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다가 먹게 된 음식들
: 탄산수, 고수, 호밀빵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30

by 어쨌든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인 나에게 처음으로 편식의 혐오를 안겨주었던 건 고수라는 풀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 갔던 태국 여행에서였다. 밤비행기에서 내려, 몽롱한 정신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실려간 식당은 생전 처음 맡아보는 괴상한 냄새들을 훅, 한아름 안겨주었다. 그중 하나가 강렬한 고수의 향이었다. 태국에서는 ‘팍치‘라고 부르던 향채소.


그러고 보니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기 마련이고, 많은 경우에 처음은 거부감을 부르기 쉽다. 나의 첫 해외 여행인 유럽 배낭 여행 때도 그런 게 있었다. 바게트에 치즈와 햄만 끼워 먹어도 이것이 유럽의 맛이라며 부르르 떨던 시절이었으면서도 그랬다. 이미 모든 게 서구화된 한국에서 왔고, 유럽은 동경하던 곳이었지만, 그곳에서도 나의 거부감을 촉발시킨 것들이 있었다.


맨 처음 혐오를 불러일으킨 음식은 탄산수였다. 당시 우리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선 탄산수 주의보가 돌았다. 분명 생수인 줄 알고 샀는데, 물병 뚜껑을 따는 순간 피식하고 가스 소리를 내면서, 그렇다고 사이다처럼 단맛이 나는 것도 아닌, 괴상한 맛의 음료가 담긴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불어로, 독어로, 에스파냐어로 ‘가스 없는 물 주세요’라는 말을 알음알음 배웠지만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체코어까지는 미처 수배를 못해서, 아까운 2리터 물 한 병을 고스란히 길바닥에 쏟아버릴 때가 많았다. 그 역겹고 혀 따가운 물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언젠가부터는 집에서 탄산수가 떨어지면 아쉬워하고, 마트에 가면 설탕이나 심지어 향료도 들지 않는 탄산수를 사려고 성분표를 주의 깊게 읽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얼마전에는 10만원이나 하는 탄산수 제조기를 고민 끝에 구입하고서 손님만 오면 신이 나서 자랑했으니 말이다.


그 비슷한 게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독일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호밀빵이었다. 호기심에 시커멓고 묵직한 빵을 샀다가, 다양한 음식을 사서 같이 나눠먹기로 한 호스텔의 동료 여행객들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지. 그 빵은 냄새도 퀴퀴했지만 꾹 참고 한 입 베어물어보니, 상한 것처럼 시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아까운 유로를 낭비했다며 “그러게 내가 사지 말랬지!” 라고 동행에게 얼마나 핀잔을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사워도우 호밀빵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한국에도 간혹 파는 빵집이 생겨서 눈에 띄면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든다. 일산에도 한 군데 있는데, 조그만 덩어리 하나에 만원 정도 하니까 꽤 비싼 편이다. 저속노화 어쩌고 하는 안내문을 붙여놓았고 말이다. 어쩐지 지금은 그 시큼털털한 맛이 싫지 않고 침샘을 자극한다. 구수한 뒷맛도 좋아졌다. 건강한 맛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서 그런 걸까?


가끔 이케아에 가면 종류별 호밀 크래커를 사온다. 얼마전 베를린 여행을 갔을 때는 저녁마다 다른 빵가게의 호밀빵을 사서 비교해 보기도 했다. 어쩌면 늙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어릴 때는 나물을 싫어하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좋아하게 된다고 하지 않나. 노화에 따른 몸이 자연스레 건강에 좋은 음식물을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수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건 입맛의 글로벌화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옛날에 처음 태국에 갔을 때는 고수 냄새 때문에 치를 떨었다. 단순히 고수 넣은 음식을 못 먹는 것뿐 아니라, 10미터 밖에서도 저기 고수 다발이 있다며 코를 싸쥐고 소리를 질렀더랬다. 그럴 때마다 가이드 아저씨의 당황하던 표정이 생각난다. 주변 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안했을까. 자신들이 즐겨 먹는 풀을 보며 질색을 하는 한국 관광객이라니 기분 나빴을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심심한 사과를 하고 싶다.


지금은 쌀국수집에 가서 뒤늦게 ‘요청하면 고수를 드린다’는 안내문을 발견하고 마치 큰 손해를 본 것처럼 짜증을 내는 지경이 되었다. 저 비싼 고수를 못 넣어 먹었잖아… 라면서 말이다. 어느새 한국에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기는 쌀국수집에 어영부영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나 보다.


낯선 음식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가 어느 순간 그 음식이 좋아져 버린 경험이,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꽤 있었다. 나도 참 편견과 변덕이, 아니 변화가 많은 사람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것들을 혐오하고 거부하고 있을 테고, 언젠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포용하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뭘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화면 캡처 2025-11-27 161142.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할아버지의 함박스테이크는 친구의 소울 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