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31
옛날 한국 카페와 요즘 일본 카페의 공통점
한국이 커피 공화국이 된 이후, 카페에서 제과류가 아닌 음식을 파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예전에는 카페에서 커피보다도 음식을 더 주력으로 팔았었는데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요즘 일본 여행을 종종 가게 되면서였다. 일본에선 어느 카페에서든지 오무라이스와 스파게티를 파는 게 신기했다. 저러면 냄새가 나서 커피나 차를 즐기는 손님한테 불쾌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옛날엔 그랬다는 역사가 떠오른 것이다.
‘역사’라고 할 만도 하다. 벌써 몇십년 전 일이니까. 내가 스무살 무렵, 서울의 젊음의 거리에는 대체로 밥집이나 술집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그런 가게의 2층 이상에는 카페들이 속속 생기고 있었다. 그때의 카페는 주로 맥주와 볶음밥을 파는 곳이었다. 혼밥이 드물던 시대, 주로 여자들끼리 혹은 남녀가 조용한 곳에서 오래 식사하고 싶을 때 찾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모임도 그런 카페에서 했다. 주로 스터디 모임이 거기서 차를 시켜놓고 공부와 토론을 하면서, 밥을 거르고 왔다는 친구는 볶음밥이나 덮밥을 시켜서 한구석에서 먹었다.
여우사이(여기우리사랑이야기…), 겨울나그네, 보디가드… 같은 이름들을 달고 있던 곳들이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좀 더 이전 세대에서는 ‘경양식집’ 혹은 ’레스토랑‘이라고 불렸던 곳들이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카페’라는 명칭으로 바꿔달았던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명색이 카페니까, 음식이나 술을 안 시키고 커피 한 잔만 달랑 시켜놓고 한참 시간을 보내도 아무 문제없던 유일한 공간이긴 했다.
또한 그런 카페는 (거의 유일한) 소개팅의 장소였다. 일단 차를 한 잔 시켜놓고 만나서 상대가 마음에 들면 밥도 시키고 술도 시키고 하게 되는 거다. 장소를 옮길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자만추의 시대가 되어 소개팅도 잘 안 하는 것 같구나...
원래 라때는 늘 외출하면 열 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주집이나 맥주집에서 왁자하게 먹는 게 국룰이었지만, 난 점차 두셋이 만나서 카페만 가는 사람이 돼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카페에서 파는 음식 가짓수가 점점 줄어서, 나중에는 샌드위치와 빵류만 팔고 술도 안 팔게 돼버렸다. 이제는 커피와 디저트만을 위한, 사실상 커피라는 유일신만을 위한 신전이 돼버린 것 같고 말이다.
이제는 그런 문화에 나도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온갖 음식들을 잔뜩 팔고 있는 일본을 보면, 향수에 젖는다기 보다는 쟤네는 어떻게 저러지? 의아해질 정도가 됐다.
그런데 요즘 한국 카페에 등장한 새로운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커피와 함께 위스키를 파는 곳이 힙스터로 등극한 것이다. 유행이 돌고 돌아도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니, 카페에서 다시 술을 팔긴 해도 ‘맥주’가 아닌 ‘위스키’가 대세가 되려는 듯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도 우리나라 카페에서 파는 음식은 샌드위치 이상은 상상할 수 없는 것 같다. 언젠간 다시 모임을 하러 카페에 갔다가 볶음밥을 시켜먹을 수 있는 시절이 올지 모르겠다. 사실 다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늘 글은 배고플 때 써야 한다는 오래전 글쓰기 모임 멘토의 당부가 아직도 머릿속을 지배해, 늘 밥을 거르고 와서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전과 비슷하게 맥주와 스파게티를 함께 파는 대형 카페도 간혹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처럼 말이다. 하지만 옆에서 각자 글을 쓰고 있는 다섯 명의 낯익은 동료들 중 맥주를 받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혼자 카페에 갈 때면 향수에 젖는지 간혹 시켜 먹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여럿이 있을 때는 눈치가 보여 삼간다. 더구나 스파게티처럼 냄새 나는 음식을 시켰다가는, 굳이 눈총을 주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위축이 될 것 같다. 요즘 카페 모임 매너가 그렇다
참 그러고 보니 그때와 지금의 카페 문화 중에 크게 바뀐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선불제와 셀프서비스다. 아무래도 커피 한 잔만 달랑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반면 음식점들은 대부분 후불제인데, 간혹 음식점이 선불제와 셀프서비스인 경우, 손님들이 조금 저항감을 느끼는 듯하다. 당연히 음식을 파는 요즘 일본의 카페들도 후불제이고 서버가 음료와 음식을 날라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