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연재 컨셉
회사에 다니면서도 누구보다 회사를 싫어하는 이들을 위해 처방전을 적어보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도움이 되면 좋다'는 소소한 인생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대한민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겪었고, 겪고, 겪어야 할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회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에 대한 처방전이 필요했다. 셀프 처방전과 그 효과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우선 나의 지난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서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1.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인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20대 중후반에 맞닥뜨리는 과제가 있다. 바로 취업이다. 졸업이라는 단어가 가까워지며 취업이라는 관문은 인생에서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제로 자리잡는다. 나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인지라 남들이 다 맞이하는 이 과제를 대학교 4학년 중반부터 대면했다. 취업스터디를 시작하고, 매일 아침 진행하는 영어회화 스터디도 시작했다. 모두 취업을 위한 활동이었다.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목표에 충실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일상을 보냈다.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나서 졸린 눈으로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학교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스터디 준비를 한다. 그리고 도서관 좌석 배정 서비스가 오픈될 때 내가 좋아하는 노트북 열람실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줄을 선다. 도서관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고정석의 특권을 누리며 나는 대학교 마지막 1년을 보냈다. 자리를 잡아놓고 회화 스터디에 참석한다.
그리고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면서 도서관에서 집필 활동을 했다.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설과 비슷한 자소설이다. 아직도 내 에버노트엔 취업 준비시절에 적었던 자소서가 쌓여있다. 지금 돌아보면 일에 대해서 회사의 요구사항이 뭔지 모르고 적었다. 회사에서 실무에 필요한 스킬에 대한 묘사는 없고, 두루뭉술한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나를 보면 이때 회사에서 나를 뽑아준 건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약 100개의 자소서를 쓰고, 5번의 면접을 보고 나서,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왔다. 합격할 당시, 너무나도 기뻤고 이제 끝났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며칠 주어지지 않았던 입사 전 기간은 우리가 보내는 주말처럼 흘러갔고 나는 회사에 들어갔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청춘시대2>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취업한 윤진명(한예리 분)에 대한 묘사처럼 나는 살아남았다. 취업시장에서는 살아남았으나 회사 안에서는 또 다른 생존의 장이 펼쳐진다.
2. 회사에게 소비당하다
수많은 시간과 청춘을 취업준비에 바쳐 힘들게 들어온 회사에서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생각은 많지만 깊게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회사에 대한 별다른 성찰 없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했다. 회사가 맘에 드는 점은 살던 집에서 떠나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거리, 회사의 적당한 인지도, 적당한 퇴근 시간 정도였다. 적당했으니 적당하게 다니고 있다고 느낀다.
적당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고 나선 맘에 안 드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의 빈도와 강도는 더 잦아지고 강해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나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연한 나는 회사에게 소비 당하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공간인데 여기서 하는 일이 행복하지 않고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런저런 불만을 서로 말하다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말하던 선배가 생각난다. 절이 싫어서 떠나고 싶어도 먹고 살기 막막한 중은 절을 떠날 수 없다. 나는 쥐고 있는 권리와 혜택을 놓을 용기까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니 회사에게 소비 당하는 삶을 살았다.
소비당하는 사례를 예로 들면 끊임없이 나온다. 나의 의지가 아닌 직급으로 휘둘리는 수없이 많은 도장이 찍히는 결재 전결기준, 전결 기준을 타고 흘러가는 수많은 보고서, 그리고 쓸 데 없는 일로 보이는 관리 포인트,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날려버리는 각종 경조사, 관계에서 오는 감정소비, 보이지 않는 수많은 불문율 등이 나를 옥죄여왔다. 나는 그러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회사에게 그냥 소비가 아닌 과소비 당하고 있었다.
3. 살아남을 방법을 찾다
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직도 생각 해봤지만, 기나긴 프로젝트에 매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나에겐 없었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의지가 약한 평범한 인간이라 회사가 주는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 있기도 했고, 회사가 주는 복지에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이렇게 불만은 있지만 행동을 취할 에너지가 없는 이율배반적인 생활이 지속될수록 자아는 방황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방법을 찾아야했고,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방안을 강구해야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마트 워크 전문가 홍순성 소장님의 워크플로위 강의에 참여하게 됐다. 참고로 나는 취업하기 전부터 에버노트나 각종 생산성 어플이나 프로그램을 해당 분야에 지금도 관심이 많다. 강의 중, 자신이 쓰고 싶은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해보는 세션이 있었다. 여기에서 '회사를 쓰다(적는다)'라는 아이디어에서 '회사를 소비하다'라는 컨셉으로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나왔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이 아이디어로 글은 적지 않고 묵혀놓고 있었다. 그러다 1년 정도 지난 뒤, 다시 인연이 되어 워크플로위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한 목록형 책쓰기 코칭을 받게 됐다. 책을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쌓여있던 생각과 메모, 그리고 경험을 하나씩 들추어내보기 시작했다. 회사를 어떻게 잘 소비할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이 글은 책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됐다. 언젠가 부터인진 모르나 내 삶의 이유는 기록이 됐고, 책을 써서 작가로 살고 싶었다. 내 꿈을 향한 첫 발걸음은 지난했고, 지난하고, 지난할 회사 생활을 돌아보는 행위로 이어진다. 한 문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머릿속에서 '회사를 소비하다'는 문장은 다른 생각들과 경험과 함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점점 숙성돼 갔다.
나는 입사하기 전부터 독서나 강의, 그리고 영화를 좋아했다. 이런 문화 컨텐츠를 일상화하다보니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런 컨텐츠처럼 보는 시선을 가져보면 좋겠다' 어느날 문득 생각했다. 회사에 다니는 불만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나만큼 문화생활을 즐기고 잘 소비하고, 이 경험을 글로 적을 수 있는 사람도 없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하나의 콘텐츠로 보려는 시도와 그 시도를 글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를 들어보면, 호불호의 판단 기준은 개인 취향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최고의 영화가 누군가에겐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다. 망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제외하고 나면, 나쁘고 좋은 영화를 가리는 판단의 기준은 개인 취향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를 접할 때 꼭 기쁘고, 행복하고, 유쾌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고 컨텐츠를 감상한다.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담고 있고, 우리 자신도 인생이 그러하다고 생각하니 관념에서 벗어나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 생활이 꼭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배우 박신양이 <스타특강 SHOW>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박신양이 러시아 유학시절 교수님에게서 받은 시집에 '왜 당신의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 인생은 힘들 수도 있고, 실제로도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힘든 삶에서 안 힘든척하고 안 힘들려고 하니 더 힘들거라 예상된다.
우리가 다양한 컨텐츠에서, 삶에서 겪는 어려움 속에서 의미를 찾고 성장하듯 회사도 이런 시선으로 본다면 삶을 담고 있고 배울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회사에서 다가오는 다양한 모든 경험에서 배울 게 있었다. 내가 자소서에 문장으로만 적었던 '저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웁니다'라는 말을 실천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경험 자체를 나 자신이 필터링하지 않으니 그 경험 모두가 온전하게 다가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 왕의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언젠가는 과거의 추억이나 나 자신의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이 책은 이렇게 경험에 대한 필터링 없는 삶에 대한 연습이다. 그리고 그 연습을 통해 얻는 배움에 대한 책이다. 그 배움은 자아를 찾는 시도로 연결된다. 그리고 배움과 자아성찰의 연습장소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가 된다.
4. 앞으로 나눌 이야기
이런 시선을 갖고 살아갈 때, 회사라는 공간에서 소비할 수 있는 수많은 컨텐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고유함을 지니지만 삶이 흘러가는 흐름이나 겪는 일의 형태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공통적일 수 있다.
첫번째 파트는 사람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나도 사람이고 회사에서도 1인 기업가가 아니라면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내가 겪었던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사람이 있듯 회사를 둘러봐도 하나같이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의 컨텐츠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이병헌, 송강호, 정우성이 열연했던 만주에서 석유를 찾아 떠나는 한국형 서부 영화 <놈놈놈>에서 아이디어를 따와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구분해서 내가 겪은 사람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두번째 파트는 업무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주어진 일을 완수하면서 돈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의 직무를 보고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다양한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삶에서 회사보다 단기간에 문제가 생기고 해결되는 곳은 없다. 우리가 대출 신청을 하지도 않았지만, 회사라는 문제 은행은 우리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대출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적절한 시간 내에 그 문제를 해결해서 회사라는 문제 은행에 다시 갚아야 한다. 이런 문제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생산성 도구, 그리고 우리가 업무를 대할 때 취하면 좋을 태도에 대해서도 알아볼 예정이다.
세번째 파트는 회사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시스템으로서의 회사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매달, 매분기, 매년 진행하는 마감에 대해서 살펴본다. 그리고 회사가 생존하는 방식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문제를 발견하고 피드백하면서 생존을 넘어 성장하는지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무기적인 조직의 유기적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고 거기서 어떤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지 다뤄볼 예정이다.
마무리
이렇게 사람, 업무, 시스템에 대해서 살펴본 후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회사는 우리에게 돈을 쥐어주고 일을 하라고 한다. 그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우리는 힘들어하고, 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수동적인 관점을 조금 바꿔서 보면 우리는 능동적으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일을 능동적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은 현재 시키는 일로도 충분하니 더 하려고 하시진 않아도 된다. 시선의 수동성과 능동성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 내 경험을 기반으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의미, 배울 점을 보면서 한 발짝씩 나아갈 예정이다. 긴 여정의 끝에서 회사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 분들이 배우고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판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