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를 온전히 졸업했다.
졸업을 하고 난 다음 해부터는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도입된 교육방법을 제도화하며 가져온 이름이었으니 바뀌는 게 맞다. 하지만 나의 유년기가 잘못된 교육으로 얼룩졌다거나 부정당한 듯한 느낌은 떨칠 수 없었다.
얼마 전 직장동료들과 대화를 하던 때였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각자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라떼를 남발하고 있었다. 나도 말하고 싶었지만 아빠 미소를 지으며 듣기만 했다. 마지막 한방으로 최고의 라떼를 차지할 요량이었으니까.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마지막 학생이다.
내가 입을 열자 다들 웃느라 여념이 없다.
숨 넘어갈 듯 까르르 웃다가도 숨을 고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말만 하면 넘어가는 모양새가 마치 나를 구한말 시절 사람 즈음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보자기에 책을 싸매고 다녔어요?"
"고무신은요?"
"새마을 운동 때 정말로 쥐를 잡았어요?"
이런 쓸데없는 질문들이 주를 이뤘지만 내가 겪은 듯 능글맞게 대답했다. 국민학교가 주는 예스러움 자체가 너스레가 되는 순간이다. 놀림당하면서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가진 추억의 8할은 모두 국민학교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다. 추억이 추억을 물고 온다고 할까? 이야기를 하다 보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만 풀고자 한다. 나머지는 나중을 기약해야 하겠지. 모두 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재미를 위해 주관적인 해석도 곳곳에 넣어 두었다. 나는 지금의 초등학교를 모르기 때문에 다르면 다른 대로, 비슷하면 비슷한 대로 가볍게 보고 넘기면 좋겠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큰 길가에 있었다. 운동장은 축구장 1개가 넉넉하게 들어가고도 여자 아이들 십여 명이 고무줄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더 있었다. 학교 건물은 3층짜리 건물 5동 있었고 운동장 2면을 ㄱ자로 감싸며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국민학교 치고는 조금 큰 편에 속했다.
한 반에 학생은 50여 명 정도였다.
그런 반이 한 학년에 15반 정도 되었으나 그마저도 감당되지 않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학교를 가야 할 때도 있었다. 등굣길에 하교 중인 친구를 만난다거나 하교 중에 등교하는 친구를 만나는 장면은 그때는 흔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수업 2교대 앞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지나쳐야 했다.
저학년까지는 키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매년 키 오름차순으로 복도에 세운 다음 키가 가장 작은 친구가 1번이 되고, 키가 가장 큰 친구는 끝번호가 되는 식이었다. 교실 좌측 제일 앞자리가 1번, 오른쪽으로 가면서 2번 3번 학생이 차례로 앉았다. 남학생과 여학생 짝이 되게 배분하며 앉았다. 번호가 결정되고 나면 1번과 마지막 번호 학생은 거의 울었다. 1번은 자기가 키가 젤 작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서 울었고, 마지막 번호 친구는 대부분 남학생인데 또 남자랑 짝꿍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울었다. 키가 작은 아이는 1번이 되지 않기 위해 뒤꿈치를 들어야 했고, 키가 큰 학생들은 이성친구 옆에 앉기 위해 무릎을 굽혀야 했다. 보통 한 반에 남자가 28명 여자가 22명 수준이었기에 최소 3 커플 정도는 남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해진 번호가 이름을 대신했다.
이름이 있음에도 선생님은 번호로 부르는 것을 더 선호했다. 아이들이 많은 것도 이유였지만 그때는 비슷한 이름이 꽤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한 반에 현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3명이나 있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학교 전체 방송에서도 이름을 호명하지 않고 몇 학년 몇 반 몇 번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 국민학교 선생님에게는 학생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지침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키가 자리에 순서가 되어야 하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려야 한다니. 반에는 반장, 부반장, 당번 외 번호로 이름 지어진 아이들로만 가득했다. 어쩌면 개인을 구분 짓기 위한 편의성이 개인의 개성과 융통성을 말살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국민학교 시절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발표가 너무 싫었다.
대부분 선생님이 누군가를 지목해서 발표를 시키는 방식이었고, 누군가에 대한 지목은 번호로 이루어졌다.
"보자 오늘이 며칠 이더라~"
"오늘은 28일 이니깐 내가 좋아하는 숫자 3 더해서 31번 31번이 일어나서 발표해 보도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나 쭈뼛거렸다. 선생님은 생각나는 대로 의견을 말해보라 했다. 평소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조리 있게 잘 말한 것 같아 뿌듯했다. 선생님은 얼마간에 침묵 후 뒤로 나가 손들고 서 있으라 했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수업을 잘 들으면 그런 답이 나올 수 없다고 친구들 보는 앞에서 핀잔을 줬다. 쉬는 시간이 다가왔다. 자기도 걸렸으면 대답조차 못했을 친구들이 몰려와 놀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몰랐냐면서 말이다. 매번 이런 식이 다. 발표를 하려고 서로 손을 드는 학생을 볼 수 있는 시기는 1학년이 제철이다. 그 후로는 보기 힘들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