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보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는 날, 내가 주도적으로 질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용히 있던 남편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임신하면 화가 많아지나요?"
그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나를 한번 쳐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내가 매일 남편에게 화내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직장과 친구 관계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남편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남편은 야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속상한 마음을 카톡으로 털어놓았다. 남편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며 나름대로 위로를 해주었지만, 사실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공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럴 땐, 오빠가 나한테 직장 상사 때문에 짜증 났다고 했을 때 내가 공감해 준 것처럼 해주면 돼. 나도 오빠가 힘들다고 하면 '그 상사 진짜 또라이네, 상사라고 갑질 진짜 너무 하네'라고 말하면서 얘기 들어주잖아. 그런데 오빠가 화가 나 있는데 '신경 쓰지 마.'라고 하면 속이 더 타들어가잖아. 진짜 공감이라는 건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해 주는 거야."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남편은 '아하!' 하며 뭔가 깨달은 듯, 로봇처럼 내 친구를 대신 욕해주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돌진!ㅋ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나니 남편은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하며, 임신 호르몬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은근히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 다짜고짜 "임신하면 화가 많아지나요?"라고 물으니, 의사 선생님은 내가 남편에게 화를 많이 낸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임신하면 생리 전 증후군처럼 예민해질 수 있고, 호르몬으로 인해 기분이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다시 괜찮아지기도 한다며, 남편이 옆에서 잘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