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애애앵~~
어디선가부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점점 다가오는 소리 때문인지 서늘한 냉기가 등짝을 훑고 지나갔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인 걸까? 아니면 훈련이 아니라 정말 전쟁이라 봐야 할 정도의 생소함이다. 오싹한 감각은 계속해서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깜깜한 거리에서는 연신 불 끄세요 불 꺼 같은 고함소리가 바로 아래층까지 따라왔다.
나는 거실 한편에 서있다. 전등 스위치에 손을 올린 채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낮은 사이렌 소리가 여기저기 물결치듯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족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보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스위치를 내렸다. 딸깍. 사이렌 소리는 빛이 소거된 공간에서는 더 활개를 치는 것인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세차게 울렸다. 이대로 걷다가는 갑자기 바닥에 고꾸라질 것 같았다. 잠시 후, 창밖에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스름하게 빛나던 달 덕분이다. 가족 모두는 겨우 윤곽만 입은 채 소파 밑에 웅크려있었다. 30분간 빛의 침묵이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다.
등화관제, 그때는 종종 있는 훈련이었다. 적국의 공습에 대비해 도심지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모든 불빛을 소거하는 훈련이다. 인공위성과 열화상, AI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타격하는 요즘으로선 별 의미 없는 훈련이겠지. 불을 끈다고 해서 다음 정거장을 공습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등화관제는 민방위법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응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군홧발로 현관문이 찌그러져야 하는 불이익도 감내해야 한다고. 그날도 아침부터 몇 번이고 방송을 했다. 신문, 라디오, 심지어 아파트 이장님 목소리까지 한 번 더 들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등화관제가 있는 날 어느 아침, 나는 젓가락으로 계란프라이에 노른자를 쿡쿡 터트리며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은 막걸리 잡수시지 말고 오세요” 나는 ‘왜?’라는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 이어 등화관제라 말하려 했지만, 아빠는 이미 그런 의도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늘 8시 반 등화관제, 안다. 짜슥아, 술 안 먹고 바로 온다” 아빠에게 정보 전달을 실패하자, 괜히 심술이 났다. 밥에 다발로 뭉쳐진 콩을 뒤적이다 기어이 한 대 꿀밤을 맞고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저녁 상을 빨리 치웠다. 미리 씻고 숙제도 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 단 한 가지만 빼면 완벽했다. 그 하나라는 것은 매일 저녁 8시 30분에 ‘서울뚝배기’ 드라마가 한다는 사실. 하루의 마무리를 온 가족이 모여 완뚝으로 마무리하는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련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9시 넘어서 하던 등화관제가 오늘은 왜 8시 30분이라며 나는 툴툴거렸다. 엄마도 불만이 가득한 것은 마찬가지. 신문을 뒤적이며 재방송 시간표를 찾는 듯했지만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듯했다. 신문지를 척척 소리 나게 접고서 탄식하는 모양새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아빠도 표정은 우울했지만 뚝배기보다는 막걸리를 먹을 수 없다는데 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이장님이 집집을 다니며 훈련 협조 요청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8시에는 꼭 꺼주이소~ 아니 그냥 지금 꺼도 됩니더. 우리 아파트가 올해는 꼭 모범아파트가 되어야 하거든요. 꼭 좀 부탁할게요”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분 전부터 끄라니. 분명 모범 아파트가 되면 특혜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엄마의 혼잣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급해 보였다. 창문을 막아달라며 아빠에게 하소연 중이다. 드라마를 보고 싶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나는 별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밖으로 삐져나오는 빛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실제 밖으로 나가 아빠의 일 처리 능력을 관찰하기까지 했다. 어둠 속에서는 어떤 커튼도, 이불도 티브이의 일렁임을 막을 방도는 없어 보였다. 정말 보고 싶었다. 한 가지 일념이 머리를 뒤덮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차례로 스쳐간다.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집 화장실. 화장실은 창문도 없고, 빛도 새어나갈 공간이 없으니까.
“엄마 우리 화장실에서 티브이 보면 안 돼요?”
행동은 대답보다 빨랐다. 아빠는 성큼성큼 걸어가시더니 신발장 위, 선반에서 동축케이블 뭉치를 꺼내 들었다. 과거 안방에서 보려고 철물점에서 길게 잘라둔 것을 아빠가 기억해냈다. 설치는 순조로웠다. 엄마는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걸레로 닦고, 아빠는 티브이를 욕조 위에 설치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신속한 손놀림을 탄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 시간 8시 25분, 단 10분 만에 모든 것을 해낸 우리 가족은 서로의 협동심에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기대되는 순간, 티브이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화면 중앙에서부터 찌익 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랑해요 밀키스”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질렀다. 이미 오른쪽 화면 위에는 서울 뚝배기를 내건 광고가 한창이었다.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전선이 꺾이지 않을 정도로만 문을 닫고 자리에 착석했다. 소리가 너무 울려 음량을 최소한으로 낮춘 뒤 살금살금 귀를 기울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등화관제만 하는 날이면 난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한뜻으로 움직일 수 있다니. 내가 찾아낸 아이디어 덕분에 암흑 시간에 티브이를 볼 수 있다니. 무엇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훈련이, 세상에서 가족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나는 케이블을 찾으면서도 킥킥거렸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집념이 이루어낸 쾌거에 더 크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등화관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훈련이 되었다. 적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불을 끄는 일도, 이장님이 집집마다 두드리며 협조를 구하는 일도 이제는 없다.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이 그렇게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적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욕조 위 14인치 티브이, 거의 닫힌 문, 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이던 그 화장실만큼. 불편했지만 아무도 불편하다고 하지 않았던 그 순간이 여름밤의 꿈처럼 계속 떠오른다.
나는 등화관제를 그리워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불을 꺼야만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우리가 그리운 것일지도.