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미국 현지 회사와의 온사이트 인터뷰 일정이 잡힌 후, 다행히 몇 군데 다른 회사에서도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현지에서 최대한 인터뷰를 몰아서 볼 수 있도록 리쿠르터들과 일정을 조율한 뒤, 적당한 핑계로 회사에 일주일간의 휴가를 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비장한 마음으로 몸을 실었다.
11시간이 넘게 걸리는 비행시간 동안 나는 긴장된 마음에 거의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가는 내내 포트폴리오 발표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첫 회사와의 인터뷰는 도착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약속한 시간에 회사의 로비에 들어서니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바로 지난 몇 주간 나와 화상통화로 대화를 나누던 현지의 리쿠르터였다.
‘와! 키 정말 크다.’
실제로 만난 그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체형과 큰 키, 그리고 매우 긴 다리의 소유자였다.
그 첫 인터뷰를 앞둔 긴장된 순간에도 나는 그의 큰 키와 긴 다리를 보며
‘저렇게 긴 기장의 바지는 도대체 어디서 사 입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때문인지 긴장이 조금 풀어진 것도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첫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인터뷰는 총 4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포트폴리오 리뷰, 실무 디자이너, PM, 그리고 개발 담당 매니저 와의 개별 인터뷰가 각각 1시간씩 주어졌다.
처음엔 이걸 어떻게 다 해낼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상대방은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상대방은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과연 그는 내 어눌한 영어를 진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예의상 끄덕여 주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인터뷰의 마지막 세션까지 마치고 난 뒤 그 롱다리 리쿠르터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는 내게 수고했다며 최종 결과를 3일 안에 이메일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와 인사한 뒤 회사 건물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캘리포니아의 여름 하늘.
그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빛이 살갗에 닿는 감촉은
마치 내게 오늘 먼 길까지 와서 인터뷰 보느라 수고 많았다고 쓰다듬어주는 손길과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래, 좋은 경험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일단은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먼 미국까지 날아와서 인터뷰를 본 것이다.
상상만 해 왔던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다니.
게다가 첫 온사이트 인터뷰였는데도 생각보다는 그리 떨지 않고 잘한 것 같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감을 익혔다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걸 토대로 다음 회사와의 인터뷰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왕이면 이 첫 번째 회사에 붙었으면 좋겠지만…
나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 위에 바로 쓰러졌다.
첫 인터뷰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진 탓이었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10시간이 넘는 깊은 잠을 다음날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 맑고 파랬다.
나는 구글맵을 통해 숙소 근처에 있는 마음에 드는 도서관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치 고3 수험생이 된 듯 그곳에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인터뷰 준비를 했다.
아내는 카톡으로 힘내라며 어린 두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는 장난기 가득한 두 아이들의 모습.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 이 인터뷰들을 모두 마치고 나면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오자.’
그런 마음으로 첫 인터뷰를 본 지 정확히 3일째 되던 날,
그 롱다리 리쿠르터에게서 메일이 왔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그의 메일.
아쉽게도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그렇구나. 떨어졌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첫 인터뷰였기 때문에 이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직 몇 개의 인터뷰들이 더 남아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러던 와중에 별도로 동시에 진행 중이던 다른 회사의 온사이트 인터뷰가 새로 잡혔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다만 회사의 위치가 시애틀이었다.
지금 내게 위치가 무슨 상관인가.
내게 온사이트 인터뷰의 기회가 계속 주어 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내가 처음 미국에 진출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부터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붙을지 떨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애틀이라는 곳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이니 이 참에 한번 보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 통화하며 이야기했다.
“여보, 나 여기서 계획보다 며칠 더 있다 가야 할 것 같아. 시애틀에서도 온사이트 인터뷰가 잡혔어요.”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아빠의 일정이 조금 더 길어진다는 소리에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럼 아빠, 대신 올 때 꼭 선물 사 와야 돼!”
“그럼, 당연하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첫 인터뷰를 본 회사의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날 저녁 내 머릿속에는
며칠 후 추가로 볼 두 회사들의 온사이트 인터뷰에 대한 준비와
시애틀이라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