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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pr 04. 2021

[에세이] 국도라는 지류에 서서

여행이 주는 삶의 원동력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울진에를 다녀왔다. 내비게이션으로 울진에 있는 펜션을 검색해 봤더니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2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국도로 가는 길에 눈에 밟혔다. 국도로 가면 1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하고 길도 좋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차 타 핸들을 잡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고 갈 곳 잃은 손가락이 고민에 휩싸인 듯 멍해 보였다. 그리고 핸들을 다시 잡았다. 남은 시간 3시간 30 분이었고 국도를 따라 포항으로 간 다음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장거리 여정은 손가락 하나가 저지른 선택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납빛의 흉물스러운 빌딩들은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지막한 산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산들이 만들어낸 구불한 지평선 위로 초록빛을 띤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길은 점점 좁아 2개의 차들이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되었고, 노란색의 중앙선만 아니었다면 서로 부딪치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을 더 달리자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길 올려다 보였다. 아직 꽃이 만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개만 빼 곰 하게 내민 채 분홍색을 흉내 내고 있었다. 소박하면서도  수수한 그 자태가 너무나 고왔다. 한참을 달려도 차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도로 잠시 차를 세워 보았다. 그리고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몇 차례 풍경을 찍봤다.



"찰 칵"


저급한 싸구려 셔터음이 분위기를 망칠까 걱정이 될 정도록 민망 소리였다. 찍힌 결과물을 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풍경과 너무 달라서 셔터음만큼이나 실망도 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정취를 만끽하며 무심하게 굽어있는 도로를 따라 달렸더랬다. 이윽고 바다가 다 와가는지 산등성이들 뒤로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차 창문을 조심히 내리고 연신 킁킁거리며 바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혹여나 바다가 가까워지지는 않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릴 듯하였다.


설렘을 머금은 듯 입을 다문채 코너를 돌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바닷가가 정말로 펼쳐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아닌 듯했지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일까?


"와~"

"진짜 바다네,,,,"


잠시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창문을 내려 셔터를 눌렀다. 뒤에 있던 차가 가까웠던지 왠지 모를 촌스러움에 움츠려 들었다. 부끄러웠다. 뒤에서 나의 이런 호들갑에 웃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혼자 한참을 웃었다.  




코로나로 인해 요근래 여행이 어색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여행을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양심에게 변명을 하면서까지 즐기고 싶지는 않아서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번 모임을 반대했었다. 코로나 때문도 있었지만 가족과 다 같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심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꽤나 된 친구 와이프가 아기를 가졌고 출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좋은 세상이 다 갔다나 머래나,,,,


그렇게 시작된 울진에서의 펜션 모임은 한편에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렘도 있었다. 여행을 가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이 될 것이니 말이다. 가면서 무엇을 먹을까? 어떤 도로를 갈까 하면서 해안도로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지 잘 몰랐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가서 즐기는 것 자체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가기 위한 준비 과정, 그리고 도착하기 전까지의 여정이 너무 행복했던 거 같다. 여행을 가기 전에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을지 혼자 해보는 이미지 트레이닝,,, 그리고 중간에서 맛볼 이국적인 정취들, 카메라에 담아볼 배경과 포즈까지 미리 생각해보며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와 먹거리, 볼거리들로 가득했던지 오감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러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곤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과, 여기를 다시는 못 올 거 같은 불안함, 현실에 복귀해 일에 들들 볶일 생각에 또 다른 비명 소리를 듣곤 했다.


우리는 어쩌면 여행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들 하지만 실은 여행지에 도착하기 이전에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고된 삶을 살고 있노라면 우리는 파라다이스로 갈 열쇠를 갈망한다. 그렇게 열쇠를 가질 생각을 하며 삶에 대한 다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 대한 원동력을 자신이 상상하는 기대에서 꺼내 먹으며 내일을 기다린다.


기대라는 삶에 원동력은 멀리 보면 결혼, 출산, 취업, 해외여행 등이 될 수 있을 거 같고 가까이 보게 된다면 주말에 떠나보는 여행, 나들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기대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그래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런 기대들을 꼭 거창하게 만들어서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주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 만에 도착하는 로x배송이 아니라 길게 돌아서 오는 제품이면 더 오랫동안 만끽할 수 있다. 또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던지, 퇴근하는 차에서 친한 친구들과 통화하기 위해 목록을 짠다든지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들로 넘쳐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이런 것들을 놓치고 있으면서 스트레스받는다느니,,, 힘들다느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물론 내가 느끼고 가졌던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단한 삶에서 느껴보는 달콤한 꿈과 같은 휴식을 나만 가지고 있기는 너무 아까워 이렇게 글로 남겨 봤다. 인은 단순한 동물이다. 망각이 신이 준 선물인 양 떠벌리고 다닌다. 붕어 기억력이 3 초라니, 조류 머리라느니 하면서 조크를 지며 조롱하기 바쁘다. 자신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망각을 하는 방법과 주기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로 적으며 울진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가졌던 느낌과 행복을 다시금 상기시켜 봤다. 그리고 울진에서 오는 길도 그렇게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3시간 30분을 달려왔다는 것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집으로 오는길 아침, 따뜻한 커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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