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파티의 시절 7
대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를 또다시 애인 없이 맞이하고 말았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아직 어리바리 하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지만, 이제 정말 스무살도 넘은 성인이 되었고 웬만큼 여자로서 자신감도 생겼는데 아직도 이런 처지라니…
숙맥이던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2년 동안 온갖 일을 벌이며 스쳐갔던 수많은 썸과 연애 비슷한 사건들이 머릿속을 열패감으로 어지럽히던 성탄절 전야, 친분이 있던 남자 후배 둘과 연락이 닿은 나는 습관처럼 학교 앞 유흥가로 나갔다.
그들과 나는 대체 왜 이런 날 우리가 서로 만나야 하냐며 투덜거리다가, 평소 잘 가지 않던 술집으로 향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곳은 저렴하고 푸짐한 안주가 없고 오로지 맥주와 양주와 간단한 마른안주만 팔던, 꽤 비싸고 힙한 바였다. 돈 없는, 혹은 의식이 강경한 친구들과는 못 가던 곳이었다.
그때는 서서히 ‘외제 맥주’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일반 음식점에서는 볼 수 없고 팬시한 바에서만 파는, 특이하고 고급해 보이는 (나중에 생각하면 미국의 싸구려인) 밀러와 버드 와이저, 버드 아이스 등에 대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었다. 물론 비싸기도 했다. 하지만 박리다매를 전략으로 하는 유흥가에는 그다지 가격이 비싸진 않은 바가 두어 군데 있었다.
나는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가자며, 많이 마시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술값은 1년 선배인 내가 당연히 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들어간 멋진 바에서 우리 셋은 우울한 얼굴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때는 그걸 ‘외제 맥주’라기보다는 ‘병맥주’라고 불렀는데, 돌려따는 병따개가 특징이었다. 컵은 절대 안 주고, 따지 않은 병 그대로, 병뚜껑을 삼각형으로 접은 냅킨으로 한번 감싸서 내주었다. 그럼 그걸 비틀어서(트위스트) 열고, 사람에 따라 병 입구를 한 번 닦은 다음 마셨다.
그런데 한창 술을 마시다보니 저기 구석자리에 우리 과 선배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여자 선배들이, 나와 동기인 남자애들을 데리고 모여 있었다. 무슨 미팅도 아니고 4대 4의 인원이었다.
기묘한 질투심이 찾아왔다. 아, 저 여자들 때문에 나는 동기들과 썸 한 번 제대로 못 탔구나… 1대 2의 내 처지는 돌아보지 못한 채였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더니. 그 무리에 너무 끼고 싶어졌다.
그쪽에서는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반색하며 다가가는 우리를 내칠 수도 없었다. 자연스레 두 팀은 합석을 했고, 그제야 좀 왁자하게 연말 분위기가 나며 훈훈해졌다. 결국 우연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는 내 기억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크리스마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