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듯한 겨울 아침이다.
매년 이맘때쯤, 거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한산한 탁자 위, 김이 오르는 머그잔을 매만진다. 반드시 다가올 따스한 봄의 완연함 보다 지독한 추위에 움츠러든 겨울을 짐작해 본다. 고개를 창 가까이 가져간다. 거리를 맴돌던 추위가 얼굴을 스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옷을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정적 속에 멈춰있지만 차가움은 어떻게든 옷깃을 파고드나 보다.
추위가 거리를 얼려버릴수록 머릿속은 활자로 넘쳐난다. 밖으로 나갈 수 없음에 대한 체념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서일까. 몽글몽글 피어나는 머그컵의 온기를 느끼며, 나지막한 한숨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입김이 나오지 않음이 이렇게나 포근하다니.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다시 생각한다. 활자의 들숨과 날숨을 따라, 헝클어진 생각도 제 결을 찾아가는 것 같다. 이러한 행위는 소진보다는 치유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그렇게 머릿속을 글로 한바탕 헹구고 나면, 비로소 불안은 확신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너무나 사사로운 나머지 남들에게 말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진실한 그 이야기들 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비워감의 다른 이름 같다. 매년 한 해를 정리하며 대청소를 할 때마다 피식 웃곤 한다. 어째서 버리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기분은 되려 좋기만 한 걸까. 어디 있는지도 모를 물건들은 앞으로도 계속 모르지 않을까? 이런 관점이라면 정리해서 찾은 물건은 득템이 아니라 짐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나이대신 ‘비움’을 넣으면 딱 맞는 것 같다. 비록 내가 걸어온 과거에 1년이 추가되긴 해도 나와 주변은 그만큼 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쓰지 않는 물건들, 쓸데없는 걱정들, 중요하지 않은 관계까지. 끊어낼수록 채워낼 수 있는 ‘비움’은 더 커진다.
과거가 된 작년과 미래가 된 올해의 연결이 두렵지 않다. 과거의 걱정을 지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올해로 넘어갈 테니까. 노안과 근손실, 저질 체력까지. 세월에 맞게 약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청춘의 활기를 반납하고 얻는 이 고요함이, 어쩌면 생의 후반전을 위한 비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옅어지고 희석되는 만큼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들의 고마움이다.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아채는 지혜,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용기까지.
노안 때문인지 더러운 창문 때문인지 모를 희멀건 밖을 바라본다. 거리는 온통 뿌옇게 물들었다. 그간 푸른 잎을 흔들어 대던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하지만 잎사귀를 비워냈기에 저 너머의 하늘이 들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