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9
쇠고기완자, 고기를 갈아 동그랗게 지진(부친) 음식을 좀 더 크게 만든 게 이른바 햄버그스테이크고, 그걸 빵 사이에 끼운 게 햄버거다. 사실 차이점은 ‘크기‘밖에 없지만 엄청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 물론, 크기가 결정적인 게 음식만은 아니겠지.
할아버지는 함박스테이크를 좋아했다. 원래는 그냥 스테이크를 좋아했는데, 나이 들어 이가 안 좋아진 후에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의 가족은 가끔 할아버지를 만나러 큰집으로 갔지만, 거기서 식사를 한 게 아니라, 할아버지를 모시고 외식하러 나왔다. 지금은 사라진 코코스가 큰집 근처에 있었다. 우리는 피자나 스파게티, 돈가스 같은 걸 먹었고, 할아버지는 꼭 함박스테이크를 시켰다.
우리 가족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음식을 먹는 그를 보며, 나는 그의 이력을 생각했다. 뭔가 미군에서 일을 했다는 그. 자주 거친 영어를 섞어 말하며 우쭐대던 그. 그리고 노인답지 않게 함박스테이크를 좋아하던 그.
하지만 친구가 함박스테이크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의아한 느낌은 들었다. 젊은 그녀가, 햄버거도 아니고 함박스테이크를 좋아하다니. 심지어 소울푸드라고까지 표현했다.
나중에 사연을 듣자 하니, 그녀의 어머니가 항상 아버지를 위해 준비해놓던 음식이라고 했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매일 준비한 고기, 그것도 온집안에 냄새를 풍기며 정성들여 소량만 만드는 쇠고기완자. 그녀는 어머니의 그런 대접을 받으며 퇴근하는 아버지가 몹시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두 경우 모두 함박스테이크는 권력의 음식이었다. 한국의 권력을 (일부) 위임받은 미국 군대를 상징하고 가부장의 권위를 상징하도록 영혼(소울)에 각인되고. 그리고 그런 (과거의) 권력에는 향수와 추억도 진하게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