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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n 20. 2024

거창한 변명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남기는 글.


그동안 계속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두면서 나중에 좀 시간이 나면 글을 다듬어서 올려야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남긴 날짜가 작년 9월이니 어느덧 9개월 정도가 지나 버린 셈인데 시간은 정말 빠르기만 하다.


이건 어느 정도 내 성격 때문이다.

완벽주의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어느 정도 정돈 된 생각만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일까.

날 것 그대로를 올리기에는 어딘가 부끄럽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깨달은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계속 흘려보내고 있는 이 시간과 경험들이 아깝다는 것.


글을 쓰지 못한 지난 9개월의 시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40대 중반이 넘어서 도전했던 미국 회사로의 이직. 그리고 그렇게 바라왔던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성공과 성취보다는 매일매일의 순간들이 위기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느꼈던 좌절감과 상실감, 가끔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뒤섞이면서 매우 혼란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깨달은 사실은 그 힘든 터널의 과정들을 글로 정리해 놓지 않는다면 그간 내가 느끼고 배운 보석 같은 경험들을 그냥 흘려보내게만 된다는 것. 즉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치열하게 보낸 시간 속의 이야기들이 그냥 ‘힘들다’는 한마디로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나 자신에게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것.


대단히 목표지향적인 나라는 사람(내가 그렇다는 걸 최근에 많이 깨달았다)을 조금은 더 느슨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


어차피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수도 없을뿐더러,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실패에 대한 경험을 괴로워하고 자책하며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 실패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경험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래야 실패 속에서 얻게 된 교훈도 다시 되새길 수 있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정리하며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그냥 말 그대로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 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놓지 않으면 막 운동을 열심하 하다가 갑자기 다이어트를 중단해 버린 사람처럼 다시 잡념들이 머릿속에 지방처럼 꽉 차게 되는 것 같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은 것처럼 글쓰기를 통해 머릿속을 늘 청결하고 말끔하게 하는 습관을 다시 들이고 싶달까.


흠. 그냥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면 되는 건데 이렇게 세 가지 이유를 굳이 써 놓고 보니 조금 거창한 것 같기도.


아무튼 이런 거창한 변명과 함께 ‘40대 디자이너의 미국회사 도전기’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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