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완벽을 향한 집착
나는 포기를 모른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저 / 정지현 역| 현대지성| 2024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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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책 “나는 포기를 모른다”(원서 Be Useful : Seven tools for life) 는 그의 삶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서전적 저서입니다. 이민자로서 미국에 건너온 아놀드는 보디빌딩 챔피언, 할리우드 배우, 성공한 사업가, 환경 운동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인생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등장합니다. 아놀드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수많은 난관과 실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통해 더 강해졌다고 설명합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는 이를 극복하는 것을 즐겼고, 그 덕분에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의 독자에게 영감을 주며, 독자 스스로를 돌아보고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기계발과 성취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단언하건대, 당신과 나에게는 많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도, 가장 똑똑하거나 가장 부유한 사람도 아니다. 가장 빠르지도, 대단한 인맥도 없다. 가장 잘생기거나 예쁘지도 않고, 가장 재능이 뛰어나거나 최상의 유전자를 타고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많은 이들이 갖지 못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노력하려는 의지다. 이 세상에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노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땀 흘려 애쓰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거나 꿈을 이루는 지름길, 성장 비결, 마법의 묘약 같은 건 없다. 태초부터 인간은 힘든 과업 앞에서 쉽게 해결하거나 단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고자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결국 뒤처지고 추월당할 수밖에 없다. 가치 있는 목표 달성에 100퍼센트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은 죽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목표를 예로 들어보자. 부자가 되는 것 말이다. 놀랍게도 복권에 당첨되거나 대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개 매우 불행하다.
로또 1등 당첨자의 70퍼센트가 5년 내 파산한다는 통계도 있다. 부유한 가문 출신들의 우울증, 자살, 알코올 및 약물 중독 비율은 중산층이나 자수성가한 이들보다 훨씬 높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하루아침에 거금을 손에 쥔 복권 당첨자나 부모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부자들은 큰 목표를 향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얻는 소중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돈 버는 일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몸소 느껴보지 못한 채, 그저 거액의 돈이라는 결과물만 공짜로 얻기 때문이다. 고난과 실패가 가르쳐주는 값진 교훈도, 그 교훈을 발판 삼아 꿈을 이뤄내는 쾌감도 맛보지 못한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당신이 어떤 이든, 어떤 목표를 좇든 이것은 절대불변의 법칙이다. 내 인생 전체가 이 법칙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최고의 보디빌더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15년간 매일 5시간씩 훈련에 매진했다. 미국에 건너온 후에는 훈련 강도를 한층 높이고 이중 분할 훈련법을 고안해냈다.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 하루에 2시간 30분씩, 전체 루틴을 두 차례나 소화한 것이다. 훈련 파트너도 두 명이나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전력투구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는 프랑코와, 저녁에는 에드 코니나 데이브 드레이퍼와 호흡을 맞췄다. 나만큼 보디빌딩에 미친 사람이 없었다. 절정기에는 단 한 번 운동할 때 드는 전체 웨이트가 4만 파운드(약 18,100킬로그램)에 달했다. 대형 트럭 무게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대다수는 그 정도까지 고통을 감내하며 노력하길 꺼린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고통을 갈망했고, 훈련에 매달리는 시간 자체를 즐겼다. 오스트리아 시절 첫 트레이너는 고통을 즐기는 내가 마치 괴물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았을 것이다.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내 원칙은 변함없었다. 2003년 선거운동 당시, 캘리포니아주의 모든 주요 사안과 관련된 브리핑 자료를 닥치는 대로 탐독했다. 각 브리핑 자료에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작성한 상세 보고서가 빼곡했다. 평소 한 번도 고민하거나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심지어 의사결정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사안들이었다. 이를테면 탄피에 총기 번호를 새겨 식별하게 하는 마이크로스탬핑microstamping 기술이라든가, 지역별 간호사 대비 환자 비율 같은 것 말이다.
LA 베니스 언덕에서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나면, 국정 운영과 정책, 주민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 어떤 분야라도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인이 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 언젠가는 보디빌딩에, 그다음엔 연기 수업에 투자했던 그 5시간이, 이제는 정치와 정부의 언어에 몰입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매일 마치 타국 언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 온 학생처럼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메모한 내용을 몇 번이고 복기했고, 자연스럽게 입에서 털털 튀어나올 때까지 외워서 말하곤 했다.
내가 걸어온 모든 경력 단계에서 기울인 노력—반복과 고통, 완성과 장시간의 투자—엔 항상 일관된 목적이 있었다. 당신이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마찬가지일 것이다. 창업이든 결혼이든, 농사든 시계 제작이든, 세계 일주든 승진이든, 올림픽이든 공장 조립라인 관리든, 비영리 단체 설립이든, 그 어떤 목표라도 노력의 진짜 목적은 오직 하나, 철저한 준비다.
스포트라이트가 당신을 비추고, 기회가 문을 두드리고, 카메라가 돌아가고, 위기가 닥쳐올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준비 말이다. 물론 노력 그 자체로도 큰 가치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꿈을 이룰 절호의 찬스가 왔을 때,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순간이 찾아왔을 때, 당황해 망치지 않고 제대로 해내기 위함이다.
주지사 시절은 물론 지금도 졸업식 축사나 기조연설을 앞두고 원고 첫 장에 읽은 횟수를 적어둔다. 10번 읽으면 실전에서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고, 20번 읽으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즉석에서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그 순간에 온 마음을 쏟아부을 수 있고, 청중 역시 나와 내 메시지에 더 깊이 공감했다. 반복 훈련은 제대로 해야 효과가 있다.
정신을 딴 데 팔면서 흐트러진 자세로 시간만 때우면 아무 소용없다. 바른 자세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해내야 한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무언가를 하려거든 전력을 다해서 하라”Wenn schon, denn schon! 데드리프트든 기자회견이든 연설 연습이든 매번 온 정신을 집중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소한 실수 하나, 엉성한 동작 하나, 단어 하나를 잘못 써도 진전이 막힐 수 있다.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다. 반복의 진짜 목적은 한층 더 강해지고, 견고한 기반을 다져 어리석고 안타까운 실수를 막는 데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높여 정말 중요한 순간, 즉 연습한 걸 실전에서 보여줘야 할 때 성패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늘 해오던 대로 하면 되게끔 만드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 제대로, 충분히 연습하지 않으면 막상 큰 무대에서 실수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부분을 무시하고 대충 훈련하면 토대가 약해져 신뢰할 수 없다.
고통은 잠시뿐이다
내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데는 《코난-바바리안》의 성공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존 밀리어스 감독이 스페인 로케이션에서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키지 않았더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대사를 외우는 기본적인 준비만으로도 벅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거의 상의를 벗은 채로 등장하기에 최상의 몸매를 유지하려면 매일 중량 운동을 해야만 했다.
촬영 전에는 악센트 코치와 함께 긴 대사 장면을 30~40번씩 리허설했다. 검술과 격투 동작도 익혀야 했고, 투기장 전투 신을 위해선 레슬링과 복싱도 배웠다. 말과 낙타, 코끼리 타는 법, 거대한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긴 밧줄을 오르내리며 매달린 채 점프하는 법까지 배워야 했다. 말 그대로 액션 히어로 지망생을 위한 직업학교에 다닌 셈이었다. 게다가 밀리어스 감독은 나에게 갖은 고역을 다 시켰다. 바위틈을 기어 다니는 연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팔뚝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들개 떼에게 쫓겨 가시덤불 속으로 숨기도 했다. 독수리 사체를 물어뜯는 장면에서는(요즘 같으면 동물보호단체가 난리 칠 일이지만) 촬영 후마다 입 안을 알코올로 헹궈내야 했다. 촬영 초반에는 등을 다쳐 40바늘이나 꿰매기도 했다.
밀리어스 감독은 이렇게 단언했다. “고통은 순간일 뿐, 이 영화는 영원할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내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 고통은 검과 마법sword and sorcery이라는 판타지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대가일 뿐이었다.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를 각오만 되어 있다면 내 비전에 성큼 다가설 수 있으리라. 위대하고 영원한 업적에는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고통의 묘미다. 고통은 일시적이라 영원히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으며, 꿈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가 진정 전력을 다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만약 지금껏 당신이 위대하고 특별한 목표를 이루는 동안 아무런 고통도, 대가도, 불편함도 겪지 않았다면, 안타깝지만 냉정한 진실을 알려주겠다. 당신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반드시 희생이 뒤따른다. 고통은 희생의 척도일 뿐 아니라 성장의 지표이기도 하다.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고통이 없다면 근육 성장의 잠금 상태를 풀 만큼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고통을 갈망했다. 1970년대 체육관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에 내가 늘 웃고 있는 이유다. 내가 마조히스트라서가 아니었다. 600파운드(약 272킬로그램)나 되는 무게로 스쿼트하다 숨이 턱 막히고 구토감이 밀려오는 건 죽을 맛이었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노력에 따르는 고통은 성장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괴로운 횟수를 채워갈수록 보디빌더로서의 꿈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래서 행복했다. 이 모든 고생의 끝에는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서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통의 필요성에 눈뜬 것은 당연히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무하마드 알리는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고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가 중요한 거야. 그 뒤에 나오는 숫자들이 챔피언을 만들거든.” 밥 딜런은 모든 아름다운 창조물 뒤에는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고 노래했다. 익숙한 이야기일 거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명언들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니까.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라. 불편함을 포용하라. 고통을 즐겨라. 두려운 일을 매일 조금씩 해내라.”
요지는 다 같다. 성장을 원한다면, 위대해지길 원한다면, 결코 쉬운 길로는 갈 수 없다. 많든 적든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네이비실이나 레인저 같은 특수부대 선발 과정에서 교관들은 지원자들이 극한에 내몰린 후에야 비로소 시험을 시작한다. 힘이 방전되고 귀가 따갑도록 고함을 듣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야외나 물속에서 추위에 떨게 만든 뒤에야, 섬세한 움직임이나 팀워크가 필요한 테스트로 지원자들을 물에 빠뜨리거나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려 든다.
실력 평가가 목적이 아니다. 임무 완수 자체는 부차적이다. 교관들은 기술 발전이나 신체적 성장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찾으려 한다. 기술은 차후에 가르칠 수 있다. 불굴의 정신력만 있다면 언젠가 몸도 따라온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인격적 성장이야말로 위대한 비전 추구에 있어 필수적이다.
끝까지 확실하게 마무리하라
권위를 가진 리더가 하는 일에 대해 많은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자연재해 대책을 세우고 훈련을 통해 모두가 제 역할을 익히게 한 뒤에는 주지사의 임무는 끝났다고 여긴다. 회사 사장이나 팀 관리자처럼 주지사도 할 일이 많아 모든 것을 다 챙길 순 없으니, 어느 순간부턴 주지사가 세운 계획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알아서 잘하겠거니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자는 사람들이 맡은 바 임무를 알아서들 잘할 거라고 여겨선 안 된다. 성공의 절정이나 재앙의 직전 같은 중대한 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꿈을 이루려면 악몽 같은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막아내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운이 나빠 신호가 엇갈릴 수도 있고, 사람들의 무사안일이나 어리석음이 낭패를 부를 수도 있다. 중요한 과제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거나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지키기로 맹세했다면, 반드시 모든 계획이 준비한 그대로 실행되어야만 한다. 제대로 마무리되도록 끝까지 챙기는 게 리더의 몫이다.
모든 게 끝났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렇게 안일하게 굴어선 안 된다.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어야만 “내가 해결했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일의 마무리에 집착하는 편이다. 마무리야말로 중요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의 정수다. 중요한 목표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언제나 타이밍, 사람, 수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결코 믿을 만한 게 없다.
역설적으로 매듭짓기는 실행의 가장 쉬운 부분에 속한다. 적어도 에너지와 자원 면에서는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의 마무리를 너무 당연히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한다.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해내고 싶어”라면서 야심 차게 시작만 해놓고, 그 뒤로는 알아서 잘되겠거니 하는 것이다. 선의와 희망만 있으면 될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에게도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스포츠계에서 흔한 일이다. 골프에서 그린사이드 벙커샷을 샌드 웨지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공이 꼼짝하지 않거나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테니스에서 백핸드 한 방이면 득점인 상황에서 마지막 스윙이 부실해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축구 선수들도 날아오는 공을 발리슛으로 연결 짓지 못하거나, 페널티킥 같은 기본적인 플레이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 실수하곤 한다.
헬스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랫 풀다운lat pulldown 운동을 하면서 팔을 완전히 펴지 않거나 끝까지 당기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동작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마무리가 부실하면 중요한 순간에 지거나 잠재적 이익을 놓칠 수 있다. 대개 손해 보기 십상이다. 진정한 노력과 전력투구 정신이 없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대충대충 하겠다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공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등 운동을 적당히 하는 식으로 습관이 한번 형성되면, 훨씬 더 중요한 일마저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업무는 물론,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 심지어 자녀 양육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랫 풀다운 기구에서 10회 4세트를 대충 해치우는 사람은 아이 기저귀도 대강 갈아 채우고, 단골 식당에서 배우자가 좋아하는 메뉴도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시간과 에너지가 더 들고 고통스럽더라도 15회 5세트를 빈틈없이 소화해내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무언가를 흠잡을 데 없이 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잘 알고 있다.
우디 앨런은 성공의 80퍼센트는 그저 도전하는 데 있다고 했다. 훨씬 전에 토머스 에디슨은 성공의 90퍼센트는 땀의 결실이라고도 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들어맞지도 않는다. 숫자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 생각에는 미국의 컨트리 가수이자 소시지 회사 사장이었던 지미 딘의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하겠다고 한 일을 끝까지 해내되, 자신이 말한 것보다 조금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라.” 후속 조치를 취하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것. 가치 있는 목표를 지닌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차별화될 수 있다. 모두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고, 변화를 만들겠다고들 하지만 대개 입으로만 떠들 뿐이다. 이 두 가지를 진심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목표를 향한 진지한 자세를 갖출 수 있다.
변명은 그만, 실천은 지금부터
: 당신에게는 24시간이 있다
반가운 소식이 있다. 우리에겐 노력하려는 의지 외에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노력할 시간 24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개개인의 나이, 재산, 거주지, 재능 등은 천차만별이지만, 의지와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는 우리가 시간과 노력만 투자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니까. 자문해보라. 나는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가? 정작 시작은 하지 않고 시작할 생각만 하는 데 소모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하수구에 흘려보내듯 소셜 미디어에 쏟아붓는 시간은 또 얼마나 되는가?
TV 시청, 게임, 술자리로 허송하는 시간은 또 얼마인가?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이 없길 바란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다수는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 원대하고 야심 찬 꿈을 꾸면서 간절히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그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20분 내내 바쁘다는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가장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할수록 실제로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바쁘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누구나 바쁘다. 우리 모두에겐 일상의 일들이 있다. 각자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 먹고 자고 돈도 벌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당신의 비전 실현을 위해 해야 할 일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목표가 진정 중요하다면,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시절의 바쁜 나날을 회상하며 그 이유까지 설명해주면,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묻곤 한다. “밥은 언제 먹었어요?” 대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식사했다. 시간에 쫓길 땐 체육관 가는 길에 차에서 먹거나 공부하면서 먹기도 했다. 매일 아침 수업 시간엔 단백질 쉐이크도 마셨다. 정 바쁠 때는… 그냥 굶었다. 한 끼 거른다고 죽진 않는다. “즐거움을 느낄 시간은 있었어요?” 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 물론 즐거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 리 없다.
훈련이 즐거웠고, 프랑코에게 벽돌 쌓는 법을 배우는 것도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미국식 사업 방식을 익히는 것 또한 즐거웠다. “잠은 언제 잤어요?” 이 질문도 많이 받았다. 아침 운동 후에 잠깐 낮잠을 자거나 벽의 모르타르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트럭에서 선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는 그냥 피곤할 때 잤다. “항상 피곤함에 절어 있지 않았나요?” 이 질문도 항상 따라온다.
내 대답은 매번 똑같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어릴 때부터 힘이 넘치긴 했다. 이 부분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중요한 부분을 놓치곤 한다. 뚜렷한 비전을 품고 큰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이들은 진척을 이룰수록 엄청난 힘을 얻는다는 사실 말이다.
몰입 상태 여부와 무관하게, 일을 끝내는 이들의 공통점은 주어진 과제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면 기어코 만들어낸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나 식사, 여가 시간이 모자라거나 체력이 고갈될까 봐 걱정된다면, 당신의 진짜 고민거리는 단순히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간 활용 방식일 수 있다. 나는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에게 핸드폰을 보여달라 한다. 그들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확인하면 3시간 30분을 SNS에 허비한 걸 알 수 있다. 당신에게 부족한 건 시간이 아니라, 시간 부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삶의 비전이다.
때로는 원대한 비전을 품었음에도 그것을 이루기까진 너무 멀고 그 여정이 막막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당연한 심정이다. 두려움이 어떤 건지 나 역시 잘 안다.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몸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1년, 2년, 3년도 짧다.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데도 매일같이 혹독한 훈련을 쌓아 심사위원들과 조 웨이더,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근육량과 균형미를 갖추려면 수년이 필요했다.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연이어 우승하고 코난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역할을 맡기에 알맞은 체격을 만들려면 몇 년이 더 걸렸다.
내가 오로지 최종 결과만 바라보며 코끼리 한 마리를 통째로 삼키려 들었다면 질식했을 것이다. 분명 실패로 끝났겠지. 내가 원하는 지속 가능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성공을 거두려면, 꾸준히 매일의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매 세트 모든 동작을 정확히 해내고, 고통에 귀 기울이며, 반드시 오게 될 성장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어야만 했다. 웅대한 비전을 뒷받침할 계획을 세우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천하고 마무리해야 했다. 목표가 무엇이든, 지금의 삶이 아무리 바쁘든 당신 역시 그래야만 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내가 ‘24시간 카운트다운’이라 부르는 방식으로 살펴보자.
당신은 하루에 몇 시간 자는가? 이상적인 수면 시간으로 알려진 8시간이라 해보자. 잠을 제하면 16시간이 남는다. 근무 시간은 몇 시간인가? 이것도 8시간이라 치자. 그럼 하루에 8시간이 남는다. 출퇴근은 얼마나 걸리나? 미국인의 평균 통근 시간은 편도 30분 미만이지만, 교외 거주자들을 감안해 각각 45분씩 잡아보겠다.
총 1시간 30분이니 6시간 30분이 남았다. 아침저녁 식사와 TV 시청을 포함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3시간 30분 정도면 꽤 이상적이다. 이제 3시간이 남는다. 운동이나 신체 활동에 하루에 얼마나 할애하는가? 개 산책, 집안일, 운동을 모두 합쳐 보통 사람들은 평균 1시간가량 쓴다. 좋다. 몸을 움직이는 데 하루 한 시간 투자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이제 2시간이 남아 있다. 하루에 할 일을 전부 다 하고도 꿈을 좇는 데 쓸 시간이 2시간이나 남는다. 벌써부터 질문이 쏟아질 게 눈에 선하다. 휴식은 언제 취하고 여유는 언제 즐기냐고?
일단 이 사실을 명심하자. 휴식은 아기들을 위한 것이고, 여유는 은퇴자들을 위한 것이다. 당신이 둘 중 하나인가? 각별한 일을 해내고 원대한 꿈을 이루고 싶다면, 당분간은 휴식과 여유를 잊어야 한다.
정 휴식이 필요하다면 남은 시간의 절반을 낮잠에 쓰면 된다. 여전히 목표를 위해 매일 1시간씩은 투자할 수 있다. 매일 1시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가? 소설을 쓰고 싶다면 날마다 1시간씩 써보라. 1년이면 365쪽, 책 한 권 분량이 나온다! 살을 빼고 싶은가? 섭취하는 칼로리보다 500칼로리를 더 소모하라. 매주 1파운드(약 0.5킬로그램)이 줄어든다. 1년이면 50파운드(약 23킬로그램)까지 감량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만큼의 칼로리를 추가로 소모할 수 있을까? 남는 시간에 자전거를 타면 된다. 주 5일, 적당한 속도로만 타도 1년 후엔 LA에서 보스턴을 넘어설 만큼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미국을 가로지른 셈이다!
환상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큰 목표라도 계획을 세워 작은 목표들로 쪼개고 하루에 1~2시간만 투자해도 충분하다. 나처럼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악착같이 매달리더라도, 하루 5시간만 고생하면 된다. 나머지 19시간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식사 시간을 조금 줄이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든다면 꿈을 위해 바칠 시간을 좀 더 마련할 수 있다. 운동이든 공부든, 글쓰기든, 인맥 쌓기든,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TV를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아라. 변명은 접어두고 실행에 옮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