고 가방에 쑤셔 넣는 게 일이다. 나는 캐리어를 안 들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평소 들고 다니는 노트북 가방 안에 모든 것을 넣어야 한다. 에버노트에 정리된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서 빠르게 짐을 챙긴다. 리스트에 너무 많은 아이템이 들어가 있다. 이번 여행 다녀와서 체크리스트 수정 작업을 해야겠다.
항상 무엇을 더 갖고 갈지 보다 뺄지가 고민이다. 특히 전자기기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노트북을 갖고 가면 편하다. 대만에 갔을 땐 지금은 동생에게 준 LG 16년형 그램을 들고 갔고 급한 회사 업무를 즉시 처리했다. 그리고 다음 여행 스케줄도 빠르게 짤 수 있었다. 무소유를 실천하기 힘든 평소의 생활에서 무소유의 정신이 최대한 발휘되는 순간이 여행 준비할 때이다. 이번엔 밤에 입고 잘 바지도 뺐다. 까먹은 것인지 일부러 뺀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여행 가기 전날 항상 늦게 자는 습관이 있다. 대학생 때부터 이런 습관이 들어서 3~4시간 자고 떠나는 여행이 익숙하고 언제나 피곤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심지어 퇴근하고 바로 여행을 가는 스케줄이다. 악마 같은 스케줄이라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짐을 최대한 빠르게 챙기고 블로그 포스팅을 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올라갈 예약 포스팅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1시 정도에 잤다.
아침이 됐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출근하긴 하지만 예비 여행자이므로 옷도 머리도 신경을 쓰고 나가고 싶다. 6시 반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세팅을 한다. 7시 정도에 모든 걸 끝내고 마지막 정리를 했다. 항상 숙소를 나서거나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 순간엔 여권과 환전한 돈만 확인한다. 나머지는 가서 사도 되고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물건일 것이다. 그러고는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여행 가서 쓰라고 하사하신 10만 원은 환전할 시간이 없기에 한국에서 쓰기로 하고 놔두고 왔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6.5kg의 가방을 등에 메고 (너무 무거워서 회사에 있는 휴대용 계측기로 재봤다), 줄무늬 셔츠를 입고 짧은 슬랙스와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향했다. 일상적인 출근길과 다를 바 없었지만 여행 갈 생각에 평소와는 다른 들뜬 느낌이었다. 일상의 비 일상화라고 해야 할까? 9시간 정도만 버티면 떠난다는 기대감이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버스가 밀린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은 초조했다. 여행 날이니까 조금 늦게 가도 되지 않겠나 생각했으나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이 홍콩 여행 이후로 친구와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회사에서는 떠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친구도 회사 생활에 바빠서 여유가 없다. 연례행사가 될 줄 알았던, 우리의 여행은 홍콩 여행이 마지막이 되고 있다. 이번 겨울에 어디론가 같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와 보낼 시간은 우리가 나이 들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와 함께했던 이 여행기는 소중하다. 1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자취를 시작했고, 공항에선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으나 정작 공항에 간 적은 중국 출장 간 것 말곤 없다. 그리고 중국 출장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나는 동생에게 준 그램 대신에 2017년형 신형 그램을 손에 넣었다. 왠지 내가 새로운 노트북을 사기 위해서 동생에게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막상 새로 산 노트북의 사용 빈도는 정말 떨어진다. 집필 활동을 열심히 할 줄 알고 샀던 노트북은 싱글 태스킹이 가능한 아이패드에 순위가 밀려있고, 휴대성에서도 밀렸다. 주로 도서관에 갈 때 아이패드를 갖고 가서 키보드 케이스로 타이핑을 친다. 그래도 마무리 퇴고는 그 노트북으로 하고 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1년 동안 묵혀놨던 이 글을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지원하기 위해서 다시 꺼내봤다. 미뤄놨던 일을 느지막하지만 시작하게 해준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감사한다. 언젠가 할 일을, 바로 해야 할 일로 바꿔주는 마감의 힘을 느끼고 있다. 북 프로젝트에 붙든 붙지 않든 나는 이 여행기로 책을 낼 생각이었다. 나의 여행기와 그에 대한 생각이 하나의 온전한 책이라는 형태로 추억될 수 있기를 바라며 홍콩 여행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